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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분수효과를 위한 사회적 책임의 강력한 낙수효과
2017-08-21 08:00:00 2017-08-21 08:00:00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이 명제는 자연의 진리다. 이를 경제에 적용한 이론이 바로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다. 상층(대기업·고소득층)의 부(富)가 충분히 차면 그 부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바닥을 적시면서 하층(중소기업·저소득층)이 혜택을 본다는 주장이다.
 
1980년대 전반(全般)을 통치했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정부(1981~1989)는 이 낙수효과를 경제정책의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받아들인 정권이었다. 미국은 1960년대 말부터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한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겪고 있었고, 특히 1973년과 79년에 일어난 두 차례 오일쇼크(oil shock)로 그 상태는 더욱 심각해져 있었다. 스태그플레이션으로부터 미국 경제 회생은 레이건 정부의 가장 중요한 당면 목표였다. 레이건 정부는 경제활성화를 전면에 내걸고 대기업과 부유층의 법인세와 소득세를 대폭 인하했다. 물론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도 완화했고, 사회보장사업에 대한 정부의 개입도 최소화했다.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의 핵심이다. 1930년대에 이미 실패한 후버 경제학의 재판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레이거노믹스는 전세계로 확산되어 세계 경제정책의 기조가 되었다. 우리나라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는 레이거노믹스의 전반적인 기조에 충실한 정권이었다.
 
그러나 IMF는 이 낙수효과가 허상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2015년에 내며 '양극화 심화' 등 그동안의 성장중심 경제정책에 대해 뼈아프게 반성한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20% 계층의 소득 비중이 증가할수록 GDP는 오히려 감소했다. 자연의 진리는 통하지 않았다.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저서에서 "부자들에게 유리한 소득재분배로 사회적 파이가 불어난다고 해도 시장에 맡겨두면 상류층의 부가 밑으로 흘러내리는 정보가 미약하기 때문이 상당한 양의 물이 밑으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복지복가라는 이름의 전기펌프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중심경제'라는 경제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가계를 분배의 객체에서 성장 주체로 인식하고 가계소득 증대 노력을 강화한다. '소득주도 성장'이다. 성장의 과실이 가계에 전달되도록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노력한다. '일자리 중심 경제'다. 성과에 기여한 만큼 경제 주체가 정당하게 보상받도록 사회보상체계를 혁신한다. '공정경제'다. 경쟁제한적 제도혁신과 혁신 중소기업 육성 등으로 생산성 중심 경제로 전환한다. '혁신성장'이다. 구체적인 내용들을 보면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와는 반대로 분수효과(Trickle-up effect)로 방향을 전환했다. 공공부문을 비롯한 민간 부문에서의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복지 강화를 통해 서민들의 가계소득을 증대시키면 소비가 증가하고, 이 소비 증가는 기업의 생산과 투자를 촉진해 경기를 전반적으로 부양시켜 결국 대기업과 고소득자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다는 논리다. 초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과 초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 그리고 공정경제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와 실효적인 집행 등은 이 과정에서 필수적이다. 물은 아래에서 위로 흐를 수 있다. 사회는 자연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사회책임투자(SRI)는 낙수정책을 추진하든 분수정책으로 방향을 바꾸든 기업과 투자처가 존재하는 한 매우 중요한 정책이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높이기 위한 핵심적인 전략이자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CSR과 SRI 추진은 낙수방식이 효과적이다. 공공기관에서 민간기업으로, 민간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흘러내리는 방식이다. SRI도 국민연금의 투자로 그나마 촉진되었고, 2006년과 2007년 당시 CSR이 잠시나마 진보했던 건 공공기관의 선도적 참여로 인한 민간 대기업으로의 낙수효과였다. 당시에는 CSR 주무부처였던 산업자원부도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필자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 중 '공정경제'와 더불어, '사람중심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재정?공공?정책금융 등에 대한 '정책 인프라 혁신' 대책 중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공공부문의 핵심가치로 재정립하겠다는 내용에 특히 주목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사회책임투자(SRI)를 촉진하는 방안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공정경제 확립 방안으로는 사회책임투자에 입각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와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실효성 확보, 또 이를 통한 기업의 사회적·환경적 가치 경영 유도 등을 약속했다.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임 핵심 가치화를 위해, 방안에 따르면 공공기관 경영평가시 고용창출?윤리경영 등 사회적 가치 반영을 강화하고, 지방공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영평가지표도 마련한다. 사회적 가치 신규지표 도입을 위해 올해 하반기에 용역을 추진하고, 입찰참가자격사전심사와 적격심사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반영한다. 국회에서는 김경수 의원이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을, 이춘석 의원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무 조항을 신설한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각각 지난해 발의해 놓은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책임 확산 정책은 기본적으로 낙수방식이다.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임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이를 동력으로 민간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의 확산시킨다는 전략이다. 사실 공공성 그 자체가 존재 목적인 공공기관이 정책수행(조달·개발·위탁·기타 민간지원 사업 등) 과정에서 인권·노동·안전·양질의 일자리·사회적 약자 배려·대중소 상생협력·환경과 생태 등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가치에 대한 고려를 효율성과 비용절감이라는 이유로 소홀히 하는데, 그 어떤 민간기관이 적극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임은 현재의 정책보다 더 강력한 방안으로, 더 실효성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사회적 책임의 낙수효과를 극대화하고, 향후 분수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KSRN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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