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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LCD 주도권 중국으로…한국, OLED 전환 서둘러야"
"플렉시블, 필요성에 대한 소비자의 의문 풀지 못해…소비자 선택이 경쟁력"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사람'…창의적 인재 양성으로 교육제도 혁신해야"
2017-06-19 13:55:00 2017-06-19 14:07:00
'한국 디스플레이의 산 역사', 'LCD의 아버지'. 이신두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에 대한 수식어다. 이 교수는 액정표시장치(LCD) 원천기술을 개발해 한국을 세계 1위 LCD 산업국가로 올려놓은 장본인이다. 국내 LCD 산업 태동기부터 함께 하면서 한국이 경쟁국인 일본을 제치고 LCD 산업 선두로 올라서는데 크게 공헌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출범한 이후로는 지난 4년 반 동안 자체평가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연구개발(R&D) 성과 지표 개선에 기여했다. 최근에는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 석학회원으로도 선정돼 세계 3대 디스플레이 학회에서 연구 업적을 모두 인정받았다. 정년을 5년 남짓 앞둔 이 교수는 "남은 기간 그저 국가 발전에 도움되는 일을 하는 것이 마지막 소임"이라고 되뇌인다. 지난 1992년 미국 벨 연구소를 그만두고 고국으로 돌아올 때의 결심 그대로다. 정부와 기업들로부터의 수많은 '러브콜'도 후학 양성과 연구를 이유로 마다해 왔다. 대신 상아탑에 머물렀던 기술연구를 현장에 접목하며 산업계와의 조화에 힘썼다. 지난 12일 그의 연구실이 있는 서울대를 찾았다.
 
[뉴스토마토 박진아·왕해나기자] 물리학을 전공한 이신두 교수는 국내 디스플레이 1세대 연구자로 꼽힌다. 연구 분야는 디스플레이를 넘어 바이오, 정보기술 등으로 폭 넓다. 욕심도 대단하다.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패러다임을 바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잇는 새로운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결론은 역시 인재다. 그는 무엇보다 인재가 경쟁력이라며 창의적 인재 양성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새 정부와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후배들에게 몇 가지 과제를 던졌다. 그는 한국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한 분야를 파고들 수 있는 연구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특히 연구자 개개인은 학문분야의 유행을 따르지 말고, 평생을 바칠 각오로 하고 싶은 분야를 연구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부와 기업의 역할, 미래 세대를 위한 과학자들의 소명의식 등에 대한 그의 제언은 오랜 현장경험에서 나온 노학자의 '충심'이었다.
 
이신두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지난 12일 서울대학교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올해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 전시회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본 분야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세 가지 제품을 주의 깊게 봤다. '올해의 디스플레이'로 선정된 LG디스플레이의 65인치 OLED 패널과 삼성디스플레이의 9.1인치 스트레처블 OLED 패널, 중국 BOE의 5인치와 14인치 퀀텀닷디스플레이(QLED) 패널이다. 기존의 삼성 QLED TV는 LCD 패널에 퀀텀닷 백라이트를 채용했지만, BOE의 패널은 진정한 의미의 자체 발광 방식이었다. 다만 실제 제품으로 양산하는 데는 적어도 4~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기술 발전은 색 표현력과 재현성, 높은 동적 구간(HDR·High Dynamic Range), 저소비전력으로 집중될 것이다. 새로운 응용 분야로는 인터페이스 기술, 3차원 영상기술을 활용한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시스템,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이 있다.
 
향후 디스플레이 시장 방향은.
 
디스플레이 시장은 수요가 공급을 창출해 가는 구조였다. 12.1인치 LCD는 개인이 들고 다닐 수 있는 노트북이 나오면서 격변이 일어났다. 그 다음이 TV인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면서 LCD TV가 호황을 맞았다. 지금 디스플레이 시장은 갈 곳이 없다. 플렉시블(flexible)이 시제품으로 나온 것은 10년도 넘었다. 플렉시블은 소비자 입장에서 '왜 TV를 둘둘 말아야 하지? 왜 접어야 하지?' 하는 의문을 풀지 못했다. 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양산 업체, 양산 규모 등이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 적용 분야도 스마트폰·TV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에게 플렉시블만의 성능과 서비스를 제시하고 못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시장도 결국 수요가 있는 곳을 쫓아간다. 결국 고객이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갈 것이다. 기업은 문화를 보고 미래를 읽어 제품 개발을 해야 한다. 누가 먼저 트렌드를 읽고 고객들의 마음에 다가갈 것인지가 경쟁력이다.  
 
삼성전자는 QLED TV를, LG전자는 OLED TV를 앞세우면서 신경전도 거세졌다.
 
TV 시장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 양대 기업의 전략과 자존심 문제에서 비롯됐다. 마치 과거 PDP와 LCD 진영 간의 경쟁을 보는 것 같다. 선발주자와 후발주자, 기술발전의 시기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다. 결국 시장에서의 소비자의 선택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LCD와 OLED가 기술적 차이로 장단점이 있지만, 소비자의 눈으로 판별할 수 있는 성능·가격·디자인 등의 요소들이 승자를 결정할 것이다.
 
'디스플레이 굴기'를 선언안 중국의 추격이 거세다. 중국의 위협, 어떻게 보고 있나.
 
심각하다. 우리나라 기간산업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중국 TV 업체들의 자국산 LCD 패널 채용은 2014년 50%, 지난해 80%, 올해 85%까지 높아지면서 조만간 완전 자급 시대가 될 것이다. LCD는 기술 격차가 크지 않아 조만간 경쟁 자체가 불가능해져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중국 정부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중국 기술자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전폭적으로 자금을 지원해 시제품도 양산 라인에서 만든다. 우리나라는 중국 추격에 대응해 계속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발 빠르게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제품으로 앞서가는 길 밖에 없다. 현재까지 양산 기술격차가 2~3년 이상 차이 나는 OLED로 전환해야 한다. 이와 함께 스마트폰 이외의 새로운 응용분야를 개척하고 OLED 이후의 차세대 기술 개발도 병행해야 한다.
 
이신두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지난 12일 서울대학교에서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 앞서 자료를 찾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올해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정책을 평가한다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는 미래 먹거리 창출에는 기초과학의 발견, 원천기술 개발, 기술혁신 차원의 R&D 체계 선순환 구조 등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올해 정부의 기초연구 지원 확대와 성과 평가의 선진화는 매우 긍정적이다.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조직되고 기재부로부터 예산 관련 권한을 가져온 점도 고무적이다. 연구비 증액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지속 가능하게 동일분야 연구를 안정적으로 지원하느냐의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정책은 성과 창출과 파급 효과 관점에서 중장기적인 과학기술과 단기적인 정보통신으로 나눠서 추진하는 경향이 짙다. 5년 단임 정부 체제에서 단기 성과 중심으로 보면 정보통신 분야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올해 기초연구비가 1600억원 증액돼 1조2600억원 규모라고 한다. 여기에는 관리비용까지 포함돼 있어 실제 연구자들 손에 들어가는 연구비는 얼마 안 된다. 특히 새 정부 들어 대형 국가사업이 생기면 기초연구비도 여기에 다 투입된다. 정부가 기초연구에 작은 액수라도 오래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4차 산업혁명을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봇, 생명과학 등이 주도한다고 얘기한다. 이러한 기술 분야의 근간을 이루는 두 가지는 인공지능과 네트워크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바로 인간 고유의 직관력, 통찰력, 창의력이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사람'이다. 달리 말해 4차 산업혁명 역시 '창의적 인재 양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의 암기식, 주입식 교육을 창의성 위주의 교육으로 바꿔야 한다. 교육의 틀을 바꾸고 입시 체제의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영어, 수학 등을 선행교육으로 접하고 있다. 생각하도록 하는 교육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을 할 수 없도록 교육 받는다.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유태인의 교육 핵심은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상호 토론에 두고 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을 위해서는 입시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학문분야의 유행을 따라가지 말라. 평생 할 수 있는, 할 각오가 있는 분야에 투자하라'고 말하고 싶다. 연구자들이 연구 분야의 유행과 연구비 규모에 따라 이합집산해서는 안 된다. 연구자 자신이 자율성을 보장받는 대신 연구비와 연구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그러면 노벨상도 따라온다.
 
이신두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지난 12일 서울대학교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박진아·왕해나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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