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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의 재계시각)오너의 또 다른 복심 '경제단체 상근부회장'
2018-06-18 07:00:00 2018-08-10 11:08:06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송영중 상임부회장 사태를 계기로 경제단체 상근부회장 에 관심을 모아지고 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경제단체는 노동조합과 함께 특정한 이익이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의회나 행정기관 등에 압력을 가하는 ‘압력단체’ 가운데 하나다. 회원사 이익 실현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의 핵심 활동 가운데 하나가 대정부 로비다. 미국의 경우 로비스트업이 발달해 이들이 특정 업종을 대변하는 경제단체를 직접 만든 후 회원사들로부터 받은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정부와 의회에 접근, 입장을 관철시킨다.
 
지난 15일 오전 송영중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이 자신의 거취가 결정되는 회장단 회의가 열리는 서울 중구 장충동 서울클럽을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은 미국처럼 로비스트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경제단체들을 통해 정부 정책이나 규제에 대한 의견을 내고 있다. 기업·산업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정부가 게이단렌 등 경제단체와 대화하는 일본의 관행을 한국 실정에 맞게 정착시킨 것으로 보인다.
 
경제단체 수장 자리는 업계 1위 또는 그에 걸맞는 명성을 얻고 있는 오너(또는 그에 해당하는 전문경영인)를 선출한다. 대정부 교섭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자기 기업을 이끌고 있는 현역 기업가가 경제단체장 업무에 매진하기 어렵다. 따라서 경제단체장은 비상근으로 하고, 실질적인 활동은 2인자인 상근부회장이 담당한다. 경제단체의 최고 경영자는 상근부회장이라고 보면 된다.
 
경제단체 상근부회장은 각자의 분야에서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실무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돼야한다. 업계와 정부, 정치, 사회에 걸쳐 폭넓은 인맥을 갖추면 금상첨화다. 그런데, 상근부회장이 갖춰야 할 중요한 자질은 회원사 최고경영자, 즉 오너들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에 맞춰 법·제도 개선을 이끌어내는 능력이다. 앞의 두 가지 능력은 떨어져도 세 번째 능력만 제대로 발휘한다면 최고의 상근부회장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상근부회장을 ‘오너의 또 다른 복심’이라고 부른다.
 
경제단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오너의 인정을 받는 상근부회장은 상상 이상의 권한을 갖는다고 한다.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경제단체 운영을 독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 고위 관료들과의 만남도 ‘마음만 먹으면’ 수시로 가질 수 있고, 심지어 회원사 기업 활동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명예 퇴진을 했지만, 이승철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상근부회장에 오르기 전부터 전경련을 사유화했다는 비난이 안팎에서 제기되어왔지만 그의 권한은 오히려 더 커졌다”면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오너들의 신뢰를 등에 업은 이 전 부회장은 거침이 없었다. 그에게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은 전경련에서도, 회원사에서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많은 이들이 대다수 경제단체 상근부회장을 정부에서 퇴직한 전직관료들로 채워지는 상황을 비판한다.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경제단체에 전직 관료 모시기가 관행화 된 것은 정부 정책에 대해 누구보다 이해와 경험이 많은 인재들을 등용하기 위함이라는 긍정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경제단체에 대한 존재감이 희석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신주의에 빠진 관료 출신 상근부회장 때문에 조직은 더욱 움츠러들고 있다.
 
미국발 철강 통상 분쟁이 반발하고, 조선산업 구조조정 정책 추진으로 급박한 상황이 이어졌던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해당 업계 단체인 한국철강협회와 한국조선플랜트협회의 상근부회장은 단 한 마디 업계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채 납작 엎드려 있다가 회원사들의 반발을 샀다. 두 사람은 임기만료 후 자리에서 물러났다.
 
재계 관계자는 “상근부회장이라는 자리는 업계를 대표해 목소리를 내는 자리인데, 요즘은 잠시 머물러 있다가 좋은 자리로 이동하는 정거장 정도로 여기는 것같다”면서 “상근부회장이 책임을 저버린다면, 경제단체 스스로 조직 축소나 해체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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