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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국가, '유서대필' 사건 손해배상 소멸시효 주장 안돼"
손해배상 청구 추가 인용 취지 파기환송…강기훈씨 등 배상액 늘어날 듯
2022-11-30 16:38:51 2022-11-30 16:38:51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대법원이 '유서 대필 조작사건' 피해자인 강기훈씨와 그 가족들이 위법 수사와 기소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받아들인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이에 따라 강씨와 가족들이 받게 될 배상금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30일 강씨와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강씨 등의 상고를 받아들여 "이 사건에 장기소멸시효 규정을 적용해 원고의 청구를 배척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시, 원심을 깨고 다시 판단하라면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다만, 강씨 등이 사건 당시 주임검사와 유서를 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감정인 각각을 상대로 낸 청구는 이들의 일부 불법행위 부분에 대한 장기소멸시효가 지났음을 이유로 강씨 등의 상고를 기각하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유지했다.
 
이번 사건은 '유서 대필 조작사건'에 대한 강씨의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국가나 검사·감정인이 소멸시효를 주장해 대항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강씨 등은 국가와 검사, 감정인의 위법 또는 불법행위를 각각 분리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전반적인 위법 수사와 기소에 대해서는 국가와 당시 수사검사·부장검사 등 모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와는 별개로 밤샘조사와 변호인 접견교통권 침해 등 부분에 대해서는 국가와 수사검사를, 피의사실 공표 부분에 대해서는 국가와 부장검사를 상대로 책임을 물었다. 필적감정 오류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 국과수 감정인과 국가에게 각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강기훈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 회원들이 지난 2015년 5월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유서대필 사건 강기훈 씨 무죄 확정판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1심은 필적감정 오류 부분에 대한 강씨 등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면서도 위법한 수사 전반과 기소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부분은 증명 부족으로 배척했다. 또 국가와 검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부분도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기각했다. 당시 재판부였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재판장 김춘호)는 국가가 강씨에게 5억 2900여만원, 부모와 가족 등에게 1억 5600여만원 등 총 6억 85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불법행위 시인 1991년경으로부터 24년이 지난 2015년 11월 3일 소를 제기했기 때문에 장기소멸시효 기간인 5년을 경과했다"면서 "감정인 개인 상대 청구는 감정인에게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에 대해 책임을 돌릴 사유가 없고, 대한민국으로부터 배상이 가능해 보호가 충분한 점 등에 비춰볼 때 피고 개인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2심도 2018년 5월 같은 취지로 판단했다. 다만, 필적감정 오류로 인한 국가 배상책임을 추가로 인정해 국가가 강씨와 강씨 가족들에게 총 8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2심 선고 석달 뒤 "국민보도연맹 등 과거사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이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과거사정리법이 규정한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과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 사건 피해자가 갖는 국가배상청구권에 민법상 소멸시효 제대롤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날 대법원은 이런 헌재 결정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에서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입은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라고 볼 수 있다"면서 "피고 대한민국에 대한 일부 원고들의 패소부분 중 수사과정의 개별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부분은 위헌결정에 따라 그 효력이 없게 된 장기소멸시효에 관한 규정을 적용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서대필 사건은 지난 1991년 5월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연합 사회부장이 노태우 정부를 규탄하고 분신자살하자 검찰이 김씨 친구였던 강씨에 대해 "김씨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며 기소해 처벌한 일을 말한다. 
 
강씨는 1991년 12월 자살방조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재심절차를 걸쳐 2014년 2월 자살방조죄에 대해는 무죄, 나머지 국가보안법 위반 부분에 대해서만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이 확정됐다.
 
2015년 5월14일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국가보안법 및 자살방조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강씨의 재심 상고심에서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며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무죄를 확정했다.
 
이후 강씨와 가족 등은 당시 수사 과정에서 변호인 접견 금지, 폭언 폭행, 협박 회유, 필적 은폐 및 필적 감정 결과 왜곡 등 불법행위가 있었고 이로 인해 구금 생활을 하면서 심각한 손해를 입었다며 국가 등을 상대로 31억원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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