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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사회·인류 위한 '비전'이 실리콘밸리 탄생시켰다
충분한 자율권·실패 용인이 ‘창조적 가치’…한국 기업, 내실있는 운영 방식 배워야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어떻게 일할까|정권택·예지은 지음|삼성경제연구소 펴냄
2017-09-13 18:00:00 2017-09-13 18: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우리(구글)는 직원들이 회사뿐 아니라 개인 생활에서도 효율적이기를 바랍니다. 직장에서 한주 내내 힘들게 일하고 집에 돌아가서 온 갖 잡일에 시달리기를 바라지 않아요. 그래서 직원들의 효율적인 삶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죠.”
 
라즐로 복 구글 인사업무 책임자는 구글의 획기적이고 다양한 복리후생 프로그램이 업무 효율성을 위해 기획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사내 무료 카페테리아와 자동차 수리서비스, 마사지와 미용실 등 수많은 복지 혜택이 언론에 의해 부각됐지만 사실 그 안에 담긴 '경영철학'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구글의 경우처럼 실리콘밸리의 조직 문화는 의례 ‘화려한 것’으로 치부된다. 직원들에게 자유를 주고 그들에게서 나온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이 회사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식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우리도 해볼까’란 단순한 '로직'에 사로잡혀 어설프게 따라하다간 실패를 맛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실리콘밸리 기업들처럼 혁신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걸까.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이 집필한 신간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어떻게 일할까?’는 제대로 된 벤치마킹을 위해 실리콘밸리의 실체부터 정확히 해부하는데서 시작한다.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와 포춘, 글로벌 컨설팅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의 리스트에 오른 기업 중 가장 혁신 속도가 빠른 29개 기업을 선정했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을 분석해 ‘비전(VISION)’, ‘오너십(OWNERSHIP)’, ‘아이디어와 새로운 시도(IDEA&TRIAL)’, ‘협력(COLLABORATION)’, ‘효율성(EFFICIENCY)’이라는 5가지 키워드로 설명한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사회와 인류에 기여하겠다는 원대하고 의미있는 ‘비전’부터 세운다. 구글처럼 ‘전 세계 정보를 체계화해 누구나 쉽게 접근하게 한다’거나 페이스북처럼 ‘더 개방되고 연결된 세상을 만든다’는 식이다. 혹은 구체적으로 명문화돼 있진 않지만 애플처럼 스티브 잡스 자체의 존재감이 기업의 비전을 대변하는 경우도 있다.
 
명확한 비전을 수립하는 것은 단순히 회사가 지닌 아이디어나 기술 그 자체를 강조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자신들의 비즈니스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스토리로 전달함으로써 창업자와 투자자, 직원들을 하나의 구심점으로 엮는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심리적으로 기업의 ‘주인(오너)’란 생각을 갖고 보다 능동적이고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인턴사원들에게 '내가 스페이스 X의 최고경영자(CEO)라면 이렇게 하겠다'는 미션을 던지는 엘론 머스크나 일주일 동안의 사내 핵심정보를 직원들과 공유하는 에어비앤비 CEO 브라이언 체스키의 사례 등을 통해 저자들은 회사의 주인처럼 사고하게 하는 실리콘밸리의 ‘오너십’ 문화를 설명한다.
 
실리콘밸리에선 이처럼 직원의 자율권을 보장하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도’가 넘쳐난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실패는 피해야 할 위험이 아닌 겪어야 할 과정으로 장려된다. 2005년 구글비디오 실패 경험에 기반해 2006년 유튜브 인수로 성공한 구글이나 500여명의 벤처사업가들이 전문가들과 실패의 경험을 나누며 교훈을 공유한 ‘페일 콘퍼런스’ 등은 모두 그런 과정에서 탄생했다. 실패에 관대한 문화가 이미 DNA로 내재돼 있는 셈이다.
 
이 외에도 ‘협력’의 문화를 소개하는 과정에선 임직원의 소통을 위해 문이 없거나 원형 사무공간을 만드는 인텔이나 애플을 사례로 들었고, ‘효율’의 문화를 소개할 때엔 회의나 보고에서 직접적 연관이 없는 직원의 참여를 최소화시키는 구글, 테슬라를 예로 제시한다.
 
이런 5가지 원칙이 우리 기업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실제로 국내의 많은 기업들이 지금까지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겉면만 따라하는데 급급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가령 우리나라 기업에서의 ‘월례회’나 ‘경영 현황 설명회’는 여전히 형식에 치우쳐 있고 미리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CEO와 직원이 회사의 주요 사안에 대해 격의 없이 토론하는 실리콘밸리의 ‘올 핸즈 미팅’과 전적으로 대비되는 부분이다.
 
또 ‘과장급 이상 직원 필참’ 식의 동원령을 내리거나 재택근무제나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도 고참 눈치 때문에 실제로 활용하지 못하는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기업문화가 잔존한다. 저자들이 보기에 이러한 문화는 좋은 취지로 도입된 제도의 효과를 퇴색시키고 기업들이 혁신 달성에 실패하게 되는 주 원인이 된다. 선진 제도를 섣부르게 도입하려 하기보단 내실있는 운영방식을 보고 근본부터 뜯어 고치려는 자세가 더 필요한 것이다.
 
저자들은 “어떤 제도를 벤치마킹하고자 한다면 눈에 보이는 모습 만이 아니라 그 회사가 이런 제도를 운영하는 목적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방법적 측면까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며 “막연히 ‘우리도 해볼까’라는 자세로 무작정 남의 것을 그대로 가져온다는 생각을 가져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어떻게 일할까. 사진/삼성경제연구소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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