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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독전’ 조진웅, 무엇이 그를 짜증나게 했을까
“간결한 상업영화 착각, 촬영하며 심도 깊은 질문 다가와”
“삶에 대한 질문 같은 결말, 나와 같은 느낌 받았다면 OK”
2018-05-21 10:41:32 2018-05-21 10:41:32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단상 하나. 엄청난 거구이지만 그에 걸맞게 너무도 인간적인 친근함이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배우다. 언제나 항상. 단상 둘. 작품이 끝나도 일정 기간 동안은 그 작품의 느낌과 분위기 그리고 배역을 쉽게 떠나 보내지 못한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작품과 배역에 매몰돼 인간미를 잃지는 않는다. 흡사 그 작품과 배역과 함께 일정 기간을 두고 ‘이별’을 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듯 했다. 고통스럽거나 괴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독전’은 조금 달라 보였다. 배우 조진웅에게 ‘독전’은 고약한 질문을 던진 듯 했다. 그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준 것과 함께 혼란을 준 것 이 두 가지가 너무 가치가 있게 다가왔고 그렇게 느껴져서 고맙단다. 쉽사리 지워내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사실 언론시사회를 통해 관람을 한 입장에서도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조진웅은 ‘독전’에서 독했다.
 
배우 조진웅. 사진/NEW
 
18일 오후 점심 시간이 막 지나고 서울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조진웅을 만났다.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모습이었다. 인터뷰 전 날 이해영 감독과 함께 VIP 시사회 직후 둘이 간단한 맥주 한 잔을 했단다. 말은 간단하지만 좀 쎈 자리였던 듯 했다. 점심으로 해장을 시원하게 했다는 그는 자리에 앉자 마자 ‘독전’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워낙 대화 도중 스포일러가 많아 걸러내는 작업은 기자의 몫이었다. 그는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독전’ 속 원호의 목소리와 조진웅의 목소리가 뒤섞였다.
 
“캬~기자님 이거 어떻게 쓰실까. 하하하. 우리 영화가 정말 묘하게 ‘스포’가 많아서 참 말씀 드리기도 뭐해요. 그쵸(웃음). 이 영화는 이해영 감독과 같은 사람의 말초신경 체계가 없었다면 사실 나오기 힘든 영상이었던 것 같아요. 끊임없이 촬영을 하는 동안 내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어요. 사실 그 질문이 부질 없단 걸 알아요. ‘원호’도 그랬을 거에요. 허무한 거죠. 대체 왜 이렇게 독하게 달려 왔을까. 영화를 보시면 관객 분들도 분명히 느끼실 거에요.”
 
알 듯 모를 듯한 그의 현학적인 대답은 사실 ‘독전’을 보고 난 후라면 고개가 끄덕여 질 지점이다. 그만큼 상업적 코드 안에서 ‘독전’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그려냈다. 하지만 제목 그대로 ‘독하게’ 밀어 붙였다. 웬만해선 꿈쩍도 안 할 이 거구의 배우가 꽤 고생을 한 듯한 느낌이다. 마약수사대 팀장 ‘원호’를 아직 떠나 보내지 못한 것은 분명했다.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뭐가 더 있었다.
 
배우 조진웅. 사진/NEW
 
“단언컨대 ‘독전’은 불편한 영화입니다. 이런 독한 질문을 던져 줬으니. 이건 배우인 저에게만 준 게 아니라 관객 분들에게도 다가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사실 많지 않아요. 그렇잖아요. 무엇 때문에 원호는 그렇게 ‘이 선생’에게 집착을 했을까. 그런데 끝에서 만난 설원의 처연함과 그 장면에서 원호의 모습. 제가 연기한 것이지만 실제로 지금 떠올려 보면 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과정이었어요.”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한 조진웅 즉 ‘원호’의 모습 그리고 노르웨이의 설원 전경. 쓸쓸하고 공허한 느낌이다. 이 장면의 숨은 뜻은 결과적으로 ‘독전’의 결말로 이어진다. 그는 이 장면을 촬영하면서 겪은 생각 그리고 이 감독과 다시 나눈 얘기. 여기에 배우로서 자신의 고민을 보듬어 준 이 감독의 배려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원호’로서 그리고 조진웅으로서 그렇게 진심을 보였다.
 
“영화를 보시면 저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 가잖아요. 실제로 제가 운전하면서 차 안에 카메라 한 대 설치하고 가는 거에요. 혼자 별 짓을 다 했어요. 담배도 피웠다가 장갑도 벗었다가 다시 끼고 눈물이 쏟아져서 울기도 하고 혼잣말로 별 소리를 다하고. 그렇게 되더라구요. 나중에는 ‘내가 여기 왜 온거지’란 생각까지 들었죠. 그때 ‘원호’가 된 것 같아요. 그 촬영이 ‘독전’ 막바지 촬영이었어요. 어제 이 감독이랑 술 한 잔 하면서 그 장면에 대해 속내를 다 털어놨어요. 그러자 이 감독이 ‘다시 가서 우리 찍자. 노르웨이’ 이러더라구요. ‘캬~이 사람 날 알아주는 구나’란 생각에 눈물이 났다니까요.”
 
배우 조진웅. 사진/NEW
 
워낙 영화 속 자신의 감정에 대한 얘기로 시간이 흘러갔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디테일한 감정도 궁금했지만 촬영 기법과 배우로서의 캐릭터 소화 스킬 등도 분명히 눈길이 가는 지점이 많았다. 가장 놀랍고 충격적인 장면은 아무래도 ‘원호’의 마약 흡입이었다. 마약 수사대 팀장으로서 위장 잠입해 상대방을 속여야 하는 장면에 등장한다. 분명히 스크린에선 하얗고 빨간 가루가 조진웅의 콧속으로 ‘쉭’하고 들어간다.
 
“진짜 마시는 장면이에요. 하하하. 진짜 마약은 아니에요(웃음). 소금하고 분필가루였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안마시고 촬영 기법으로 넘어가는 거였죠. ‘준비’하고 있다가 감독님이 ‘컷’해줘야 하는데 안하더라구요. 그때 나도 왜 그랬는지 ‘에라 모르겠다’하고 ‘흑’하고 빨아 들였어요. 와 다시는 세상에서 경험하기 싫은 고통이었어요. 머리 뒤쪽에 그 소금의 찐득한 느낌이 남아 있는데. 영화에서 나온 붉게 충혈된 눈이 그때 생긴 거에요. 나중엔 실핏줄까지 터졌더라구요. 뭐 하나 건진거죠. 하하하.”
 
온 몸을 불살라 가며 찍은 영화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다. 그저 ‘형사가 범인 잡는거구나’라고 생각했단다. 너무 간단한 스토리다. 간결했다. 재미있었단다. 그래서 캐스팅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하지만 앞선 설명처럼 촬영 기간 동안 감정의 극단으로 고통스러웠다. 그의 모습을 받아주고 또 밀어내던 상대역 류준열이 있었기에 조진웅은 ‘독전’의 ‘원호’가 탄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공을 돌렸다.
 
배우 조진웅. 사진/NEW
 
“이 녀석(류준열) 눈을 보는 데 ‘와~’ 뭐가 있어요. 눈이 앵간해야지. 7cm 앞에서 ‘페이스 투 페이스’로 찍는 장면에서 봤어요. 평소 너무 건강하고 좋은 이미지로 알고 있는 후배였는데. 이런 친구가 ‘락’을 연기한다고? 그런데 그냥 ‘락’이었어요. 너무 좋은 기운을 받았어요. 이 놈하고는 꼭 다른 영화에서 다른 이야기로 다시 한 번 만나야 해요. 정말 대단한 친구에요. 최고에요.”
 
이미 세상에는 없지만 ‘독전’의 히든 카드로 불리는 고 김주혁에 대한 기억도 잊지 않았다. 생전에도 큰 친분은 없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연기를 다시는 볼 수 없다. 친분은 없었지만 같은 업을 삼고 있던 동료로서 조진웅의 기억 속 고 김주혁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잠시 진중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선배이자 동료였던 고인에 대한 기억을 가슴 아래에서 끌어 올리는 중이었다.
 
“너무 화가 나요. 그 선배의 연기를 다시는 볼 수 없단 게. 그런 배우와 다시는 할 수 없단 게. 내가 울어서 돌아올 수만 있다면 100번 1000번 1만번이라도 울죠. 그런데 안되잖아요. 휴~. 저와는 큰 친분도 없었고 같이 했던 작업도 ‘독전’이 처음이고. 단언컨데 ‘독전’ 속 김주혁의 ‘진하림’은 내가 알고 있는 영화 속 모든 캐릭터를 통틀어 최고였어요. 나도 그랬고 이 감독도 그랬고. 속으로 전율을 느꼈으니. 제가 지나가면서 이 감독에게 ‘계 탔다’라고 했을 정도였으니. 하늘에서 잘 보고 계시겠죠. 뭐(웃음)…(하늘을 보며) 잘 계시죠 선배님.”
 
배우 조진웅. 사진/NEW
 
그는 개봉을 앞둔 ‘독전’에 대한 관객들의 관람 포인트와 자신이 정리한 ‘독전’의 단상 그리고 배우로서 이 영화가 자신의 배우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대한 마무리를 했다. 진지하면서도 위트가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무게감을 잃지 않았다. 단순히 무거워 보이고 싶어하는 허세는 먼지 한 올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 ‘원호’가 이런 질문을 받잖아요. ‘이제 어쩌실 거에요’라고. 사실 그게 저한테는 ‘왜 그렇게 살았어’로 다가오더라구요. 정말 많은 정리가 됐어요. 그 대사 하나로. 처음에는 단순한 범죄오락영화로 알고 참여했어요. 그런데 정말 심하게 배신감이 들었죠. 다 찍고 나니 그 감정의 허무함에 너무 힘이 들었어요. 지금도 너무 짜증이 나요. 이 짜증이 뭔지를 아직도 모르겠어서 더 짜증이 나고. 영화를 보시고 저와 같은 짜증이 나신다면 ‘독전’의 결말에 완벽히 공감하신 것이라 여겨집니다.”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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