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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개미 손명완 “대한민국에서 주식투자 못하겠다”
재테크전문기자가 본 '동원금속 대량매도' 뒷이야기
기업은 꼼수 · 금융당국은 기업 편들기
2018-01-26 08:00:00 2018-01-26 08:00:00
[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1000억원대 자산을 보유한 슈퍼개미가 며칠만에 보유주식 상당분을 매도했다. 장기간 주식을 추가 매수하며 경영참여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낸 인물, 더욱이 이번 매도로 큰 손실까지 입은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집중됐다.
 
손명완 세광무역 대표는 대구시에 거주하는 개인 투자자로, 한때 5% 이상 지분공시한 종목이 15~17곳에 달했을 정도여서 투자자들에게는 유명인사다.
손 대표는 2014년 1월 자동차 부품업체인 동원금속의 주식 6.55%를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그 뒤로도 꾸준히 주식을 매수했고, 지난해 11월에는 회사 창업주의 아들 이은우 동원금속 대표의 지분율(32.62%)을 넘어서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올해 1월12일에도 추가 지분매입 공시를 냈던 그가 불과 4일이 지난 1월16일부터 22일까지 단 5영업일 동안 30%가 넘는 지분, 1189만주를 시장에 쏟아냈다. 동원금속 주가는 매물폭탄을 견디지 못하고 3160원에서 1900원 부근까지 급락했다.
 
대량 매도는 동원금속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손 대표는 5% 이상 보유하던 대유플러스와 남선알미늄도 보유주식을 거의 다 팔았고 한창제지, 성호전자는 2~3%대로 지분을 줄였다. 그가 1월에 공시한 5종목만 추려도 317억원어치를 매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4년 이상 꾸준히 매수하던 기업의 주식을 한꺼번에 던졌을까. 직접적인 원인은 동원금속의 유상증자 발표에 있다. 동원금속은 지난 15일 전체 주식의 30%에 달하는 1080만주를 유상증자한다고 공시했다. 회사는 운영자금 마련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경영권 방어를 위한 유증이라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손 대표는 “대규모 유증을 결정하는데 최대주주에게 전화 한통 없었다”며 “회사가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고, 가처분소송도 고민했지만 솔직히 막을 방법이 없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동원금속을 포함해 주요 지분을 대부분 처분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손 대표는 장시간 전화통화를 하는 동안 동원금속 경영진보다 금융당국을 비판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손 대표는 2016년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에서 조사를 받은 일이 있다고 한다. 늑장 지분공시와 대주주 단기매매를 사유로 그에 합당한 처분을 받았다. 자본시장법(제172조 1항)은 회사 임직원이나 주요주주가 주식을 6개월 이내 매매해 이익을 얻을 경우 이를 회사에 반환하도록 돼 있다.
 
규정을 어겼으니 처벌받는 것이 당연하다. 손 대표가 제기한 문제는 처벌이 아니라 금융당국의 인식과 조사 과정이었다.
“전화는 여러 차례 받았고, 대면조사는 사흘에 걸쳐 이뤄졌다. 그런데 조사관이 ‘왜 주식을 계속 사서 경영참여를 하려고 하느냐’, ‘왜 그렇게 중소기업을 괴롭히느냐’는 말까지 하더라. 주가조작하려고 몇 년간 주식 모은 것이 아니다. 경영진이 회사를 저 모양으로 만들어 놓으니까 경영에 참여해 개선시켜 보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금융당국이 개인 주주를 기업 괴롭힌다며 견제할 수 있느냐.”
 
손 대표는 “회계장부 열람조차 못하게 막는 사람들인데, 정부까지 경영자를 편들면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주식투자 하겠나”고 토로했다. 상법(제466조 1항)에 따르면 발행주식의 3% 이상 소유한 주주는 회계장부와 서류를 열람할 수 있다.
 
손 대표를 조사한 곳은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인 것으로 확인됐다. 오승준 금융위 사무관은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거액의 자금흐름을 포착, 손명완씨를 불러 조사한 것은 맞다”면서도 “조사 과정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고, 2016년 당시 누가 조사했는지도 규정상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들도 해당 발언이 민감하다는 사실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손 대표가 지분을 매도한 상황이라 일각에서는 동원금속의 유증 취소를 예상했으나 25일 열린 이사회에서는 논의끝에 처음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이 대표가 과연 유증에 참여할지, 한다면 신주를 얼마나 인수할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정부가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것은 기관이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권익을 보호하라는 의미다. 이런 시대에 주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금융당국마저 이를 ‘기업 괴롭히기’ 쯤으로 치부한다면, ‘기업과 동행하라’는 격언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주식투자는 가상화폐 매매와 다를 것 없이 가격 등락 차익이나 따먹는 투기에 불과한 것일까.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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