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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 실패한 정치가 ‘짝퉁 자본주의’ 낳는다
낙수효과 기댄 정책에 심화된 미국 불평등…‘균열’된 한국 사회 거울처럼 비춰
거대한 불평등|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이순희 옮김|열린책들 펴냄
2017-06-08 08:00:00 2017-06-08 08: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거대한 불평등’을 제대로 읽으려면 그가 어떤 인물인지부터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2001년 정보 비대칭성에 따른 금융, 노동시장의 문제를 파헤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그는 이후로도 줄곧 불평등 문제에 매스를 들이대 왔다.
 
부시 행정부 시절의 부유층 감세조치가 전체적인 소득 불균형으로 이어진 과정을 날카롭게 파고들었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은행 등 금융권 감싸기 문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연장선상에서 2011년 1% 상위층과 99% 나머지 사이의 균열 문제를 제기한 칼럼은 반월가 시위로 확대돼 미국 내 경제, 사회 구조 전체를 뒤흔든 계기가 되기도 했다.
 
거대한 불평등은 그런 저자의 행보를 서사적인 방향으로 엮어가면서 오늘날 자본주의의 불완전한 부분들을 짚어주는 책이다. 지난 10년간 뉴욕 타임스,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배니티 페어 등 유명 매체에 기고한 칼럼을 하나하나 들추며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와 원인을 찾고 해법까지 종합적으로 모색한다.
 
불평등은 전 세계적 문제이지만 책에서 그의 겨냥은 대체로 현대판 자본주의의 ‘정수’ 미국을 향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년간 급속도로 성장하던 미국은 1980년대 초반까지 모든 국민의 성장 과실을 고루 나누고 성장하던 국가였다.
 
하지만 1987년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고 상위 고소득층 위주의 정책으로 전환하면서부터 빈부가 나뉘기 시작했다. 그러한 불평등은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에서 유사한 정책들로 심화, 확대됐다. 정책결정자들과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 소수의 재벌들은 상위층의 부가 늘면 중, 하위 계층에까지 파급효과가 미칠 것이란 ‘낙수효과’를 들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오히려 지난 30년간 불평등은 심화됐고 기회 균등은 사라졌다. 정치세력과 결탁한 소수 고소득 계층이나 기업들은 자기 이익 챙기기에 급급했고 그로 인한 경제 위기의 책임은 나머지 99% 계층에게 세금 폭탄으로 돌아갔다. 이익을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로 넘겨지는, ‘짝퉁 자본주의’에 의해 번영은 소수 계층이 누리는 특혜가 됐다.
 
그는 “부시 행정부 시절 부자감세 조치는 경제활성화 명목으로 도입됐지만 오히려 부자들의 지대 추구 행위를 부추겼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집을 잃은 수백만 주택 소유자들을 방치한 채 가해자였던 은행들에 수천억달러의 구제 자금을 지원한 것 역시 ‘미국식 사회주의’라는 말 외에 달리 설명할 법이 없다”고 지적한다.
 
건강과 교육, 정치적 자유, 신변 안전 등의 부문에서도 계층간 구분선은 더욱 명확해졌다. 소위 ‘돈 있는 자’들만 더 좋은 혜택을 누릴 수 있었고 차별은 세대에 걸쳐 대물림 됐다. 저자는 “이러한 불평등 문제로 오늘날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을 더 이상 꿈꾸기 힘든 나라가 됐다”며 “불평등이 국가의 총수요를 줄이고 사회적 결속력을 약화시키면서 경제의 성장동력을 떨어뜨렸다”고 말한다.
 
그런 맥락에서 저자는 경기회복을 위한 해법이 국가의 올바른 역할에 있다고 강조한다. ‘혼자 힘으로는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는’ 시장의 특성을 인정하고 신중한 재정정책 설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그가 제시하는 방법론들은 부의 편중을 완화하는 공정한 정부의 정책들이다.
 
구체적으로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 시장의 공정성을 해치는 은행에 대한 엄격한 법률 적용, 수익성이 높으면서 노동 집약적인 공공 부문에 대한 투자 증가, 교육과 의료 등의 서비스 부문에 대한 장기 투자 등을 든다.
 
“물론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는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제한한다. 하지만 이런 제약 속에서도 우리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확장시킬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 비율의 축소를 충분히 이뤄 낼 수 있다. 우리 경제의 번영을 복원하는 데 필수적인 정책들을 선택하느냐 못하느냐는 오로지 정치적인 문제일 뿐이다.”
 
책의 말미에는 이미 미국과는 다른 길을 모색하면서 현대판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타개해 가는 몇몇 국가의 대응 방식이 소개된다. 저자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임에도 모든 국민에게 무상 의료와 무상 대학 교육을 제공하는 모리셔스, 국가 주도로 빈곤 퇴치 인구 5억명을 구출해 낸 중국 등을 참고 사례로 거론한다.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그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짝퉁 자본주의’는 미국의 이야기로만 보이지않는다. 지난 정권 동안 고착화된 대기업과 정부 간 유착, 그로 인한 부의 양극화 심화 등에서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제, 사회 문제가 거울처럼 비춰진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책 추천사에서 “저성장 기조의 고착화, 재벌 대기업 시스템의 한계, 상위 몇퍼센트와 대다수 근로 대중 사이의 ‘거대한 균열’ 등 한국 자본주의의 모델은 지금 여러 면에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며 “일급의 경제학자가 엮어 낸 이 소중한 글들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로만 읽을 수 있는 형편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거대한 불평등'. 사진제공=열린책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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