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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낙농가의 눈물, 예고된 `우유대란`
"새벽 3시 젖짜고 밤 9시까지 일해도 빚만 지는 현실" 절규
2011-07-26 16:53:33 2011-07-26 16:53:59
[뉴스토마토 정헌철기자] 26일 정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공원 문화마당. 
 
부산, 경남, 전남,전북 등 전국 각지에서 1만여명의 낙농인들이 관광버스 250여대(한국낙농육우협회 추산)에 나눠 타고 상경해 문화마당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회색조끼를 맞춰 입고 버스에서 내리는 백발의 노인부터 40대 아줌마까지, 이들의 표정은 결의에 차 있었다.
 
마당의 절반가량을 가득 채운 이들은 잇따르는 사료 값과 젖소 산유량 감소 등으로 목장 경영이 극도로 악화되자 '원유값 현실화'를 주장하기 위해 모인 것.
 
이들이 도착하기 전 이미 "우리 젖소 여물도 못주는디(데) 우유인들 지데로(제대로) 나오것소(나오겠나)", "내 젖은 세계최고, 정책은 세계 꼴지, 어떻게 나보다 못났나" 등 이들의 주장이 담긴 현수막이 공원 이곳 저곳에 걸려있었다.
 
전날 집행부가 설치한 듯 보였다. 이들의 요구는 간단했다. 먹고 살 수 있게 원유값을 리터당 173원 인상해 달라는 것.
 
한국낙농육우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20.5%가 인상된 원유기본가격은 리터당 704원으로 3년간 동결됐다.
 
하지만 폭염, 한파 등 이상기후에 따라 우유생산량이 10% 이상 감소했고, 생산에 필요한 경비는 지속적으로 폭등해왔다.
 
사료값은 2008년 대비 약 30% 인상되었고 올해 하반기 추가적으로 인상이 예고돼 있다.
 
한국낙농육우협회 이승호 회장은 "최근 잇따른 사료값 상승, 젖소산유량 감소로 목장경영이 극도로 악화돼 지난해에만 500여 낙농가가 폐업해 현재 6000여가구에서 젖소 39만두만을 사육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회장은 그러면서 "현재 우유 1000ml당 목장원유납품단가는 평균 830원 정도로 낙농가가 생산비 폭등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1000ml당 최소 1000원은 받아야한다"고 호소했다.
 
한국낙농육우협회와 전국낙농관련조합장협의회는 유가공업체에 리터당 173원 인상을 제시했지만 업체는 리터당 41원(5.8%)의 인상안을 제시해 농가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충남 보령에서 올라온 낙농인 이경훈씨는 "서울 올라오는 중, 13살 딸에게서 학원비를 달라는 문자를 받았다"며 "새벽 3~4시 젖을 짜고 저녁 9시까지 일해도 빚만 지는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고 절규했다.
 
30년간 충주에서 낙농인으로 살아왔다는 이명규(여)씨 역시 "올해 2번의 젖소 살처분을 겪으며 몸과 마음이 지쳐고 빚만 지는 상황속에서 젖을 짤 수가 없다"며 "낙농인도 편히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스팔트 위 땡볕 아래 모인 1만여명의 낙농인들의 외침은 눈물이었다. 이들의 눈물은 금새 쏟아지는 소나기에 묻혔다.
 
소나기는 이들의 요구에 묵묵부답하고 있는 정부의 행동과 닮아 있다. 우유대란의 시발점은 여기서부터다.   
 
이들은 원유가가 현실화되지 않을 경우 지역별 릴레이집회는 물론 최악의 경우 우유 집유·납유 거부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9월 개학과 함께 우유의 원활한 공급을 장담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이들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 대안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뉴스토마토 정헌철 기자 hunchu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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