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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암살' 이어 '공조'도 표절 당해…최종림 "문학적 망명 고려 중"
최종 판결 이후 첫 입장 표명…"국제사법재판소 통해 다시 재소할 것"
2017-05-30 18:32:04 2017-05-30 18:32:04
[뉴스토마토 신건 기자] 영화 '암살'이 자신의 소설을 표절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최종림 작가가 영화 '공조' 역시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며 주장하고 나서 파문이 예상된다. 최 작가는 지난 29일 <뉴스토마토>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내 억울함을 토로하며 "문학적 망명까지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작가는 지난 2015년 8월10일, 영화 '암살'이 자신의 소설을 표절했다며 제작사 케이퍼무비를 상대로영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100억원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영화 내용과 자신이 2003년 출간한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와 유사점이 많다는 것이 최 작가의 주장이다. 한 네티즌은 소설과 영화 암살의 내용을 비교하는 영상을 올려 최 작가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은 일주일 만에 기각됐고,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지난 26일 대법원이 원고 패소를 판결함으로써 법적인 분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대법원은 판결이유에 대해 "원심판결 및 상고 이유를 모두 살펴보았으나 제작사가 표절을 했다는 원고측의 주장은 이유 없음이 명백하다"며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고 설명했다.
 
제작사인 케이퍼필름은 지난 29일 "역사적 사실은 특정인이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라며 "앞으로는 근거 없는 무분별한 표절소송으로 창작자들이 고통 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법원의 판결을 환영했다.
 
반면 최 작가는 "법원이 원시적인 잣대 하나만으로 작가들을 핍박하면 누가 국내에서 작품을 할 수 있겠냐"며 "남의 집에서 빵이나 잔을 훔쳐도 감옥에 보내는데 정신적 자산을 훔쳐가는 행위를 사법부가 방치하고 있다"며 대법원을 비판했다.
 
 
 
"'암살' 속 이야기, 역사에 기록되지 않아"..."표절했다는 명백한 증거" 
 
최 작가는 해외여행도 힘들었던 90년대 후반, '코리안 메모리즈' 집필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젊은 시절, 머리에만 담아왔던 내용의 기본 자료를 모으기 위해서다. 그는 1년 반 가량을 중국에 머물며 독립투사와 관련된 자료를 꾸준히 수집했고, 그 과정에서 역사책에서는 볼 수 없던 많은 이야기들을 찾을 수 있었다. 최 작가는 "여성 독립투사가 저격수 역할을 한 것이나 의열단이 3인 1조로 조선에 침투한 내용은 자신이 아니면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작가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데카당스'라는 단어도 자신의 소설을 표절한 근거라고 말했다. 데카당스는 불어로 "기존의 사회 규범 및 도덕을 비판 또는 반대하는 경향"을 뜻한다. 최 작가는 "당시 독립군들이 이런 생소한 단어를 쓰는 것이 작품과 맞지 않는 것 같았다"며 "처음에는 빼려고 했지만, 작품의 멋을 살리기 위해 넣은 단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사람들도 잘 쓰지 않는 단어가 영화 속에 나온 것은 자신의 소설을 표절한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최 작가는 표절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사법부는 작품 속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역사에 기록된 적이 없는 내용"이라며 "내 소설을 표절하지 않았으면 나올 수 없는 구성"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문학하는 사람들에게 '암살'과 '코리안 메모리즈'를 비교해 보여줬을 때, 한 명이라도 배끼지 않았다고 말했으면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라며 "모든 사람이 표절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사법부만 표절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주장했다.
 
 
'공조'도 내 작품 표절..."핵심키워드만 빼낸 재가공한 작품"
 
최 작가는 올해 초 개봉한 영화 '공조' 역시 자신의 소설 일부를 표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근거로 북한 요원과 슈퍼 노트를 지목했다. 최 작가는 "자신의 소설 이전에는 북한과 슈퍼노트를 소재로 한 작품이 없었다"며 "영화 '공조'가 작품의 핵심 키워드만을 빼내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 작가가 2015년 출간한 ‘사라진 4시10분’은 슈퍼노트 인쇄 전문가 박성한을 두고 그를 망명시키려는 남한 공작원과 본국으로 송환하려는 북한 당국 사이에 벌어지는 암투를 그린 작품이다. 특히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스릴러와 로맨스를 접목시켜 제18회 아시아프로젝트마켓에서 뉴 크리에이터상,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소설부문 최우수상을 받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화 '공조'는 올해 초 개봉한 영화로 특수 정예부대 출신의 북한형사 림철령이 위조 지폐를 찍어내는 동판 '슈퍼노트'를 탈취하기 위해 남한 형사와 공조 수사를 벌이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다.
 
두 작품의 내용은 다르지만 '슈퍼노트'라는 키워드는 분명하게 존재한다. 이 때문에 최 작가는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사라진 4시10분'을 영화화 하지 못했다. '슈퍼노트'라는 핵심 키워드가 영화 '공조'와 겹치면서 작품의 독창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공조'가 개봉하자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 해주기로 했던 감독에게 "더 이상 차별성이 없다"며 "여기서 접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 작가는 자신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작품을 냈던 것은 좋은 소설이 나와야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핵심 모티브만 가져간 것에 대해서는 유감의 뜻을 밝혔다. 그는 "모티브만 있으면 작가들이 이야기를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라며 "(암살 소송에) 정신이 없는 사이에 (공조가)개봉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학적 망명 고려중"..."국제사법기관 판단 받을 것"
 
최 작가는 현재 파산 직전이다. 집을 팔아 2억5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마련했지만, 22개월간 소가 진행되면서 모든 재산을 소진했다. 여기에 상대방에게 지불해야 할 금액까지 더하면 최 작가는 빚더미에 앉게 된다.
 
최 작가는 국내 사법부의 판결에 유감을 표시하며 "상황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면 문학적 망명을 통해 헤이그나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다시 한 번 판결을 받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법이 아닌 국제법으로 판결을 받아 보겠다는 뜻이다. 최 작가는 "제작 관계자들이 떳떳하다면 국제사법기구에 나와 재판을 받고, 거기서도 패소한다면 판결에 승복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 작가의 바람과는 달리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사건이 다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최 작가가 WIPO에 분쟁조정을 신청했지만, 상대측인 케이퍼필름이 이를 거부해 무산된 예가 있기 때문이다. WIPO는 쌍방 모두의 신청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에 어느 한 쪽라도 거절을 하면 분쟁조정을 진행할 수가 없다.
 
최 작가는 "작품 하나를 집필하는데 짧게는 4년, 길게는 7년 정도가 걸린다"며 "작품을 하는 것마다 누군가가 훔쳐가버리는데, 사법부가 이것을 보호해주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작가 활동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 "고국이라고 생각하고 한글 작업을 하러왔던 내가 원망스럽다"고 덧붙였다.
 
신건 기자 helloge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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