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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보고만 있어도 쉬는 느낌의 얘기에 끌렸다"
70년 된 폐가 리모델링해 4계절 촬영…"배춧국은 재료만 있으면 요리 가능"
2018-02-22 15:00:45 2018-02-22 15:00:45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배우 김태리에 대한 이미지는 사실 따지고 보면 하나다. 데뷔작 ‘아가씨’의 강력한 모습이 너무도 짙다. 이건 김태리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데뷔작의 모습이 그 배우의 이미지로 한 동안 굳어지는 게 대중들에겐 익숙하다. 그래서 2016년 개봉한 ‘아가씨’ 인터뷰 당시에도 물었다. ‘혹시 노출 이미지가 걱정되지 않느냐고’. 예민하고 민감한 나이 그리고 딱 그래도 될 만한 나이의 이 여배우는 의외로 대수롭지 않아 했다. 그걸 고민했다면 배우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때부터 ‘받아들임’과 ‘비워냄’의 미학은 이미 이 신인 여배우의 기본 가짐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리틀 포레스트’ 속 혜원의 모습이 어쩌면 김태리의 연기가 아닌 그저 김태리 자신으로 다가온 듯 했다.
 
개봉 전 언론 시사회 반응은 뜨거웠다. 모두가 의외란 반응이었다. 원작인 일본 만화 자체의 잔잔한 코드가 변주됐다고 했지만 비상업적인 스토리다. ‘무자극’에 가까운 전체의 톤도 기대치를 낮추게 했다. 티켓 파워가 막강한 배우들이 출연하지도 않는다. 자기 색깔이 강하지만 흥행 연출가와는 거리가 멀었던 임순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흥행과는 사실상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리틀 포레스트’에 대한 느낌은 강했다.
 
김태리. 사진/제이와이드
 
“감독님께서도 언론시사회 날 말씀하셨고. 자극이 넘치는 영화들이 너무 많잖아요. 이런 영화 한 편쯤은 있어도 될 듯한 시기 아닐까요. 저 역시 그렇게 다가왔어요. 전 의외로 재미있었어요. 쉬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재미를 찾으려면 정말 보고만 있어도 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얘기에 끌렸죠. 재미없다고 하실 수도 있을 거에요. 자극 자체가 없으니. 하지만 욕먹을 얘기는 절대 아니겠단 확신이 있었죠.”
 
김태리의 말대로 ‘리틀 포레스트’는 한적한 시골집에 잠시 놀러간 듯한 ‘휴가’처럼 다가왔다. 각박하고 치열하고 빠르게 살아온 지금의 현대인들에겐 어쩌면 가장 필요한 것이 휴식일지 모른다. 이 영화에 대한 공감도 호응도 어쩌면 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김태리도 공감했다. 1년의 촬영 시간을 소비했다. 소비란 단어보단 함께했다고.
 
“‘아가씨’ 촬영 끝나고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대표님이 ‘볼래?’ 해서 봤죠. 재미있었어요. ‘원작 만화다’라면서 (원작 책을) 사서 주셨어요. 재미있더라구요(웃음). ‘감독님 만나볼래?’ 그래서 만나 뵈었죠. 감독님이 ‘같이 할래?’ 그래서 ‘네’ 이렇게. 그렇게 일사천리로 이뤄졌어요. 하하하. 영화 속 혜원이 저랑 너무 닮았더라구요. 연기? 그냥 제 모습을 보여주면 될 듯 했어요. 감독님도 그걸 원하셨고. 1년의 촬영 시간에 주변 만류도 있었어요. 근데 전 전혀 문제 안됐죠.”
 
김태리. 사진/제이와이드
 
영화 속 혜원이 4계절 1년을 머문 시골집은 경상북도 한 시골의 폐가를 섭외해 리모델링을 했다. 그림 같은 느낌의 시골집은 금새 혜원의 집으로 뒤바뀌었단다. 겨울부터 시작된 촬영은 4번의 크랭크인과 4번의 크랭크업을 거치면서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모두 보낸 동지가 된 셈이었다. 기억에 남는 공간이고 시간이었다.
 
“그 집이 한 70년은 된 집이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사람이 못살 정도의 폐가였는데 그렇게 바꿔 놓으셨죠. 미술팀 정말 대단하죠(웃음). 기억에 많이 남죠. 4계절을 함께 보냈으니. 기억에 남는 계절이라면 아무래도 봄이에요. 에너지가 넘치잖아요. 4계절 중에 봄을 이길 계절은 없는 거 같아요(웃음). 첫 촬영이 겨울이었는데. 너무 춥고. 그리고 좀 외로웠어요. 그 마을에 사시는 분들도 다들 추워서 집에만 계시고. 소통이 없잖아요. 가을도 괜찮은 거 같고. 여름은 어휴 너무 더워서. 진짜 영화 속 옥수수밭 촬영 때 죽는 줄 알았어요. 더위도 처음 먹어봤다니까요. 하하하.”
 
농촌 생활의 재미와 활기 그리고 그 곳에서의 여름과 겨울의 뜨겁고 추웠던 경험 모두 김태리에겐 즐거움 같았다. 나이답지 않게 시골 생활에 대한 동경도 크단다. 물론 이번 촬영으로 그 마음을 접었다지만. 그럼에도 씩씩하고 털털한 시골 처녀의 모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영화 속 혜원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였다. 농사를 짓고 밭일을 하면서도 벌레를 맨손으로 집어내는 담력(?)은 또래 여자들에겐 사실 보기 힘든 용기다.
 
김태리. 사진/제이와이드
 
“푸하하하(손박수를 치며). 저도 무서워요. 근데 뭐랄까. 벌레들이 날 공격만 안하면 되요. 그럼 뭐 괜찮더라구요. 저희 영화에 나오는 모든 벌레와 동물들은 전부 이름이 있어요(웃음). 밭일을 하다가 나온 커다란 허연 벌레. 걔가 ‘벌구’라고 해요. 요 녀석이 근데 깨물어요. 나중에 감독님에게 물어보니 깨무는 게 아니라 손을 흙으로 알고 파고들려는 거래요. 영화 자세히 보면 제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보여요. 하하하. 촬영 후에는 원래 사육하던 농장으로 보내줬어요. 그 벌레 잡아온 게 아니라 엄연히 농장에서 키우는 친구에요. 흐~~~(몸서리)”
 
‘벌구’ 뿐만이 아니다. 촬영 기간 동안 주변에 몰려 든 모기와 해충들도 모두 이름을 지어줬다고. 특히나 귀농 이후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주변에 전파하는 임 감독의 엄명으로 스태프와 배우들 모두 모기 한 마리 죽이지 못했단다. 여름 촬영 당시에는 하루 종일 울어대는 매미 때문에 곤욕이었다고. 오죽하면 매미가 울기를 멈춘 뒤 틈틈이 촬영을 이어갔단다. 이런 곤충들에 대한 기억 외에도 영화에는 음식이 한 가득 나온다.
 
“즐기는 편은 아닌데. 못하지도 않아요(웃음). 지금 바로 재료만 주어진다면 영화 속의 배춧국은 바로 가능해요 하하하. 영화 때문에 음식을 배우기도 했어요. 그리고 현장에는 항상 푸드스타일리스팀이 함께 계셔서 도와주셨고. 기억에 남는 음식은 쑥갓튀김? 정말 맛있어요. 진짜 아직도 기억에 그 맛이 확 남아요. 아카시아꽃 튀김을 생소해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도 신기했어요. 맛은 달달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쌉쌀한 맛이 나요.”
 
원작과 마찬가지로 ‘리틀 포레스트’도 음식이 소통의 매개체다. 김태리가 연기한 혜원은 음식을 통해 자신과 대화하고 친구인 재하(류준열) 은숙(전기주)과 수다를 떤다. 바람처럼 자신의 곁에서 사라진 엄마(문소리)의 기억과도 대화를 한다. 기억을 통해 추억을 살리고 추억 속의 모습을 통해 음식을 만들며 엄마와 대화를 나눈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느낄 묘한 이질감 혹은 생경함의 지점이 바로 엄마의 사라짐이 아닐까.
 
김태리. 사진/제이와이드
 
“원작이 만들어 진 일본에서도 흔하지는 않지만 없지는 않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우리 정서로는 정말 이해가 안되잖아요. 어떻게 엄마가 고3 수능 본 딸을 놔두고 사라져요(웃음). 근데 글쎄요. 전 묘하게 이해가 되요. 우선 저희 엄마가 절 ‘자유방목형’으로 키우셨어요. ‘나의 삶은 나의 삶, 너의 삶은 너의 삶’ 뭐 이런. 그래서 지금도 스스로 꽤 강하다고 느끼고요. 영화 속 문소리 선배님의 엄마? 그런 비슷한 느낌이 있었어요. 저한텐. 아~ 감독님이 ‘엄마’역 캐스팅에도 고심을 하셨는데. 어리둥절한 상황이고 이상하지만 밉지 않은 엄마로 만들 배우가 누굴까 고심하다가 문소리 선배님을 택하셨대요. 너무 잘 어울리시죠(웃음).”
 
꽤 오랜 시간 김태리와 함께 ‘리틀 포레스트’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의외로 시계가 흐른 시간은 짧았다. 길게 느껴졌던 것은 그만큼 즐겁고 편안했던 기억을 공유했기 때문일까. 김태리는 다시 한 번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시간과 공간을 마주하길 기대한단다. 언젠가는 꼭 촬영지에도 다시 한 번 들려보고 싶다고. 그에게 휴식 그리고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김태리도 잠시 생각을 했다.
 
“나만의 작은 숲? 지금 생각해보니 특별하게 갖고 있는 그런 공간이 딱 떠오르진 않는데. 아마도 산이 아닐까요. 제가 산에 가는 걸 되게 좋아해요. 아버지가 산을 너무 좋아하셔서. 어릴 적부터 아버지랑 같이 틈나는 대로 산에 다녔어요. 아무런 생각 없이 오른 산 그리고 정상에서 땀에 소복히 젓은 옷. 시원하게 부는 바람. 몸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맑아져요. 아!!! 집에서 키우는 우리 고양이 두 마리. 고 녀석들도 따지고 보면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네요(웃음).”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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