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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모로우)배신감에 등 돌리는 5060세대
"화병이 생겨 쓰러질 지경"…박근혜 대통령 지지기반 무너져
2016-11-29 15:33:43 2016-11-29 15:33:43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 제5차 촛불집회에서 만난 김병철(58)씨는 자칭 애국보수주의자다. ‘베이비 붐’(1955~63년생) 시기에 태어나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킨 건 보수세력’이란 믿음을 한 번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를 만나 광화문까지 촛불을 들고 온 계기를 듣기 위해 잠깐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지난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김영삼·이회창·이명박·박근혜 후보를 찍었다고 한다. 당연히 시위는 해 본적도 없고 보수정권을 비판하는 젊은이들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무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그는 지난 26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 서있었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 때도, 정윤회 파문 당시에도 대통령이 통제할 수 없는 범위라고 판단해 지지를 거두지 않았다”며 “하지만 일개 민간인에게 대통령이 휘둘리는 것을 보면서 이 나라를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상실감이 밀려 왔다”고 말했다. 
 
이날 정부 규탄 집회는 세대와 계층을 불문하고 분노의 목소리로 뒤덮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코앞에 둔 10대 수험생부터, 실업의 늪에 빠진 20대, 가족 건사하기도 바쁜 30, 40대 직장인 및 주부, 박근혜 정부의 버팀목이 돼 왔던 5060 장년층까지 격앙된 민심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김씨처럼 그동안 50, 60대 이상은 박 대통령의 절대적 우군이었다고 평가받는다. 박 대통령 대선 득표율만 봐도 60세 이상(72.3%)에서 20대(33.7%)의 두 배가 넘는 표를 얻었다. 하지만 당시 그랬던 이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보수란 한강의 기적처럼 나라 발전을 위해 희생하는 것인데 민간인의 조언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박 대통령은 보수를 자처할 자격도 없다”고 개탄했다. 
 
장년층의 민심 이반은 4% 지지율이라는 지표로 그대로 드러난다. 대통령 스스로 국가운영의 기본시스템을 무너뜨린 탓에 민주주의 훼손을 감수하고도 힘들게 이룩한 경제성장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보수층이 절망하는 것이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자발적 시민이 주체가 된 집회 양상은 이번 사태에 대한 공분의 파고가 예사롭지 않음을 예고하고 있다. 당초 이날 집회는 5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앞장섰다. 시간이 지나면서 광장으로 모여 든 탄핵 촛불은 어느새 100만개를 훌쩍 넘겼다. 
 
이날 5차 촛불집회에서 한 할머니는 자유발언대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늙은이들이 박근혜를 세웠다. 그래놓고도, 지금도 박근혜 불쌍하다고 한다. 말이 안된다”며 “나는 요즘 화가 나서 병이 나서 쓰러지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주 눈물을 흘리면서 가증스럽게 ‘저 죄 없다’고 했다”며 박근혜 대통령 담화문을 비난하기도 했다. 
 
베이비붐 세대 및 노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태어난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마음 속에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향한 노인들의 짝사랑도 사실상 차갑게 식어버렸다는 평가다.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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