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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종이꽃’ 김혜성 “‘동안’ 스트레스였지만 이젠 나만의 무기”
“잘 읽히던 시나리오, 안성기 선생님 출연 결정 무조건 출연”
“실제 몸 아픈 뒤 많은 것 내려 놨다. 연기는 이제 즐기는 것”
2020-10-30 00:00:02 2020-10-30 00:00:02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얘기를 나누는 동안 뭔가 묘했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모두 겪은 듯한 베테랑의 면모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의 배우는 앳되고 앳된 모습의 김혜성.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고등학생 민호아니었나. 하지만 민호는 무려 14년 전의 얘기일 뿐이다. 실제로 당시 민호를 연기한 김혜성은 고등학생이었다. 지금의 김혜성은 30대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특유의 앳된 이미지는 그대로였다. 그래서 뭔가 변화를 필요로 했었지 듯싶다. 공교롭게도 그래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는 대중들의 시선에서 모습을 감춰 있었다. 건강이 좋지 못했다. 지금은 건강하지만 얼마 전까진 꽤 고생을 했다. 영화 종이꽃속 지혁처럼 그는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진 않았지만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 같았다. 어떤 면에선 그런 것 같다며 김혜성도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걸 내려 놓고 편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운 것 같다는 김혜성이다. 그에겐 이제 엄격하게 말해서 배우연기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닌 듯싶었다.
 
배우 김혜성. 사진/(주)로드픽쳐스
 
2015퇴마: 무녀굴이후 스크린 차기작은 5년 만이다. 방송은 2017 KBS2 ‘매드독이 마지막이다. 연기로 컴백한 것은 사실상 3년 만이다. 그렇게 컴백을 결정한 작품이 종이꽃이다. 저예산 독립영화다. 영화는 죽음에 대한 얘기를 그린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다. 무엇보다 상업 영화가 아니다. 오랜만에 연기로 컴백하는 입장에서 욕심이 생겼을 법도 했는데 말이다.
 
주변에서 그런 말 정말 많이 들었어요. 소속사를 통해 시나리오를 전달 받아 읽었어요. 다른 감정 없이 정말 잘 읽히는 글이었어요. 주제도 죽음을 다루고 있었지만 생각만큼 무겁고 어둡지도 않았어요. 소속사에 무슨 얘기에요?’ 물어 보니 장의사가 주인공이다그래서 예상 했는데, 읽고 나니 제 생각이 싹 바뀌었죠. 더욱이 안성기 선생님이 출연 결정한 상황에서 제가 시나리오를 읽었고, 제가 연기할 배역이 안 선생님 아들 역이라는 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웃음)”
 
결국 그는 솔직하게 대배우 안성기와의 연기 경험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단다. 앞서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도 이순재 나문희 등 지금도 최고란 칭호가 오히려 모자랄 정도의 대선배 배우들과 작업을 한 바 있다. 오랜 시간의 차이를 두고 있었지만 안성기와의 작업도 남다른 경험을 남겼다고.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연기 그 이상을 배웠단다.
 
배우 김혜성. 사진/(주)로드픽쳐스
 
“‘선생님으로 불러야 할 대선배님들은 모두 각자의 기가 있으세요. ‘하이킥때 첫 리딩 기억이 남아 있는데, 그때 이순재 나문희 두 선생님의 기가 피부를 누르는 느낌이 생생해요. 그런 느낌을 이번 영화에서 또 느꼈죠. 안 선생님이 첫 대사를 하던 순간 현장에 정적이 흘렀어요. 소리가 없는 탄성이라고 할까. 모든 스태프가 다 그랬죠. 그냥 저게 내공이구나싶었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공부였어요.”
 
그런 연기를 혼자 현장에서 누워서 바라보고 있자니 죄송스럽기도 했다며 웃는다. ‘혼자 날로 먹은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에 그 역시 맞다. 날로 먹었다며 웃음으로 맞장구를 치는 여유도 보였다. 웃음으로 주고 받았지만, 사실 그가 영화 속에서 누워만 있던 이유는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장의사 윤성길(안성기)의 아들 지혁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영화 촬영 내내 거의 침대에 누워만 있는다.
 
촬영할 때는 진짜 저만 누워 있어서 좀 민망하고 죄송스럽기도 했어요(웃음). 하지만 하반신 마비 장애를 겪는 분들을 생각하면 고개가 숙여지고 또 이 장애를 이겨내고 생활하시는 모습에선 대단하단 말씀 밖에 못 드릴 정도였어요. 제가 겨우 그 연기로 그 분들의 고통을 어떻게 알겠어요. 그런데 하반신을 안 쓰고 상체만으로 움직이는 연습을 하는 데 진짜 기절할 정도로 힘이 들더라고요.”
 
영화 '종이꽃' 스틸. 사진/(주)로드픽처스
 
영화에선 몸을 다친 인물이지만 사실 마음을 더 심하게 다쳐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가둬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이 배역이 김혜성으로선 가슴에 와 닿았고, 또 낯설지도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은 완쾌됐지만 심장 쪽이 좋지 않아서 1년 가까이 병원을 다녔다고 한다. 당시에는 꽤 심각한 상태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건강하다. 그때는 스트레스로 인해 몸이 아픈 게 아닐까싶었다고.
 
그때 이후로 담배도 끊었어요. 지금은 건강해요. 당시 몸이 아프면서 왜 그러지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는 연기가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걸 놓으려고 노력하고 즐겁게 즐기려고 해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취미 정도로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정말 당장 내일 그만둬도 아쉽지 않은 걸로. 뭐 따지고 보면 연기를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도 아닌 느닷없이 시작했으니(웃음)”
 
그렇게 뭔가를 놓고 이 영화를 대하니 눈에 좀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욱이 그의 곁에 대배우 안성기가 있었다. 현장에서 안성기와 깊은 교감을 나눴다기 보단 계속 언급한 것처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놓고비워내는것에 대한 내공을 키워낸 것 같았다. 그리고 안성기란 대배우가 왜 대배우로 불리게 됐는지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앞으로의 길을 잡을 수 있게 된 듯했다.
 
배우 김혜성. 사진/(주)로드픽쳐스
 
전 성격이 좀 낯도 가리고 사람과 친해지는 데도 시간이 좀 걸려요. 그런데 현장에서 안성기 선생님을 보면서 많은 걸 반성했어요. 사실 선생님 정도면 까칠하게 하신다고 그 누가 뭐라 하겠어요(웃음). 그런데 정말 감독님부터 막내 스태프와도 두루두루 아주 친하게 잘 지내셨어요. 모두와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어요. 정말 많은 부분을 반성하고 또 배운 시간이에요.”
 
마지막 즈음에 동안’ 30대 남자 배우로서 연기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장점과 단점을 물었다. 박장대소를 한 그는 장점도 단점도 동안인 것 같다고 웃었다. 20대까지만 해도 동안이 정말 스트레스였단다. 또래 중에 남성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럽고 또 부러웠단다. 하지만 이젠 동안이기에 김혜성 아니면 절대 안될 배역이 있지 않을까라며 자신만의 차별화를 선택했다.
 
“20대에는 남자 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단 강박이 정말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젠 아니에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나이를 무기로 더 큰 폭의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합니다. 40대 그리고 50대에도 지금의 동안을 무기로 20 30대 배역을 소화한다면 그건 저 말고는 아무도 못하는 배역이잖아요(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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