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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문구업계)②저출산 고착화에 다이소 등 급성장 덮쳐…복합적 위기
급속히 외형 키운 다이소, 문구류 광범위 취급
학습준비물 무상지원제·급속한 디지털화도 위기 요인
2017-10-24 06:00:00 2017-10-24 06:00:00
[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문구업계가 위기에 빠진 데에는 복합적인 요소가 얽혀있다. 문구업계 중 도매·유통 쪽 업체들은 최근 다이소 공격에 집중하며 다이소가 문구업계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이소가 무분별하게 점포를 늘리면서 문구류를 광범위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생활용품점을 표방하는 다이소의 경우 1000여종의 문구류를 취급하고 있는데 문구업계는 이 때문에 자신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이소는 지난해 기준 1조3055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기업형 슈퍼마켓인 지에스(GS)슈퍼마켓(1조4244억원)과 비슷하다. 다이소가 문구류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생활용품을 취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매출규모는 막대하다. 알파를 포함한 국내 5대 문구 유통사 매출(지난해 기준 4500억여원)을 합친 것보다 3배가량 많다. 2006년엔 매출 1000억원이었지만 10년 만에 매출 2조원을 눈앞에 둘만큼 덩치가 커졌다.
 
하지만 규제에선 한 발 벗어나 있다. 지에스 슈퍼마켓은 한 달에 2일 실시되는 의무 휴업에 해당되지만 다이소는 그렇지 않다. 다이소가 유통산업발전법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은 다이소가 1000개 이상의 점포를 낼 수 있었던 주된 이유로 꼽힌다. 강남역 인근에만 4·10·12번 출구 쪽에 매장이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이찬열 의원에 따르면,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 등 국내 문구단체 3곳에서 전국 459개 문구점을 대상으로 한 ‘다이소 영업점 확장과 문구업 운영실태 현황’ 조사 결과 응답 업체의 92.8%가 다이소 영향으로 매출이 하락했다고 답했다.
 
문구업계는 생활용품점을 표방하는 다이소가 영세 문구업종 35% 가량을 판매하고 있다며 문어발식 확장에도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동재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알파문구 회장)은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싸움에서 인력·자본·환경에서 밀려 항상 패할 수밖에 없다”며 “다이소가 문구품목을 줄이도록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다이소는 생활용품을 파는 곳인데 자꾸 문구류를 늘리니 문구업계가 먹고살 길이 막막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이사장은 “기껏 20~50평(66~165㎡) 문구점들이 300~500평(991~1652㎡) 대자본을 당해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이소는 문구단체 3곳의 설문조사의 신뢰성 자체를 문제 삼으며 문구업계와 동반성장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이소 측은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의 경우 전체 919개 국내 제조사 중 28%만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데,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은 회원사 비율이 6%에 불과하다”며 이들 단체가 문구업계 대표성을 지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이소는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의 32개 회원사와 협력업체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지속적인 업체 수 확대와 거래규모 증가로 동반성장을 이뤄오고 있다”고 반박했다.
 
영세 문구소매점들은 다이소의 무분별한 시장 확대뿐만 아니라 학습준비물 무상지원제도가 문구소매점 연쇄 폐업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문구점 소매업자 이모씨는 “학습준비물 정책상 학교가 학습준비물을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하고, 학생들은 나머지 준비물을 대형마트와 다이소에서 산다”며 “골목 문구점들은 다 힘들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2011년 시행된 학습준비물 무상지원제는 학교가 교육청 지원으로 최저가 입찰을 거쳐 학습준비물을 일괄 구매해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제도다. 학생 복지를 위해 마련된 제도인데, 영세 문구소매점들의 생계는 더욱 막막해졌다. 생계유지를 목적으로 문방구를 운영하는 50~60대가 대부분인 학교 앞 문방구 현실을 고려하면 이들이 대형 업체와 싸워 입찰을 따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성원 전국학용문구협동조합 사무국장은 “학습준비물 무상지원제는 학생 복지 문제라 아예 없애달라고는 할 수 없었다”며 “학생들의 혜택은 유지하되 골목 문구점들도 살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꾸준히 요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별다른 제도 개선은 없는 상황이다. 학생 복지를 위한 학습준비물 무상지원제가 골목상권 해체를 가속화하는 것 외에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우려도 있다. 학습준비물 일괄 구매 입찰이 최저입찰로 진행돼 중국산 저가 제품이 들어가게 되고, 교육청·지자체마다 따로따로 운영돼 교육격차를 해소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문구업계 위기의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는 저출산 고착화 현상이 꼽힌다. 저출산으로 문구를 이용할 수 있는 수요층인 학생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탓이다. 한국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합계출산율은 1.17명이다. 전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1.1명대로 떨어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우리나라 신생아 수는 2012년 약 48만5000명에서 지속 감소해 올해 40만명 선 붕괴가 확실시된다. 문구업계는 저출산 충격파를 받는 많은 산업계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문구 수요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점도 업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스마트기기 대중화에 따라 전통문구 수요 기반이 헐거워졌다. 노트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 하나면 공책, 연필, 수첩, 지우개 등을 한꺼번에 대체할 수 있게 되면서 문구 시장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문구인들은 다이소의 무분별한 점포 확장이 문구업계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사진=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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