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무비게이션) ‘나를 기억해’, 성범죄의 ‘민낯’을 고발한다
우리 사회가 주는 2차 폭력의 시선 ‘지적’
기존 영화 속 성범죄 피해자 전형성 ‘탈피’
2018-04-16 12:32:04 2018-04-16 12:32:04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불특정 다수가 내 일상을 공유한다. 한 발 더 나아가 누군지도 모르는 특정인이 나의 일상을 조종한다. 그들은 나의 은밀한 모습을 담은 사진을 소유하고 있다. 그것을 ‘무기’로 해당 특정인은 나의 일상을 조종한다. 이 모든 것이 내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행위를 범죄라고 한다. 특히나 이런 경우는 성범죄로 흐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 ‘나를 기억해’는 신문 사회면 혹은 뉴스에서 한 번은 들어 봤음직한 끔찍한 사건을 다룬다. 영화적 스타일이 가미돼 리얼리티 측면에서 다소 떨어지는 지점이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관객들의 소름을 돋게 하는 것은 극중 범죄 행위의 강압적 폭력성과 피해자를 향한 사회의 왜곡된 시선이다. 그들은 피해자이면서 또 다시 보호 받지 못하는 피해자로서의 고통만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이 영화는 정확하게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가해자의 폭력도 문제이지만 사회가 주는 2차 폭력의 시선을 때린다. 영화 포스터 속 피해자 서린(이유영)의 시선이 그래서 깊게 다가온다.
 
 
 
영화는 두 명의 피해자 등장한다. 여고생 민아(김다미)와 고교 교사 서린(이유영). 민아는 채팅으로 만난 동급생 진호(이제연)와 연애를 한다. 하지만 단 하루 밤, 민아는 지옥을 경험한다. 진호는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민아를 유린한다. 그 모습을 촬영한 테이프를 무기로 민아를 재차 유린하고 짓밟는다.
 
결혼을 앞둔 서린은 담임을 맡은 반 학생들의 축하를 받는다. 하지만 그날 밤 그는 생각지도 못한 악몽을 꾸게 된다. 자신의 책상에 있던 정체 불명의 음료수를 대수롭지 않게 마신 뒤 그는 누군가의 조종을 당하게 된다. ‘마스터’라고 불리는 인물. 그는 서린을 유린한다. 서린은 불길한 생각을 거두지 못한다. ‘마스터’로 짐작되는 인물들을 하나 둘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전직 형사이자 과거 인연(?)을 맺은 국철(김희원)에게 도움을 청한다. 두 사람은 ‘마스터’란 의문의 인물을 추적해 나가면서 추악한 진실에 한 발 더 접근하게 된다.
 
영화 '나를 기억해' 스틸. 사진/(주)오아시스이엔티
 
시작과 함께 두 여성의 끔찍한 사건이 등장한다. 굉장히 자극적이면서 공포스럽다.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 세상 속에서 불특정 다수가 한 개인을 유린하는 과정이 여과 없이 등장한다. 사실 이 지점은 피해자가 ‘여성’이란 시각 때문에 자극적이란 설명이 아니다.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단 가능성을 보여 준 장면이기에 더욱 자극적이고 소름이 끼치며 공포감이 밀려온다. 때문에 공감대가 형성된다. 몰입감이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오프닝 시퀀스의 피해 사건 공개로 이 영화의 톤 앤 매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제성을 요구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현실 회피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사실 어떤 경우에도 없다. 그저 피해는 피해를 낳고 가해는 또 다른 가해로 발전할 뿐이다. ‘나를 기억해’가 시간의 굴레 속에서 반복되는 피해와 가해의 악순환을 그린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지점은 기존 상업영화가 그려왔던 피해자의 전형성 탈피다. 소극적이고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며 자기 학대에 빠진 피해자는 이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기억해’는 제목에서처럼 피해자 스스로가 자신의 기억하면서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차단했던 선택을 깨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시선으로 다룬다.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성범죄의 민낯을 피해자에게 집중시키는 잘못을 지적한다. 물론 결과적으로 영화 마지막에 등장한 가해의 결말이 다소 작위적이라고 해도 ‘나를 기억해’가 말하는 피해와 가해의 굴레는 우리 사회가 분명 보듬과 또 때려야 할 두 얼굴이다.
 
영화 '나를 기억해' 스틸. 사진/(주)오아시스이엔티
 
워낙 무거운 주제이기에 영화 중반 이후까지 몰입감과는 대비되게 관람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는 요소가 분명 존재한다. ‘반전’이란 개념으로 설명하기는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어떤 지점을 감추기 위해 선택한 간접적인 방식이 극 전체를 스스럼 없이 받아 들이게 하는 데 방해 요소로 작용되기도 한다. 또한 영민한 관객이라면 영화 중반 아주 잠깐 등장하는 ‘시퀀스’를 통해 이 영화의 결말도 충분히 유추가 가능해 진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지점이고, 현실의 냉혹한 시선을 반대 급부로 꼬집기 위해 끌어 들인 화법은 기존 성폭력 피해 영화들과는 분명한 차별점을 드러낸다. 피해 여성 두 명의 사연을 교차 편집으로 투사시킨 영화 전반의 선택과 중반 이후 ‘서린’과 ‘국철’의 추격 시퀀스가 선보인 박진감도 영화적 재미를 더한다. 물론 후반부의 작위적 마무리가 다소 아쉬운 선택이라면 ‘나를 기억해’가 수면 아래에서 끌어 올린 10가지 중 단 한 가지 ‘흠결’일 뿐이란 점도 분명해 보인다.
 
영화 '나를 기억해' 스틸. 사진/(주)오아시스이엔티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성범죄를 통해 붕괴된 일상의 고통을 담아낸 지점이다. 피해자는 보호를 받아야 한다. 가해자는 명확하게 죗값을 치러야 한다. ‘나를 기억해’는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권선징악에 대한 일침이다. 개봉은 오는 19일.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