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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모난돌
2017-02-13 14:26:10 2017-02-13 14:26:10
500원으로 할 수 있는 일.
 
 
자판기 커피 뽑아 마시기, 학교 매점에서 초코파이 하나 사기, 저렴한 볼펜 하나 사기, 생수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것 사서 마시기… 
 
이젠 500원으로는 웬만한 음료수, 과자, 라면을 사기에도 턱 없이 부족하다. 심지어 요즘엔 껌 한 통도 500원을 넘는다. 
 
이 500원을 위해 새벽잠을 뒤로하고 아픈 허리와 다리를 붙잡고 매일 아침 집을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날이 추우면 비닐봉지를 덮으며 500원을 받기 위해 길 위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다. 선착순인 탓에 줄을 서다보면 자리싸움으로 시비가 붙기도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주름살은 더욱 깊어지는 듯하다. 
 
종교단체에서 나눠주는 동전을 받기 위해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은 새벽같이 집을 나선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동전을 나눠주는 장소들을 찾아다닌다. 몇 시에는 어디, 몇 시에는 어디 하루 일정이 빡빡하다. 그들에겐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다. 누군가는 밀린 전기세를 내기 위해, 누군가는 방세를 내기 위해, 누군가는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손녀 손자를 보살피기 위해 이 대열에 합류한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그 길을 ‘짤짤이 순례길’이라고 자조적으로 부른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실직자들에게 커피 값을 명목으로 동전을 나눠주던 시기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현재 그 대상은 실직자에서 노인들로 변했다. 마땅한 직업을 갖기 어려워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노인들이 늘어나며 동전 배분의 주 대상이 노인들로 변한 것이다. 그들은 하루 종일 거리를 돌아다니며 동전을 받고 무료 급식소에서 끼니를 때운다. 실제로 하루 종일‘짤짤이 순례길’을 걸었던 한 노인의 경우 12시간 동안 26.3km를 걸어 총 8800원을 벌었고 밥 세 끼를 때울 수 있었다. 
 
통계청의 ‘2016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7.3%에서 2015년 13.2%로 높아졌다. 노인인구는 5년마다 100만 명 이상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0년 337만2000명에서부터 2005년 436만5000명, 2010년 542만5000명, 2015년 656만9000명까지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통계청은 2016년엔 노인인구가 700만 명을 돌파했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전체 인구 중에서 노인의 비중이 7%에 도달하면 고령화 사회, 14%에 도달하게 되면 고령사회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노인 비율은 약 14%로 고령화 속도가 매우 빠른 상황이다. 그리고 인구추계에 의하면 2025년부터는 노인의 비중이 20%를 넘게 되는데 이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노인 인구비율이 전체의 20%를 초과하며 초고령사회 진입로에 위치하게 됨을 의미한다. 이렇게 노인층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의 삶은 나아질 기미 없이 점점 더 퍽퍽해지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노인층 1인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61.7%이다. 노인 10명 가운데 6명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 1위다. 이때 노인 빈곤율은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전국민 중위소득의 50% 미만 소득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노인의 비율을 말한다. 이는 OECD 국가의 평균보다 약 4배 높은 수치다. 
 
사진/지속가능바람
  
이는 노후대비를 하지 못한 노인들의 수가 많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노인 중 53.1%가 노후대비를 하지 못했다고 했고 가장 큰 이유로는 노후준비능력이 없기 때문(56.3%)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은퇴 후 아무런 소득이 없을 때 노인들은 삶의 가장자리로 몰리게 된다. 더 이상의 경제생활을 하기 어려운 상황 속 그들은 살기 위해 순례길을 나설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고령층으로 갈수록 경제행복지수 평가가 낮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연령대 별로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60대 이상이 29.3점으로 가장 낮았다. 이는 60대 이상 대부분이 은퇴 후 소득이 크게 줄어 생활고에 시달려 경제적 행복감이 낮기 때문이다. 그리고 50대가 36.8점으로 그 뒤를 이었는데 50대 역시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앞둔 상태지만 노후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해 경제적 행복감이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 복지는 빈약하다. 경제생활에 있어서 노인들은 연금소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국내 노후준비의 실태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에 가입조차 하지 않은 경제활동인구가 약 50%에 달한다. 비정규직의 경우 그 가입률이 40%에도 못 미치는데 이는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보장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국민연금 월평균 수령액은 35만원을 채 넘지 않는다. 이는 개인 월평균 최소생활비 136만 원에 턱 없이 못 미치는 금액이다. 국민연금 소득 실질대체율은 25% 수준으로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기초연금 역시 그 보장 수준이 최대 20만 4010원으로 매년 변화 없이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이에 2015년 OECD는 ‘한국경제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한국이 OECD 최고수준인 고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을 낮추려면, 소득이 최저 수준인 노인에 대한 기초연금 지원에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장기적으로는 공적 연금제도의 적용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선 연금제도에 대한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2014년 어느 겨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주택 1층에 살던 한 노인이 퇴거를 앞두고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그는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왔지만 노모가 돌아가신 후 별 다른 수입 없이 살았다. 그의 방에서는 "고맙습니다. 국밥이라도 한 그릇 하십시오. 개의치 마시고"라고 적힌 봉투에 10만원이 든 채 발견됐다. 
 
사진/지속가능바람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있다. 이는 국가가 태어나서면서부터 시작해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의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겠다는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 노동당에서 사회보장제도를 주장하며 내세운 말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노인을 ‘사회적 짐’으로 치부하고 그들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고 있다. 
 
노인들이 종교단체 앞에 동전을 받기 위해 줄을 설 때 서로 간의 간격을 유지하곤 한다. ‘짤짤이 순례길’에 합류하면서도 보는 눈이 많아질 때마다 그들은 간격을 더욱 넓혀 최대한 그곳에 합류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 몸이 힘든 것보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더 싫었던 한 노인도 가난 앞에서는 별 수 없었다. 
 
그들의 절박한 생활을 모르는 척 하는 현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산후 바람저널리스트   baram.news  T  F
 
 
**이 기사는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 바람>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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