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만인보로 보는 일상사-7화)기찻길 이야기
“서울역에서 거기까지만 가도 / 경의선 살아나겠다”
입력 : 2018-05-21 08:00:00 수정 : 2018-05-21 08:00:00
4·27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인 순간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경이로운 감동으로 남았다. ‘판문점 선언’의 내용을 실현하기 위한 후속조치들이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그러나 북미회담을 앞두고 요즘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남북이 깔아놓은 길에 미국이 잘 동참했으면 좋으련만 북미회담의 의제 확대를 꾀하며 패전국 대하듯 북에 강경 일변도의 무리한 요구를 주장하는 미행정부의 모습은 강대국에 치여 온 우리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이산가족의 한을 풀고 남북 간 철도를 연결해 끊어진 한반도의 허리를 잇는 우리만의 절실한 숙원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지난 1월12일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도라산역에서 관광객들이 평양쪽을 가르키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경의선을 기억하다
북미 간 입장 차이로 인해 시시각각 변하는 정세와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지 않는 세력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남북의 진전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없다. 그러한 우리의 설렘을 북돋워주는 한 계획이 ‘판문점 선언’에서 언급된 경의선, 동해선 철도의 남북 간 연결일 것이다. 대륙으로 향하는 철로가 열려 사람도 물류도 기차를 타고 유럽을 향해 달려가는 꿈이 실현된다면 누군들 설레지 않을까.
 
경의선은 1905년 서울~신의주 간 운행으로 러·일 전쟁(1904~1905) 중이던 일본의 군수물자수송에 이용되면서 그 역사를 시작했다(전 구간 개통은 1906년). 1906년에 이미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한 일본은 1909년 청과 간도협약을 맺어, 조선인들이 개척한 간도 땅에 대한 영유권을 중국에 내어준 대신 길회철도(조선 회령~만주 길림성) 부설권을 얻어낸다. 1911년 압록강 철교가 완공됨으로써, 경부선에서 경의선으로 이어진 철도는 이제 조선 땅을 넘어 만주로 확장되고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연결되었다. 즉, 도쿄에서 한반도와 중국·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시모노세키에서 부산 구간은 한일연락선을 이용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한 손기정, 남승룡 선수의 노정이 바로 이러했다. 손기정 선수의 열차-선박 승차권에는 도쿄~베를린이라 적혀 있고 부산~하얼빈~바르샤바 경유라고 표시되어 있다. 일본 대표로 출전해야 했던 식민지 청년들은 그들이 훈련받던 도쿄에서 출발해 부산을 거쳐 서울로, 그리고 다시 서울에서 신의주·만주·시베리아·모스크바·바르샤바를 거치는 긴 여정 끝에 베를린에 도착했다.
 
식민지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혹은 독립운동을 위해 혹은 먹고 살 길을 찾아 만주로 연해주로 떠날 때 먼저 타야 했던 경의선은, 해방 후 한반도가 둘로 쪼개졌을 때조차 그 사이를 여전히 오고 갔지만,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결국 남북을 잇는 문산~개성 구역의 운행이 중단됨으로써 불완전체가 되고 말았다. 2007년 말부터 약 1년간, 남의 문산역과 북의 판문역 사이를 잇는 개성공단 전용 화물열차가 운행된 적도 있지만 불안정한 부활일 뿐이었다.
  
2007년 북측 봉동 판문역에서 열린 문산-봉동간 남북화물열차 운행 기념행사에서 화물을 열차로 옮기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개성 가는 길
개성 못미처
개풍 있다
서울역에서 거기까지만 가도
경의선 살아나겠다
 
박완서
< … >
 
저 50년대
전쟁과 전쟁 이후의 폐허에서
그 폐허의 순정이던
화가 박수근을 기억했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박완서’, 14권) [개풍은 소설가 박완서의 고향으로 현 황해북도에 속한다.]
 
그런데, 손기정·남승룡 선수가 열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가던 시절인 1930년대 경의선과 관련된 신문기사들을 보면 열차의 탈선, 전복 등 여러 가지 사고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은 빈번한 ‘철도자살’이다. 예를 들어 <조선중앙일보> 1933년~1936년에 실린 관련 기사 제목들은 다음과 같다.
 
1933-05-09 철도에 도입하여, 청년자살, 경의선에서
1933-10-01 속출하는 철도 轢死(역사), 황주부근서 또 미인자살
1933-10-04 기차에 跳入(도입) 자살, 2일 경의선의 참극
1933-10-28 경의선에서 철도자살, 신분은 불명
1933-11-28 가정의 불화로 소부가 철도자살, 허리가 끊어져 무참히 죽어, 경의선 철로의 비극
1934-10-25 양처에서 열차자살 모두 다 무참히 죽어
1934-11-25 경의선에서 청춘남녀가 情死(정사)
1935-02-27 인처가 가정불화로 철로에 돌입자살 (경의선 한포역에서)
1935-05-17 85세 노인 생활난으로 자살, 경의선 동림 부근에서
1935-05-28 남녀철도 자살, 함경, 경의선에서
1936-08-20 생활난 비관하고 철도 자살
 
예나 지금이나, 생활고를 비롯해 여러 가지 원인으로 삶의 무게를 지탱하기 힘들어진 사람들이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하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기차 철로에서 지하철 철로로 바뀌었을 뿐, 뛰어드는 사람들의 사연은 엇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겪었을 고통 못지않게, 자신이 운전하는 열차에 사람이 뛰어드는 광경을 목격해야 하는 기관사들의 고통과 트라우마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증기기관차 ‘화통’의 일생
우리가 보통 ‘기차’하면 떠올리는 소리와 이미지는 요즘의 KTX 같은 고속열차가 아니라 증기기관차로부터 온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대표적인 증기기관차를 꼽는다면 아마도 경의선 장단역에 멈춰서 있던 증기기관차, ‘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기억되는 ‘화통’이 아닐까. 원래 북한에서 운행되던 ‘화통’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획득해 군수물자 수송용으로 사용했다. 경의선을 오가던 이 증기기관차는 1950년 12월31일 밤 개성에서 평양으로 향하던 중 중공군의 공세로 황해도 한포역에서 후퇴해 장단역까지 남하하게 된다. 퇴각하던 연합군은 북한군이 이 열차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기총 사격을 가해 파괴했다.
 
화물칸들은 사라지고 폭파된 기관차만 선로를 이탈한 채 덩그러니 남아,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남측 비무장지대의 수풀 속에서 세월의 녹(綠)을 먹어가며 적갈색이 된 채 홀로 서 있었던 ‘화통’의 모습은 단절된 남북의 현실과 처참했던 전쟁의 기억을 소리 없이 증언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1020여 발의 총탄 흔적을 몸에 간직한 채 풍화되고 부식되어 온 ‘화통’은 2004년 ‘등록문화재 제78호’로 지정됐고, 방치된 지 무려 56년 만인 2006년 말에 옮겨져 약 2년간의 보존처리 과정을 거친 후 2009년부터 임진각에서 전시되고 있다.
 
김바다 시인의 동시 ‘장단역 증기기관차 화통’에 따르면, 화통이 “세찬 눈보라 속에서도” 그 긴긴 세월을 버텨 온 것은 “경의선 철로를 달려 / 북쪽 땅과 남쪽 땅을 / 빠앙빠앙 기적 소리 울리며 / 새 기차에 매달려 / 칙푹칙푹 달릴 꿈을 꾸어서”이다(<전봇대는 혼자다: 장철문 외 48인 동시집>, 사계절, 2015). 화통과 우리들의 이 설레는 꿈은 과연 언제쯤 이루어질까.
 
역사적인 2018 남북 정상회담의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달 28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을 찾은 관광객들이 철도중단점 열차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라진 새마을호, 새로운 고속열차를 기다리며
2018년 4월30일 새마을호가 1160편 장항선 열차의 전북 익산~서울 용산 구간을 마지막으로 운행을 종료했다. 1969년 ‘관광호’라는 이름으로 경부선 운행을 시작해 1974년 ‘새마을호’로 개칭되고 한 시절―2004년 고속철도 KTX가 나오기 전까지는―‘최고급’ 또는 ‘특급열차’라는 명성을 누리며 49년을 숨 가쁘게 달려온 이 열차가 퇴역하던 날, 많은 시민들이 그를 지켜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역사의 한 시기 우리 삶의 동반자였던 존재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 그리고 이제는 보내야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마을호는 ‘ITX-새마을호’라는 이름으로 자신과는 전혀 다른 최신형 전동열차에 이름만 물려주고 사라졌다. 새마을호처럼, 비둘기호도 통일호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때는 그 기차에 함께 실렸던 우리들의 추억 때문에 더욱 애틋하고 아쉬웠을 것이다.
 
경부선 통일호 좌석은 딱딱하다
그 통일호가 잠깐 서 있는 동안
옥천역 구내
허리 구부정한 늙은 청소부
 
깨끗한 역 구내
금잔화 가지런히 피고
< … >
 
열차 오고 가는 것
통 아랑곳하지 않고
쓴 곳 또 쓸고 쓸고
 
집에 가야 죽은 마누라 사진도 없다
역 구내가
차라리 집 노릇
 
막 생겨난 새마을호가 달려가며 일으키는
그 사나운 바람에 한번 휘청거린다
(‘옥천역 청소부’, 13권)
 
1일 오후 경기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기획전시실에 전시된 도로 및 철도 노선을 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군대와 물자, 피난민들을 실어 나르던 전쟁시절이나, 겉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는 ‘휴전’시절이나, 철도와 열차는 우리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일상적이면서 역사적이고, 현실적이면서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현재 한반도 남쪽의 경의선은 서울역~도라산역을 가리키고, 한반도 북쪽의 경의선은 도라산역~평양역 사이의 평부선과 평양역~신의주역 사이의 평의선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말하듯이, 도라산역은 남쪽의 마지막 역이기보다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다. 출국·입국이 아닌 출경·입경이고, 출경도 입경도 모두 ‘출입심사’로 표시되어 있다. 도라산역에서 ‘타는 곳 개성·평양 방면’이라 쓰인 표지판을 바라보는 승객들의 심장이 뜨겁게 뛰는 것은, 한 세기 전 한반도의 남북을 종단하고 만주와 시베리아를 이어 유럽으로 달려가던 그 여정을 다시 살려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리라. 증기기관차가 고속열차로 바뀔 만큼의 시간이 흐르지 않았는가.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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