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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 규제 샌드박스, 타다 막은 국토부 손에 들어간다
과기정통부의 ICT 분야에서 포괄하던 모빌리티, 별도 분야로 신설
국무조정실 "국토부가 주무부처 될 것"…관련 법안 국회 국토위에서 심사 중
모빌리티 기업 "국토부가 반대하는 사업은 신청조차 못 할 것"
2020-12-29 15:37:05 2020-12-29 15:48:51
[뉴스토마토 배한님 기자] ICT에 포함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에서 관리하던 모빌리티 관련 규제 샌드박스가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소관으로 넘어간다. 관련법을 관장하고 있는 국토부에서 진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업계는 모빌리티 신사업에 보수적인 태도를 고수해온 국토부가 이를 담당하면 규제 샌드박스 신청 자체가 어려워져 모빌리티 혁신을 저해할 것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장석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카카오모빌리티의 GPS 기반 앱미터기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해 9월 과기정통부 주관 규제 샌드박스 심의를 통해 GPS 기반 앱미터기 사업에 대한 임시허가를 받았다. 사진/뉴시스
 
28일 업계에 따르면 규제 샌드박스 특례 분야에 신규 추가되는 '모빌리티' 분야의 주무부처를 국토부로 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모빌리티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이하 국토위)에서 심사 중이다. 해당 법안은 지난 9월 국토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 등의 제안으로 발의됐다. 규제 샌드박스와 관련된 내용은 해당 법안의 제17, 18조에서 다루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 분야 확대와 모빌리티 분야 신설은 지난 10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논의된 신산업 규제혁신 대책에서 확정됐다. 이를 발표한 국무조정실은 당시 모빌리티 분야 주무부처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이와 관련된 법안은 이미 국회에 제출된 상태였다. 
 
규제 샌드박스에서 모빌리티 분야를 신설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모빌리티 관련 규제 샌드박스 신청이 많아 ICT 분야로 포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하나는 모빌리티 규제 샌드박스와 관련해 과기정통부와 국토부 간의 의견 충돌이 많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김달원 국무조정실 규제혁신기획관은 "어차피 과기정통부나 산업부에 ICT나 산업융합 분야로 신청해도 관련 법령이 국토부 소관이라서 협의를 거쳐야 한다"며 "특별히 의견을 따로 수렴한 적은 없지만, 기업 입장에서도 국토부와 바로 논의하는 것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무조정실의 생각과는 달리 모빌리티 업계는 국토부가 관련 규제 샌드박스를 관리한다는 소식에 크게 반발했다. 지금까지 모빌리티 규제 샌드박스와 관련해 국토부가 보여준 입장 때문이다. 국토부는 ICT 규제 샌드박스 모빌리티 1호 사업자로 선정됐던 코나투스의 자발적 택시 동승 서비스 반반택시부터 카카오모빌리티나 KST모빌리티 등의 GPS 기반의 앱미터기, 카풀 서비스 등 다수의 모빌리티 신사업에 제동을 건 전적이 있다. 최근 국토부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 하위법령을 위해 발표한 모빌리티 혁신위원회 정책 권고안도 모빌리티 신사업을 어렵게 했다는 평을 받는다. 
 
기업들은 모빌리티 분야가 신설되면 과기정통부와 국토부가 부딪치는 부분을 조정해 줄 국무조정실이나 기획재정부 등에서 이를 관리하기를 원했다. 두 부처를 아우를 수 있는 곳에 모빌리티위원회를 개설해 문제를 풀어갈 협의 절차를 만들어 달라는 뜻이었다.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원을 맡은 김도현 국민대 교수는 "과기정통부 입장에서 국토부가 반대하는 건을 본 심의로 올리기 부담스러운 면이 있어 이들의 의견을 수평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강한 주체가 주관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하는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모빌리티 기업들은 이렇게 되면 기존 업계와 충돌하거나 법에 명시되지 않은 모빌리티 신사업은 규제 샌드박스 신청조차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규제 샌드박스의 취지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일정 기간 규제를 풀어주고 실험해보자는 건데 샌드박스의 문을 닫아버리는 격이라는 것이다.
 
남승미 딜리버리T 대표는 "그나마 샌드박스를 신청할 때 신사업을 장려하는 과기정통부에서 힘을 실어줬는데 이제 조금만 기존 제도와 충돌하면 국토부에서 못 푼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끝내겠다는 거 아닌가"라고 한탄했다. 빈 택시를 이용해 서류나 지갑 등 작은 물건을 배송하는 '딜리버리T'는 국토부의 반대로 1년 6개월이 넘게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딜리버리T는 규제 샌드박스 최장기간 계류돼 있다. 
 
카풀 서비스로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한 위모빌리티의 박현 대표도 "국토부의 반대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박 대표는 "저희가 운송업계와 이해 충돌 관계도 직접 해결하겠다고 하는데도 작은 부분조차 열어주지 않고 있다"며 "현행 모빌리티 관련 법안 제도개선 및 실증특례에 있어 그간의 법안 개설 및 중재, 수용에 대한 행태를 보면 국토부의 판단이 미래지향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택시와 지난 4월 서비스를 종료한 타다 베이직 차량. 사진/뉴시스
 
다수의 모빌리티 관련 규제 샌드박스에 참여한 코리아스타트업포럼도 국토부가 규제 샌드박스 모빌리티 분야의 주무부처가 된다는 소식에 당혹스러움을 표했다.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실장은 "국무조정실이 타다금지법과 같이 신사업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인 국토부에 모빌리티 신사업의 목을 베려고 큰 칼자루를 쥐어준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국토부를 견제할 힘이 없어지고 모빌리티 사업은 국토부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이라고 했다. 
 
국무조정실은 국토부가 규제 샌드박스를 직접 맡아서 하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 예상한다. 김 기획관은 "지금은 국토부가 아무래도 자기 일이라고 생각을 안 하는데 모빌리티 규제 샌드박스 접수 중 몇 건 승인 등 통계가 있으면 부담이 되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으로 볼 것"이라고 했다.
 
김도현 교수도 "국토부에 승인 실적과 같은 미션이 정해지면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꿀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국토부가 반대하는 건은 아예 논의가 안 될 수도 있다"며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빌리티 기업이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할 때 반드시 국토부의 모빌리티 분야로만 신청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김 기획관은 "과기정통부나 산업부로 신청해서 그 힘을 빌려도 되기 때문에 (국토부) 모빌리티 분야로 신청하는 것을 법이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지만 모빌리티 분야가 생기면 대부분 그쪽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한님 기자 b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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