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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주는 레시피 보여주고 싶어"
(피플)황지희 요리연구가
쉽고 건강한 레시피 전하는 요리연구가…장르 경계 허물며 실용적인 한식 전파
"요즘 관심사는 '혼밥'과 '평생 단 한 번의 상차림'…음식으로 문화 이야기도 하고파"
2017-10-23 06:00:00 2017-10-23 06:00:00
[뉴스토마토 김나볏 기자] ‘맛집 탐방'과 ‘먹방(먹는 방송)’이 대세인 시대다. TV를 켜면 각양각색의 맛집이 만들어낸 화려한 음식이 쏟아진다. 조건반사적으로 군침이 도는 건 어쩔 도리 없지만 아무리 바쁜 현대인들이라고 해도 매일매일 외식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직접 요리에 도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큰 맘 먹고 찾아낸 레시피엔 어김없이 집에 없는 식재료가 하나둘 등장한다. 장보기가 귀찮아 좀더 쉬운 레시피를 찾아보지만 단맛과 짠맛의 힘을 빌린 것들만 눈에 띈다. 바쁜 현대인들에겐 간단하지만 건강한 집밥, 꼭 필요한 재료로 맛을 내는 레시피가 절실하다.
 
셰프 천지인 세상에서 황지희(46, 사진) 요리연구가의 작은 외침이 힘 있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약선요리협회 전문위원이자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이기도 한 황 요리연구가가 추구하는 요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초등학생도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음식,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게 해주는 집밥이다. 서울시 심뇌혈관질환예방관리사업지원단 레시피 연구진으로 이름을 올릴 만큼 그의 레시피는 건강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다년간의 문화센터 경력을 거치며 실제 생활에서 꼭 필요한 레시피를 연구해온 그는 한식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똑같은 일을 계속하는 건 질색"이라는 그는 한식과 양식, 중식을 넘나들며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 수강생 맞춤형 강좌를 이어나가고 있다. 또한 단순한 요리강습을 넘어서서 문화체육관광부 국내외 행사를 다수 진행하고 뉴델리 세계요리대회와 푸드앤테이블웨어박람회 요리경연 대회에서 다수의 수상을 하는 등 한식의 세계화에 대한 꿈도 키워가고 있다. 쉽고 건강한 레시피에 대해 소개하고 음식을 매개체로 만들어지는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는 황 요리연구가를 만나 요리에 대한 철학과 향후 활동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황지희 요리연구가. 사진/본인제공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도움될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원래 회사원이었다. 로펌, 반도체 회사 등에 근무했다. 그런데 회사를 다닐 땐 똑같은 일만 하는 게 지루하고 퇴근시간이 매일 기다려지곤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요리와 관련해 잡지나 방송 촬영을 간간히 하긴 했다. 워낙 요리에 관심이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첫째, 둘째를 낳고 나서 자연스레 경력이 끊어졌는데 집에 가만히 있질 못하겠더라. 호텔조리학과에 들어가 한식부터 배웠다. 밖에서는 궁중음식도 따로 배웠다. 이후 1년 만에 요리수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겁을 냈는데 1년쯤 됐을 때 입소문으로 9개 문화센터에 나가게 됐다. 첫 수업은 24명 정원에 4명이었다(웃음).
 
문화센터에서 5년 정도 수업하다보니 한계가 느껴졌다. 문화센터에서는 굉장히 빠르게 요리를 해야 한다. 30분 동안 2가지 요리를 끝내고 수강생 실습까지 모두 2시간 안에 마쳐야 한다. 문화센터가 있는 지역별로 메뉴도 다 다르다. 9개 문화센터를 나갈 때는 일주일에 18개 메뉴를 개발해서 수업해야 했다. 5년 전부터는 일을 줄이고 주로 집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까지 두루 섭렵했는데.
 
가정요리를 가르치다 보면 배우는 사람들이 스끼야끼 볶음우동, 조미료 안 넣은 짜장면과 깐풍기 같은 걸 집에서 만들고 싶어한다. 그러면 배워서 알려줬다. '이탈리아 음식은 어디가 맛있더라'하면 배워서 가르쳐 주고, 김밥을 쉽게 싸는 법도 연구해 가르치고, 외국에서 맛있게 먹었던 샌드위치도 직접 만들어 가르치고, 누가 아프면 죽을 끓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겨울이면 김장을 하는 식이다. 기능사 자격증은 요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같은 경우 한식, 양식, 중식 자격증을 땄는데 여러가지를 하다보면 속도도 빨라지고 기본 실력과 감도 자연히 따라붙는다.
  
저서 <황지희의 소문난 쿠킹클래스>에 대한 평을 보면 레서피가 쉽고 간단하다는 얘기가 많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지금 만든 것과 같은 책을 10년 후에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사람들이 그러면 안된다고 쉽게 만드는 레시피로 바꾸라고 하더라(웃음). 수강생들의 영향도 있다. 저는 수강생을 정말 사랑한다. 저한테 예전에 요리를 배워서 외국주재원으로 나간 사람이 '외국에는 그 재료가 없다'고 말했던 것, 어느 수강생이 '초등학교 5학년도 만들 수 있는 요리를 만들어달라'고 했던 것, 또 다른 수강생이 '수업시간에 적었는데 직접 하려니 멘붕'이라고 했던 것들을 다 기억해서 책에 반영했다. 
 
요리 만큼은 양념이 다섯가지를 안 넘어가도록 쉽게 하려하는 편이다. 미역국을 끓여도 고기를 볶지 않고 국간장과 멸치액젓으로만 간을 하라는 식이다. 마늘은 옵션이다. 넣어도 되고 안 넣어도 좋다. 혼밥족이 즐비하고, 아기도 많이 안 낳는 시대다. 거의 집에서들 밥을 안 해먹는데 그게 안타까웠다. 제가 하는 음식들은 양념이 많이 필요 없다. 멸치액젓, 국간장만 있으면 어지간한 간은 된다. 김치도 집에 있는 것. 최소한의 양념 있으면 해먹을 수 있게 만든다. 무인도에서 밥해먹기 수준으로 만들되 건강하게 만든다. 
 
황지희 요리연구가가 요리강습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본인제공
 
현재 운영 중인 '황지희의 쿠킹스튜디오'에는 어떤 사람들이 주로 오나.
 
여러 부류가 있다. 요리를 전혀 몰라서 오는 사람, 강습 중에 맛있는 밥 차려주는 걸 먹기 위해 오는 사람, 70~80세인데 며느리나 사위보기 전에 발등에 불이 떨어져 오는 사람, 집들이를 해야 하는 신혼부부, 엄마 밥에 대한 향수가 있는 사람, 엄마보다 아빠가 손맛이 더 좋아 뒤늦게 재능을 키워가는 사람 등 다양하다. 현재 식당에서 조리사로 근무를 하고 있는데 메뉴 개발을 하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다. 
 
혼밥 시대다. 한식보다는 양식, 가정식보다는 간편식을 선호하는 분위기인데 이런 세태 속 요리의 가치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인간의 수명이 100세에서 110세로 늘어났다. 물론 오래 살면 좋다. 그런데 아프면서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집밥 먹고 오래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요새 방송을 보면 맛있는 식당 위주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고집밥을 너무 안 먹고 있는 게 느껴진다. 작품이 되는 요리는 많은데 가정에서 뚝딱 해먹을 수 있으면서도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주는 집밥에 대한 방송이 드물어 아쉽다.
 
한국약선요리협회 전문위원이기도 하다. 약선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생겼나.
 
한국약선요리협회에서 서울 대표팀으로 2015년 인도 뉴델리에 대회 나가면서 준비 및 공부를 좀더 깊이 했다. 모든 음식은 나쁘지 않지만 나에게 다 좋은 건 아니다. 나한테 더 좋은 걸 찾아먹는 게 약선이다. 약선이라고 하면 무슨 약재료를 넣어야 하는줄 알고 꺼리는데 그게 아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마트에 흔히 있는 재료로 밥을 해먹자는 건데 약선을 공부할 때도 이같은 기조를 유지한다. 마트에 있는 최소한의 약재,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도 약선이 가능하다.
 
건강한 음식에 대한 관심 때문일까. 서울시 심뇌혈관질환예방관리 레시피 연구진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곳에서도 경험에서 나온 레시피를 소개한다. 예전에 고혈압이었는데 좋은 식재료를 찾아서 먹으니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온 경험이 있다. 
 
고혈압 환자에게 좋은 음식은 무엇인가.
 
뚱뚱하다면 우선 몸무게부터 줄여야한다. 일단 제 경우엔 국물 대신 건더기 중심으로 먹으며 짠 음식을 줄이고 살을 17kg 뺐다. 쌀밥은 현미밥으로 바꿨는데 압력솥을 안 쓴다. 압력솥을 쓰면 조리시간이 짧아 아무래도 소화가 잘 안되기 때문이다. 쌀을 물에 담갔다가 일반 밥솥이나 냄비 밥솥을 이용해 약간 진밥으로 만든 후 30번씩 씹어 먹었다. 고기 줄이고, 과일 많이 먹고, 주스 안 마시고. 그리고 늘 하루에 두시간 걸었다. 사실 요리사들은 아파도 수강생 떨어질까봐 그 사실을 감춘다. 저는 그러지 말고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고혈압에 대해 관심이 간다. 그래서 관련 내용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연세대에서 최적의 요리 연구가라며 유튜브에 동영상으로 올려놓기도 했다(웃음).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
 
'혼밥' 외에 '평생 단 한 번의 상차림'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중이다. 최근에 지인이 부모님의 칠순잔치용 가족상차림에 대해 의논해온 일이 있다. 뷔페 차려놓고 하는 옛날 시스템이 싫어서 한참 고민하다 그냥 '내가 차려줄게'라고 했다. 그 후로 몇 번 가족상차림을 했는데 제가 생각하는 상차림은 음식 종합예술이다. 상차림 받는 분 입장에선 이런 잔치가 십년후에 또 올 수도 있지만 마지막도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단촐하게 직계 식구가 모여 단아하게 즐길 수 있는 상차림을 추구한다. 각 분야 전문가들을 모아다가 떡이나 꽂꽂이를 맡기고, 공간이나 음식도 제가 직접 골라준다. 상차림 잔치 끝나면 원하는대로 다 담아주고.
 
또 한 가지 이야기할 것은 궁중음식연구원의 한복려 선생님이 재작년에 칠순잔치를 했는데 그 때 상차림을 보며 '앞으로 미래에 가도 그런 상차림은 없겠다' 싶었다. 전국에 유명 제자들이 각지에서 한 가지씩 음식을 해 가져왔다. 화려하고 웅장한데, 사치스럽지는 않은 상차림이었다. 아무리 돈 많은 재벌이 있다해도 이런 상차림이 있을까 싶었다. 삼일 밤낮을 고생해 음식을 가져온 사람도 있을 만큼 마음이 담긴 상차림이었다. 기본적인 격조와 단아함이 돋보였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올해 고혈압 환자를 위한 요리책과 푸드에세이집 등 책 2권을 발간할 예정이다. 푸드에세이집의 경우 음식을 만들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94세 할아버지가 수업을 들으러 오셨던 경우, 틱 장애를 앓던 남자아이가 늘 음식을 잔뜩 싸갔는데 부모를 사고로 잃은 걸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 등 생각만 해도 감정이 울컥한 이야기들이 많다. 
 
'한중수교 23주년 및 FTA체결 기념 공연'에서 공연단 자격으로 중국 주요도시를 순회하기도 하는 등 외국 활동도 많이 하는 편이다. 박근혜 정부 문화융성위원회 때 한식의 세계화가 한창 부각되다가 현재 시들해진 분위기인데 아쉽지는 않은지.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에서 일을 많이 했었다. 차은택, 최순실 등으로 말이 많았는데 그런 일 때문에 한식이 좀더 부각될 기회를 잃어 안타깝다. 나도 촛불집회 나갔던 사람이다(웃음). 임금이 좋아했던 음식을 업적과 연계해 소개했던 '직장배달 한식콘서트'의 경우 2016년 4월부터 9차례에 걸쳐 진행했는데 익숙해지려니까 끝난 듯하다. 아쉽다. 
 
'한중수교 23주년 및 FTA체결 기념 공연'의 경우 궁중음식 해외 홍보 업무를 하는 '세이 F&C' 대표로서 참여했는데 세이 F&C는 음식(Food)과 문화(Culture)를 말한다는 의미로 만든 상호다. 중국에서 반응이 좋았는데 사드 때문에 어그러진 상태다. 현재는 네팔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중소 식품회사인 한식원의 은희청 대표가 주최하고 후원해서 네팔에 가서 한식을 소개할 예정이다. 요리 시연도 하고 푸드 테이블도 만들고 공연도 할 예정이다. 엄홍길 산악대장도 함께 한다.  
 
<황지희 요리연구가가 추천하는 환절기 식재료와 건강레시피>

찬바람이 불면 먹으면 건강에 도움이 될 식재료를 소개합니다.
배, 도라지, 수세미, 은이 버섯, 목이 버섯, 우유, 계란, 포도, 배추, 생선,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닭, 갈치, 전어, 연어, 참치, 홍합, 꼬막, 굴, 검정쌀, 김, 다시마, 무, 연자, 찹쌀, 수수, 옥수수, 감자, 고구마, 대추, 인삼, 호두, 흑임자, 마, 생강, 계피 등은 찬바람이 불 때 먹으면 건강에 이로운 식재료입니다. 이 식재료들은 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배추찜]
 
재료 : 알배추 500g, 소고기 50g, 당근 50g, 건 표고버섯 4개, 양파 1/2개, 대파 1개, 깐 마늘 3쪽, 풋고추 2개, 건 구기자 5g(없으면 생략해도 됨) 소금, 후추, 식용유
소스 : 긴간장 3큰술, 올리고당 2큰술, 식초 6큰술, 물 3큰술, 대파 50g, 풋고추 1개, 홍고추 1/2개, 다진 마늘 1큰술, 다진 생강 1작은술
 
<조리법>
1. 배추는 낱장으로 떼어 끓는 소금물에 4분 정도 데친다.
2. 찬물에 헹궈 수분을 제거한다.
3. 소고기와 표고버섯은 채 썰어 불고기 양념한 후 볶안 놓는다.
4. 당근, 양파, 고추, 대파, 마늘은 채 썰어 소금, 후추, 식용유를 넣고 각각 볶는다.
5. 분량대로 소스를 만들어 준비한다.
6. 볶은 재료를 골고루 혼합한다.
7. 접시에 배추를 깔고, 볶은 고기를 얹고, 볶은 채소를 얹는다. 다시 반복해서 겹겹이 올려준다.
<tip> 배추는 성질이 평하고 맛은 달며 장과 위에 좋다. 기침이나 현대성인병에 좋으며 표고는 가래를 없애준다.
 
[홍합 굴죽]
 
재료 : 홍합살 20마리, 굴 20마리, 불린 쌀 300g, 마 100g, 다진 양파 3큰술, 다진 마늘 1큰술,생강즙 1작은술, 다시마 육수 4컵, 소금, 후추, 참기름 2큰술
 
<조리법>
1. 꼬막은 삶아 살만 발라놓는다.
2. 굴을 깨끗하게 씻어 깍지를 제거하고 체에 받쳐 끓는 물을 부어 샤워한다.
3. 마와 양파는 껍질을 벗겨 사방 1*1cm로 깍둑 썬다.
4. 쿠커에 참기름을 두르고, 양파와 마늘을 볶다가 해산물을 넣고 청주를 뿌려준다.
5. 4에 쌀을 넣고 투명해지면 다시마육수를 넣는다.
6. 죽이 완성되면 소금, 후추로 간한다.
<tip>건조한 계절에 홍합은 폐와 신장에 도움을 주며, 마늘은 몸을 따뜻하게 한다. 코와 목이 막히고 기침이 나거나 피로할 때 먹으면 좋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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