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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희원 “‘나를 기억해’ 주인공 아닌 줄 알았죠”
‘악역 전문 조연’→데뷔 첫 포스터 등장 ‘주인공’
영화 속 애드리브 전담…”중요 대사는 두 달 고민”
2018-04-20 18:12:16 2018-04-20 18:12:16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야이~ XXX야!!! 이거 방탄유리야!!!” 이 대사만 들어도 떠오르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배우 원빈이 새하얀 외제 승용차 위에 올라가 권총을 들이댄다. 차량 앞 유리 너머 운전석 한 남자는 입에 침을 튀기며 악다구니를 친다. 물론 그는 결국 원빈의 총 한 방에 죽음을 맞이한다. 2010년 여름 개봉해 신드롬을 일으킨 영화 ‘아저씨’ 마지막 클라이맥스 시퀀스다. 이 영화가 흥행을 하면서 당시 충무로에선 장기밀매범 ‘만석’이를 연기한 배우가 누구냐며 한 동안 화제를 모았다. 대중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전직 장기밀매범이 아닐까’란 우스갯소리가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대중들에겐 너무도 낯선 이름. 배우 김희원이었다. 이후 그는 ‘충무로 악역 전담’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런 그가 8년 만에 이미지 변신을 했다. 영화 ‘나를 기억해’ 속 전직 형사 ‘오국철’이다. 대체 어떤 인물 일까.
 
김희원. 사진/오아시스이엔티
 
지난 17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김희원을 만났다. 우선 그를 처음 보면 몇 가지에 놀라게 된다. 첫 번째로 키가 상당히 컸다. 프로필상으로 180cm다. 두 번째는 전혀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점이다. 관리를 위해서 금주를 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단 한 방울의 알코올 섭취도 불가능할 정도란다. 세 번째는 상당한 달변이었다. 한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에서 선보인 ‘쑥맥’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하하하. 오해를 좀 많이 하시기도 해요. 그런데 이젠 방송에서도 좀 많이 언급했었고. 아실 만한 분들은 다 아실 텐데. 아닌가? 하하하. 내가 아직 그 정도의 급은 아니죠?(웃음) 역할 때문이었는지 처음 보시는 분들은 대부분 ‘의외로 키가 크시네요’ 하세요. 제가 같이 했던 분들이 워낙 비주얼들이 좋으신 분들이었잖아요. 상대적으로 제가 쪼그라들어 보인거죠. 하하하. 술은 뭐 체질인가봐요. 커피숍 3차까지도 가능합니다. 하하하. ‘쑥맥’이라? 뭐 이 나이에 낯가리고 말고 있겠어요 이제(웃음)”
 
2007년 영화 ‘1번가의 기적’ 단역 데뷔 이후 숱한 작품에 출연해 왔다. ‘아저씨’의 영향이 컸을까. ‘아저씨’ 이후에는 악랄한 이미지의 배역이 거의 전담식으로 들어왔단다. 간혹 우스꽝스런 이미지의 캐릭터도 연기를 했지만 기본적으로 ‘김희원=악역’이었다고. 연극 무대 출신으로 배고픈 시절을 혹독하게 겪었기에 배역 가릴 처지가 아니란 점은 아주 잘 알고 있단다. 이번 영화도 느낌일 줄 알았다며 웃는다.
 
김희원. 사진/오아시스이엔티
 
“우선 주연인지도 스릴러 인지도 전혀 몰랐어요. 시나리오는 봤죠. 뭐 초반이 지나고 제가 나오길래, ‘아 좀 질 나쁜 전직 형사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형사물인가 했었죠. 캐릭터는 자신있었어요. 생활 밀착형 PC방 폐인 같은 느낌의 ‘국철’은 딱 저였어요. 이게 좀 바꿔 생각해보면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구직난’에 시달리는 세태를 대변하는 듯한 모습 같기도 했고. 뭐 그런 거창한 대의 명분에 도전했는데. 하하하.”
 
시나리오를 제대로 읽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는 항상 자신을 필요로 하는 감독들 혹은 작품은 무조건 악역이라고 생각을 했다고. 그런데 막상 ‘나를 기억해’ 속 ‘오국철’은 주인공 ‘한서린’(이유영)의 조력자이자 극을 이끌어 가는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물론 평소의 모습과 영화 속 ‘오국철’ 그리고 지금까지 작품 속 ‘김희원’에 대한 갭은 꽤 차이가 있어 보였다.
 
“아 당연하죠. 맞아요. 하하하. 사실 ‘스포일러’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착한 캐릭터는 아니에요. 하하하. 자세한 건 영화를 봐주세요. 그저 형사가 시원스럽게 범인 때려 잡는 이야기라고 봤는데 아니더라구요. 시나리오와 영화는 느낌 자체가 다르니깐. 우선 감독님이 제가 갖고 있는 약간의 코미디한 이미지도 필요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국철’이 저한테 왔던 게 아닌가 생각되요. 영화를 보면 ‘오국철’이 처음과 마지막에 완전 다른 사람이 되요. 그게 참 마음이 들더라구요. 하하하.”
 
김희원. 사진/오아시스이엔티
 
출연을 결정하고 상대역 ‘한서린’이 누구인지 제작진에게 물어봤다고. 당시 이유영이 먼저 캐스팅 제안을 받았지만 ‘성범죄 피해여성’이란 점에 고민을 하고 있었단다. 이런 고민을 전해 들은 김희원이 이유영의 마음 돌리기에 나섰다. 김희원은 ‘나를 기억해’의 ‘한서린’역으로 이유영이 적역이라고 판단했다. 감독님과 같은 생각이었다고. 결국 영화 ‘계춘할망’에서 함께 했던 배우 김고은 카드를 빼들었다. 김고은은 이유영과 둘 도 없는 절친이었다. 같은 한국종합예술학교 동문이다.
 
“예전부터 이유영이란 배우가 ‘정말 연기를 잘한다. 깊이감이 남다르다’는 점은 눈 여겨 봐왔었죠. 그런데 제가 출연을 결정한 뒤 ‘여배우는 누구야’라고 제작진에게 물어보니 ‘이유영이 고민 중’이라고 하더라구요. ‘아니 이 좋은 시나리오를 왜 고민해?’라고 생각이 들었죠. 제가 뭐 대단한 선배도 아니고. 직접 전화를 하지는 않았어요. 근데 저랑 친한 김고은이 이유영과 절친이더라구요. 그래서 고은이한테 ‘야, 걘 왜 그걸 고민한데냐? 좋은 시나리오던데’라고 툭 던졌어요. 하하하. 뭐 고은이가 얘기를 전해줬는지는 모르죠. 뭐(웃음)”
 
그렇게 ‘나를 기억해’의 투톱이 완성이 됐다. 이유영이 극 전체의 무게감을 담당했다면 김희원은 유쾌함과 쉼표 같은 역할이었다. 영화 전체에서도 그의 순발력과 유려한 대처는 눈길을 끌었다. 대부분의 장면이 애드리브를 의심케 할 정도로 즉흥적인 느낌이 강했다. 영화 전체의 톤 앤 매너를 조율하는 차원에서도 이유영과 김희원의 캐릭터 색깔은 분명히 다르게 가야 하는 지점이 보였다.
 
김희원. 사진/오아시스이엔티
 
“맞아요. 말씀하신 대로 제 연기의 3분의 1은 전부 ‘애드리브’였죠. 이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뭔가 좀 쉬어가는 느낌을 곳곳에 줘야 할 듯 싶었어요. 워낙 무겁게 흘러가는 얘기라서 저까지 그러면 안될 듯 싶었어요. 감독님도 흔쾌히 동의해 주셨구요. 애드리브는 그때 그때 달라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나오는 것도 있고. 영화 속에서 PC방에서 초등학생들과 주고 받는 대사는 전부 애드리브에요. 하하하.”
 
영화 속 거의 대부분을 즉흥적인 애드리브로 처리한 것은 아니다. ‘명품 악역’ ‘명품 조연’이란 타이틀이 괜히 그의 몫이 아니었다. 극중 ‘국철’이 ‘서린’에게 사과를 하는 장면이 있다. ‘미안하다’ 이 네 글자를 말하기 위해 김희원은 무려 두 달을 고민했었단다. 진심이 담겨 있어야 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서린’이란 캐릭터도 ‘국철’이란 인물도, ‘나를 기억해’ 전체의 스토리도 자칫 흔들릴 것이라고 봤단다.
 
“처음 캐스팅 되자 마자 고민했던 대사였어요. 정말 미안한 마음을 전해야 했어요. 어떻게 말할까. 무릎 꿇고 말할까? 눈물 흘리며 말할까? 별의 별 상황을 상상하며 머릿속으로 그려봤죠. 답이 언뜻 나오지 않더라구요. 그러다가 영화 속 그 장면에 이르렀죠. ‘이 사람이라면 이렇게 미안함을 전할 것 같다’란 생각 밖에 없었어요. 영화 속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면서 영화 전체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환점이기도 해요.”
 
김희원. 사진/오아시스이엔티
 
인터뷰 중간 영화 홍보 팜플렛을 보면서 웃는 김희원이다. 데뷔 이후 출연 영화 가운데 포스터에 자신의 얼굴이 나온 첫 번째 작품이 ‘나를 기억해’다. 묘한 미소와 기분 좋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의 얼굴이 나온 포스터가 지하철이며 버스에 전부 도배가 됐다. 최근에는 지하철 역에 생일광고까지 떴다. 아이돌이나 경험한다는 생일 축하 광고다. 쑥스러운 웃음으로 마무리를 했다.
 
“출세했죠 뭐. 하하하. 우리 영화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랑 경쟁해요. 이거 얼마나 대단해요(웃음) 극장 가시면 ‘어벤져스’ 보신 뒤 ‘어? 나를 기억해는 뭐야’라고 한 번 쓱 봐주세요. 하하하. ‘불한당’ 때문에 제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 호사를 누려봤는데. 이번 영화로 더 잘됐으면 좋겠어요. 꼭 많은 분들이 보시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런 끔찍한 일이 두 번 다시 발붙이지 못하도록 말이에요.”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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