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원·달러 환율이 연일 1470원대를 웃돌면서 물가 불안이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기업과 가계 부담도 커지고 있습니다. 고환율에 생산자·수입물가가 동반 상승하고 소비자물가까지 끌어올리는 형국인데, 고환율·고물가는 고스란히 기업·가계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경우 원자재 등 수입 가격 상승에 수익이 악화될뿐더러, 가계는 실질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통상 환율 상승이 3~6개월 뒤 물가에 반영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르면 연말 또는 내년 초부터 그 영향이 물가에 반영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로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보면서 물가 불안 우려가 커지는 모양새입니다.
수입 물가, 두 달째 오름세…환율 관리 취약한 중소기업 타격
1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3.6원 내린 1467.0원으로 출발한 후 오후 상승폭을 키워 0.7원 내린 1469.9원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환율은 지난 10월 초 1400원대에 진입한 이후 가파르게 오르면서 한 달 반 만에 1500원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달 24일에는 주간거래 종가 기준 1477.1원을 터치하면서 지난 4월9일(1484.1원) 이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원화 약세가 가파르면서 원화의 실질 가치도 추락했습니다. 실제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한 10월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은 89.09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원화 가치가 크게 하락했던 2009년 8월(88.08) 이후 16년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비상계엄 여파로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가장 컸던 올해 3월(89.29)보다도 낮은 수준입니다. 실질실효환율은 국가별 통화의 실질 구매력을 주요 교역 상대국 통화와 비교해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2020년(100)을 기준으로 100 미만이면 해당 통화의 가치가 낮다고 봅니다.
문제는 고환율이 지속되면서 수입물가가 오르고 원자재 가격 등도 덩달아 끌어올린다는 점입니다. 수입 원자재·부품 가격 상승은 생산비 증가를 부르고 기업 수익성 악화 등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환율 위험 관리에 취약한 중소기업의 경우 더 큰 타격이 예상됩니다. 하도급 구조 속에 가격경쟁력이 핵심인 중소기업일수록 원가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떠안을 가능성도 큽니다.
실제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10월 수입물가는 달러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 하락했지만, 원화 기준으로 하면 오히려 1년 전보다 0.5% 상승했습니다. 지난 9월에도 수입품의 달러 물가는 3.5% 떨어진 반면, 원화 물가는 0.7% 올랐습니다. 원화 기준 수입물가는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5개월 연속 하락했지만, 최근 2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 ↑…고물가에 저소득층 직격탄
고환율로 뛴 수입물가 상승은 소비자물가 상승에 더욱 압력을 가해 가계 부담도 키웁니다. 수입물가는 수개월 후 소비자물가로 전이되기 때문입니다. 정부 안팎에서 물가 불안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8월 1.7%까지 낮아졌다가 9월 2.1%, 10월 2.4%로 오르며 1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물가 상승은 가계의 실질소득 감소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집니다. 식료품·연료 가격이 오르면 체감물가는 더욱 높아지게 됩니다. 여기에 기준금리 동결 기조까지 장기화할 경우, 가계는 대출이자 부담까지 떠안아야 합니다. 특히 생계 필수품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일수록 물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요 기관은 고환율의 물가 전이 효과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4월 보고서를 통해 "환율이 1%포인트 상승하면 같은 분기에 소비자물가는 0.04%포인트 오른다"고 분석했고, 한국은행 물가동향팀장도 최근 "환율이 1% 상승할 때 소비자물가는 0.03% 정도 상승하는 것으로 본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27일 "환율이 1400원을 넘어가면 금융 안정의 문제가 아니고 고환율로 인해 물가가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고환율에 따른 물가 파급효과 등 시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외환시장 안정화를 위한 정책 대응에도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한은·금융위원회 등 외환당국은 이날 한국은행과 국민연금 간 외환스와프 계약 연장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한은과 국민연금은 연간 650억달러 한도로 체결한 외환스와프 계약은 올해 말 종료되는데, 외환스와프 계약 연장을 하면 국민연금이 해외자산 매입 과정에서 필요한 대규모 달러를 외환보유액에서 직접 공급해 시장의 달러 수요를 줄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외환당국은 수출기업의 외환 보유 규모, 해외투자 현황, 환전 실태 등을 점검하고, 이를 정책자금 등 기업지원 정책 수단과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이밖에 이달부터 내년 1월까지 증권회사 등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해외투자 관련 투자자 설명 및 보호의 적절성 등에 대한 실태 점검을 실시한다는 방침입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전 거래일 주간거래 종가보다 0.7원 내린 1469.9원에 거래를 마친 1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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