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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일의 소방패션 브랜드될 것"
(피플)이규동 파이어마커스 대표
폐호스로 가방 제작…소방 메시지 담은 의류 출시 계획
"청년의 관점에서 패션 통해 소방 가치 알려나갈 것"
2017-06-15 06:00:00 2017-06-15 06:00:00
[뉴스토마토 이보라 기자] 30살의 이규동 대표가 이끄는 '파이어마커스'는 소방패션전문브랜드다. 아버지가 소방관인데다, 이 대표 역시소방방재학과를 졸업해 소방관 및 소방관문화에 대한 친숙함이 그를 소방패션브랜드 창업으로 이끌었다. 'Carry the fighter'(소방을 담다) 라는 슬로건 아래 소방에서 나오는 흔적들로 제품을 만들고, 소방관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를 만나 소방관의 가치와 파이어마커스의 사업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원생쯤으로 보일법한 30세의 젊은 청년 이규동 대표의 삶은 '소방'으로 둘러싸여있다. 아버지가 소방관인 관계로 어렸을 때부터 소방관 가족의 삶을 살았고, 그 영향으로 호서대 소방방재학과에 진학해 소방공무원과 그와 관련한 업무를 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 그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공무원 공부에 1년간 매달렸다. 하지만 공무원의 길은 그와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친구 따라 가입한 창업동아리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창업 아이템을 찾던 중에 폐소방호스로 가방을 만든다는 영국의 한 기업의 사례를 접하게 됐다. 소방관과 소방문화에 익숙했던 그는 무릎을 탁 쳤다. 그 길로 사회적기업 설립에 나서게 됐다.
 
"아버지, 폐호스로 가방을 만들어볼까 하는데 하나 가져다 주실 수 있을까요?"
"공무원 공부나 해"
 
소방서에 다니는 아버지에게 호스를 가져다 줄 수있는지 요청했지만 아버지 반응은 시큰둥했다. 다음날 이 대표의 아버지는 검은 색 봉지를 툭 건넸다. 폐호스였다. 소방서에서는 사용기한이 지난 폐호스를 폐기 처분한다. 폐호스는 재활용하지 못하고 일반쓰레기로 분류돼, 상당한 양이 버려지고 있다. 아직까지 전국의 소방서에서 얼만큼의 폐호스가 버려지고 재활용되는지에 관한 통계조차 없는 상황이다.
 
그는 폐호스를 이용해 가방을 만들면 자원을 재활용할 수 있는데다 소방관 문화를 사회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이디어를 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2014년 4월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에 선정됐고 두 달 뒤인 6월에는 '파이어마커스' 브랜드를 론칭했다. 같은 해 코엑스 소셜벤처페스티벌과 킨텍스 자원순환 전시회에 참가하고 소방패션쇼를 개최하는 등 관련분야로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규동 파이어마커스 대표(오른쪽)는 "청년의 관점에서 패션을 통해 소방의 가치를 알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파이어마커스
 
"신이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 아이를, 공포에 떨고 있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중략)…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
 
미국의 한 소방관이 지었다는 이 시는 열악하고 험난한 처우 속에서도 인명을 구하려는 소방관의 헌신적인 자세가 드러난다. '소방관의 기도문'이라 불려지는 이 시는 지난 2001년 6명의 소방관의 목숨을 앗아간 홍재동 방화 사건의 영전에 바쳐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또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여주인공 '길라임'의 아버지의 내레이션으로 등장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는 에코백에 이 기도문을 삽입했다. 소방관 및 일반 고객으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사업 초기에 그는 이같이 소방자재를 이용한 가방과 메시지를 담은 에코백을 제작 판매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의류 제작도 시작했다. 강원도 산불과 대구지하철사건, 소래포구 화재 등 산과 바다, 대중교통에서 일어난 3가지 사건을 소재로 했다. 이 대표는 "비극적인 화재사건을 잊지 말고 기억해 경각심을 가지자는 의미에서 소방관 관련 키워드를 삽입하려 한다"고 말했다. 'First In Last Out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늦게 나온다) 라는 메시지도 담을 예정이다.
 
그는 가방 디자인이나 의류 디자인을 배운 적 없지만 독학으로 가방 제작에 대한 노하우와 기술들을 익혀가고 있다. 이 대표가 가방을 직접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가방'에 대해 알아야 잘 팔 수 있다는 소신 때문이다. 아직 의류 제작 전담 직원이 없어 의상학과의 자문을 구하거나 신진디자이너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 대표는 소방관에 필요한 물품을 기부하는 등 처우개선에도 나서고 있다. 2015년에는 3000만원, 지난해는 1억원 넘는 매출을 올려 물품을 기부했다. 아직까지 기부에 관한 기준을 만든 것은 없지만 사정이 되는 한 한국소방복지재단에 매출의 일부를 기부하면서 소방관의 작업 환경 개선에 힘을 보탤 계획이다. 이 대표는 "서울시와 경기도 같은 곳의 소방관은 그나마 낫지만 소속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인력과 장비 수준이 천차만별이라, 장갑을 사비로 구입하는 사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장갑을 기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파이어마커스가 알려지면서 대기업과 기관으로부터 제휴협력 제안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삼성물산 에잇세컨즈의 명동 2호점 오픈 이벤트로 스페셜 에코백을 제작했고, 화상전문병원을 운영하는 베스티안 재단과 캐릭터를 개발해 제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롯데호텔과 협업해 폐 소방호스를 이용한 키링을 제작해 납품했다. 이 대표는 "사회적으로 소방관의 가치가 재조명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SNS 외 별다른 홍보활동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외부로부터 협력 제안이 오고 있어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안전처에 소속된 소방청을 독립시키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면서 소방공무원의 처우가 개선될 것으로 전망돼 이 대표는 고무된 상태다. 소방관이 동물 구조부터 취객후송까지 민원 처리업무도 담당하며 본업인 화재진압에 몰두하지 못한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해외에서는 소방차가 지나가면 시민들이 자리와 차선을 내어주고, 박수를 치는 등 대우해주는 것과 국내 상황은 비교된다"며 "현직소방들의 처우개선도 필요하지만 시민들이 소방관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분위기는 바뀌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이 대표는 "소방관은 영웅처럼 대우 받아야할 직업"이라며 "파이어마커스가 소방을 브랜드화해 이들이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도록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말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을 준비 중이다. 전담으로 가방을 만들어주는 인력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할 계획도 세웠다. 소방 관련 자재를 이용한 가방 뿐 아니라 소방의 메시지를 담은 일반 패션 제품도 기획하고 있다. 그는 "단기적인 목표는 일상생활에서 소방을 하나의 문화로 적용시켜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담을 수 있는 제품을 제작하는 것"이라며 "청년의 관점에서 패션을 통해 소방의 가치를 알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동 파이어마커스 대표(왼쪽)가 소방서에서 쓰고 남은 폐호스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제공=파이어마커스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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