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 기자] 에쓰오일이 1분기 시장 예상치를 크게 하회하는 저조한 실적을 내자 정유업계의 긴장감도 높아졌다. 사상 최대 실적을 견인하던 정제마진이 여전히 양호한 가운데 부진한 성적표를 받자, 당혹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정유업계의 수익성이 국제유가의 급격한 변동성에 취약하다는 한계가 이번에 또 다시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1분기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4.7달러로, 지난해 4분기보다 6% 하락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가격과 유통비 등을 뺀 금액이다. 원유를 정제해 남기는 이익으로, 정유사의 수익성과 석유제품의 수급을 파악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지난해 정유 4사가 저유가 기조 속에서도 8조원대의 호실적을 낸 비결이 바로 정제마진이다.
에쓰오일의 1분기 실적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정제마진 감소폭에 비해 영업이익 하락폭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에쓰오일의 정유부문 영업이익은 904억원으로, 전분기와 비교해 66%나 급감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가 아시아지역 수출 원유에 붙이는 프리미엄(OSP·Official Selling Price)이 높아진 점과 일부 설비의 정기보수로 판매량이 감소한 점 등이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급격한 유가 변동성이다. 지난해 12월부터 국제유가가 출렁이면서 재고평가이익이 대폭 줄어 영업이익 감소로 이어졌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전언이다. 재고평가이익은 원유 구입 시점과 제품 판매 시점 차이를 통해 올리는 수익을 뜻한다. 통상 정유사는 원유 구매부터 투입까지 한 달 이상 걸리는데,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국제유가는 롤러코스터 행보를 보였다. 국내 도입 원유의 80%를 차지하는 중동산 두바이유는 지난해 12월 배럴당 평균 65달러에서 올 1월 평균 69달러까지 급등한 뒤 2~3월 60달러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에쓰오일 정유부문의 1분기 말 재고관련 이익이 50억원으로 전분기 950억원보다 900억원이나 급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다른 정유사들도 유가 변동성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실적 발표를 앞둔 정유 3사는 정제마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덜했던 재고평가이익이 수익성의 핵심으로 부상하자, 나름 초조함을 드러내고 있다. 자칫 시장 전망치를 대폭 밑도는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일부에서 제기된다.
반론도 있다. 각 사별로 재고자산 평가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에쓰오일 수준의 영업이익 감소폭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에쓰오일은 먼저 구입한 제품을 우선 판매한다고 가정하는 선입선출법을 사용한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는 기존 재고 단가와 분기 내에 새로 구입한 단가를 합쳐 총 물량으로 나눠 평균을 구하는 총평균법을 적용한다. 총평균법은 재고를 평균해서 구하기 때문에 유가 변동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지만, 선입선출법은 유가가 오를 때 유리하고 떨어지면 손실을 본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 4사 모두 작년 4분기 급격하게 오른 유가 상승분을 1분기에 반영하며 수익성이 감소한 것은 맞다"며 "다만 에쓰오일과 재고자산 평가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업이익 감소폭이 작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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