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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북리뷰)욕망해도 괜찮아
"살살 놀면서 선을 넓혀가자"는 김두식 교수의 외침
2012-08-12 18:00:56 2012-08-12 21:55:26
[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인간의 내면에는 남의 은근한 욕망을 귀신처럼 잡아내는 무시무시한 센서가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은 몰라도 남의 은근한 욕망을 귀신처럼 잡아내는 것이 인간입니다."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책 <욕망해도 괜찮아>에 나오는 구절이다. 검사출신 법대교수라는 화려한 이력과 어울리지 않게 '남의 욕망'에 관심 갖는 '우리'를 주목한 점이 흥미롭다.
 
그는 스스로를 "'색(色)'과 '계(戒)' 사이에서 고민하는 소심한 아저씨"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그간 출간된 그의 저서를 보면 '색(色)'과 '계(戒)' 사이에서 고민은 하되 소심하기는커녕 용감무쌍하기만 하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를 제기한 <평화의 얼굴>, 법조계 이야기를 담은 <헌법의 풍경>과 <불멸의 신성가족>, 한국교회 현실을 다룬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영화를 통해 인권문제를 담은 <불편해도 괜찮다>에 이르기까지 사회 구석구석을 살피며 끊임없이 미세한 균열을 내왔다.
 
<욕망해도 괜찮아> 역시 어딘가 수상한 책이다. 욕망해도 괜찮다니, '욕망'이라는 민감한 화두를 그저 꺼내놓는 데 그치지 않고 모두에게 권하는 모양새다. 문법상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책 제목에서 '욕망'이라는 명사와 '~해도 괜찮아'라는 서술어를 결합한 것도 수상쩍다. '욕망'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도, 분출하며 사는 것도 어색해 하는 우리 사회 모습과 어쩐지 닮아 있는 제목이다.
 
 
◇ "신정아 사건은 제때 불태우지 못한 소년의 열정에서 비롯"
 
2007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정아 사건. 이 책은 사건의 당사자들을 과도한 희생양으로 몰고 갔던 그 당시 상황을 언급하며 시작된다. 신정아의 학력위조 등 범죄사실은 인정되지만 그것이 국민적인 가십거리로 떠오를 만한 사안이었는지, 우리모두가 그들을 마녀로 몰아붙인 것은 아닌지 작가는 묻는다.
 
여기서 작가는 변양균 전 실장으로 대변되는 우리 주위에 비슷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에 주목한다. 지난해 3월 한국판 '색,계'로 까지 불리운 '상하이 스캔들' 의 허 영사도 그 중 하나다. 뒤늦게 일탈에 빠진 이들은 '성공을 위해 10대와 20대에서 마땅히 누리고 분출해야할 소년의 욕망을 제대로 분출하지 못하고 억눌려온, 평범한 40대 중년남성'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젊은이들은 '계'에 속하는 인간이 되어 서서히 사회지도자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텅 빈, 몸만 자라버린 소년이 되고 만다. 그리고 어느날 우연히 만난 여성이 소년의 손을 덥석 잡는 순간, 그는 '와르르' 무너져 버려 10대 소년으로 돌아가 '뒤늦은' 사랑을 경험한다.
 
우리사회 40대 이상 성공한 남성들에는 이처럼 뒤늦게 사랑을 경험하는 소년, (신정아 책에 등장하는 어떤 유명인처럼) 기회를 찾아 끊임없이 주위를 찔러보는 소년들이 상당수다. 이들의 대척점에는 '사냥꾼'이 된 소년들이 있다.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 그들은 억눌린 욕망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엿보기를 선택했고 극단적으로는 돌 던지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작가는 이들이 모두 한 몸에서 잉태된 일란성쌍둥이라고 분석한다. 성장과정은 똑같지만 욕망을 배출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작가의 메시지는 시종일관 분명하다. 내가 그들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그 사람과 내가 뭐가 다른지에 관해 자신을 돌아보자는것. 바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자는 것이다.
 
"의심하라!" 근엄한 얼굴을 한 수많은 규범들이 오늘도 자기 존재의 근거로 온갖 이유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허세로 가득 찬 그 가면을 벗기는 작업은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한 필수과제입니다...(중략).. 희생양이 만들어질 때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돌팔매질인지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의심이 규범을 무너뜨리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의심이야말로 규범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토대입니다."
 
◇ "사자의 탈을 벗어 던지고 자신의 욕망에 귀 기울이자"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입원을 하게 된다. 돈과 권력 등을 하찮게 여기며 평생을 청렴하게 사신 어머니지만 입원실만큼은 1인실을 고집한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탓이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주장대로 '어머니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해 금전적 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1인실에 입원시켰다.
 
이 일을 예로 들며 작가는 상류층과 중산층 문화를 동시에 맹렬히 비난한다. 
 
먼저 비판하는 대상은 상류층이다. 먹을 것 걱정 없이 살고 있는 상류층(사자)이 잘못된 사회시스템을 개혁할 생각은 못한 채 중산층(당나귀)에게 자신들처럼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갈 것을 요구했다는 지적이다.
 
중산층도 김 교수가 던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지 못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상류층의 기준에 부응하려 하다보면 중산층은 결국 상류층의 훌륭한 대변자가 되고 만다. 심지어 중산층은 상류층이 요구하는 '계'라는 규범의 틀로 다른 당나귀를 사냥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김 교수가 제안하는 바는 명확하다. 중산층은 사자로 대변되는 상류층과 같아지기 위해 뒤집어 썼던 가죽을 던져버리고 본래의 당나귀로 돌아와 또 다른 당나귀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글로써 유명해지고 싶다는 그의 욕망처럼 일단 그의 책은 읽기 쉽다.  욕망의 관점에서 사회현상을 쉽고 친절하게 분석했다. 자신과 가족, 주변 환경 등을 통해 욕망을 솔직히 이야기한 것도 장점이다. 동시에 규범의 세계에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냉철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재치넘치면서도 차분하게 '욕망에 솔직해보는 것이 어떠냐'며, 독자와의 건강한 대화를 시도한다. 동네 아저씨가 옆에서 이야기해주는 듯한 구어체의 말투 역시 300여페이지를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요소 중의 하나다.
 
"어쨌든 저는 제 삶이 우리 사회의 경계선을 넓히는 도구로 쓰였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너무 규범에 갇히지 말고 살살 놀면서 살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다...(중략).. 돌을 내려놓을 때 다른 사람의 고백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공간이 열립니다. 고백에 귀 기울이는 태도는 희생양 양산구조를 깨는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고백을 들어줄 귀가 없는 사회에서는 고백이 나올 수 없습니다. 고백이 없는 곳에서는 성찰이 아니라 사냥만이 힘을 얻습니다."
 
책에서 그는 '젊은이들과 사람들이 몸의 소통에 더욱 솔직해야 한다' '모텔 문화 등을 색안경 끼고 들여다볼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양산한 사회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기독교적 윤리관을 가진 독자나 작가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독자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민감한 영역에 대해 대화를 시도한 책이나 공론장이 드문 현실에서 작가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는 데 크나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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