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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코로나 시대의 우리 아이들
2021-01-06 06:00:00 2021-01-06 06:00:00
정인이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것은 절망 그 자체였다. 초점을 잃은 눈, 생기 없는 표정. 기쁨 또는 슬픔이라는 감정조차 완벽히 사라진 얼굴. 모든 희망을 놓아 버린 얼굴.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 그날의 얼굴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생전 정인이를 보았던 소아과 의사는 “15개월 된 아기가 마치 자포자기한 어른들이 지을 만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정인이의 비극적인 사연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여론과 언론이 들끓고 있다. 분노의 화살은 정인이를 학대하고 방치한 양부모, 그리고 부실한 초동대응으로 정인이를 구하지 못한 경찰로 향한다. 정치권에서는 학대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정인이법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아동학대 법안만 60개인데 의원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늘 그랬다. 전국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맞아 숨지는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똑같다. 그러는 동안 아동학대 사건은 해마다 늘었다. 20032921건이었던 신고 건수는 201824604건으로 급증했다. 이 가운데 부모에 의한 학대는 77%에 이른다. 소 잃고 외양간을 아무리 고쳐도 상황은 더 악화될 뿐 나아지는 건 결코 없다는 뜻이다.
 
지금 당장 아동보호전문기관 관련 종사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코로나 시대의 우리 아이들이다. 몹쓸 전염병 때문에 집콕이 일상이 된 요즘, 가정 내 아동학대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에는 학교나 학원, 어린이집 등에서 아이들을 지켜볼 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어렵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학교나 어린이집에 오지 않으면 가정을 통해 결석사유를 파악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학대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등교를 못하게 되니까 그마저도 어렵지요. 더군다나 부모들도 집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아지다보니 우려가 큽니다. 만일 코로나 사태 때문에  빈곤해진 가정이라면 상황은 더더욱 힘들어지죠."
  
전문가들은 관련법을 만든다 해도 별반 나아질 것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법·행정력의 한계 때문이다. 법에 상응하는 전문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린 호소문은 우리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는 "현재 대부분 지역의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은 5인 이하고 1명이 배치된 곳도 많다"며 "업무를 익힐 틈도 없이 바로 현장 투입돼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또 "아동이 신체 학대를 당했다면 의료기관으로 조치하라면서, 의료비를 단 1원도 편성해주지 않았다"며 "자비로 피해 아동의 의료비를 부담하라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저의 11월 초과 근무시간은 95시간"이라며 "아이를 맡길 쉼터가 없어 전국 쉼터에 구걸하듯 전화해 아이를 보호해 달라고 하고 새벽에 아동을 맡기고 온다. 야간 출장비도 없다.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에 예산지원 및 처우개선을 요구한다"고 호소했다.  
 
이처럼 부족한 인력과 예산은 곧 암울한 현실로 이어진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대피해아동 발견율은 2019년 기준 평균 3.81%로 미국(9.2%), 호주(10.1%) 등 선진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켜보는 사람이 적다보니 눈에 띄기 어렵다는 뜻이다.
 
또 국민의 법감정도 문제다. 가정 훈육이나 교육에 국가가 개입하는 데 대해 여전히 거부감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민법에서는 부모의 친권이 아동 인권보다 우선되는 '친권우선주의'를 택하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학대해도 친권 행사를 제재하거나 방지할 방법이 없다. 바꿔야 한다. 못된 부모는 부모가 아니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제2, 제3의 정인이'의 얼굴을, 절망을 보게 될 것이다. 또 미안하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또 뒤늦은 일이 될 것이다.  
 
이승형 산업부국장 sean120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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