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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산’ 이준익 감독, 그가 말하는 촌스러움의 미학
“락은 공동체의 목소리, 힙합은 개인의 목소리..뿌리는 같다”
“촌스러움? 내가 변두리 출신이기에 촌스러움만 알 뿐이다”
2018-06-27 11:29:32 2018-06-27 11:29:32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감독 이준익. 그의 영화에는 항상 몇 가지가 담겨 있다. 우선 이야기다. 그는 장르 영화 감독임을 부정한다. 그는 장르를 알지 못한다고 손사래다. 두 번째 그는 상업영화 감독임을 부정한다. 지금까지 숱한 히트작을 내놨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돈 되는 상업영화를 잘 찍는 감독들이 수두룩하다며 웃는다. 그는 드라마, 즉 이야기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스스로를 말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사람이 항상 있다.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고, 또 어디에서나 봤음직한 사람. 때로는 영화를 보는 관객 본인이기도 하다. 그게 이준익 본인이기도 하고. 그래서 변두리 촌티를 벗지 못하는 얘기만 찍어오는 것일까. 당연히 이 역시 그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다. 그 자신이 변두리 인생이었다며. 그래서 변두리 촌티 나는 얘기만 만들 수 있단다. 영화 ‘변산’도 그렇게 나온 촌티 팍팍 나는 그런 사람 얘기인 셈이다.
 
이준익 감독.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지난 22일 만난 이준익 감독은 우선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언제나 웃는 얼굴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는 유쾌했다. 시원하게 한 작품 잘 끝냈으니 웃음부터 나올 것이다. 그는 늙지 않는 자신의 감성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올해 환갑인 그의 나이와 ‘변산’ 속 랩의 교집합은 사실 그렇게 공유되는 지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래퍼들의 이름을 술술 외웠다.
 
“힙합을 알고 싶었죠. 힙합과 ‘변산’ 굉장히 이질적인 구조아닌가요? 한국에서 미국 래퍼를 흉내내고. 되게 이상해. 차라리 우리 생활 속에서 랩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에 집중해 봤죠. 전작 ‘라디오스타’에선 락 음악을 바라봤잖아요. 난 개인적으로 락과 힙합은 뿌리가 같다고 봐요. 락은 사회적 저항, 억압으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추구했던 공동체의 목소리에요. 반면 랩은 개인주의가 강하지. 일상화된 사회에서의 갈등을 말하잖아. 락이 공동체 정신이라면 랩은 개인의 다양한 정신이 존중 받기를 원하는 그런 거지.”
 
이렇게 그가 생각한 랩 그리고 힙합은 영화 ‘변산’ 속 주인공 학수(박정민)를 통해 그려진다. 배우 박정민은 이 영화를 통해 프로 래퍼 못지 않은 실력을 뽐냈다. 아니 최소한 유려한 수준의 랩을 구사했다. 그의 노력은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지가 가능했다. 이 감독은 그런 박정민의 노력을 백퍼센트 인정했다. 박정민 아니면 ‘변산’은 찍을 이유가 없었다는 극찬까지 했다.
 
이준익 감독.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 속에 등장하는 랩이 10곡 정도 되는 데, 모두 박정민이 가사를 썼어요. 가사가 굉장히 문학적이고 시적이야. 난 이 친구를 보면 굉장히 반듯한 양아치의 느낌이 나. 이게 뭐냐면 그만큼의 신뢰와 반듯함이 보장돼 있단 거지. 뭐랄까. 무단 횡단하는 데 쓰레기 줍는 친구? 무단횡단은 불법이잖아. 그런데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 굉장한 역설적 패러독스 코미디거든. 평생 귀도 안 뚫어본 친구가 이번에 귀도 뚫고 문신도 했어. 그만큼 박정민은 범생이 기질이 다분한 야수야.”
 
반면 ‘변산’ 속 ‘학수 바라기’ 선미를 연기한 배우 김고은에 대해선 뻔뻔함 속의 발랄함과 엄격함을 가진 배우로 정의했다. 이 감독은 첫 촬영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며 김고은의 그 뻔뻔함을 설명하며 폭소를 터트렸다. 무게감도 남달랐단다. 이미 수 많은 히트작을 낸 김고은의 존재감은 작품 선택의 운이라고 보기엔 실력이 충분히 뒷받침 됐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칭찬했다.
 
“첫 촬영이 영화 속에서 학수를 옆에 앉히고 노래 부르는 장면이에요. 얼마나 어색하고 서먹서먹하겠어. 그런데 그 장면을 그렇게 뻔뻔하게 하더라구요. 하하하. 근데 묘한게 그런 뻔뻔함 속에 차분함도 있어. 김고은이 어릴 때 할머니와 자랐다고 했나? 그랬더라고. 나도 할아버지와 살아서 알아요. 차분하면서도 엄격한 기준으로 생활을 한 거지. 균형이 잡힌 거에요. 영화 속에서 8kg를 찌운 것도 내가 시킨 게 아니라 본인이 그렇게 해온 거야. 스스로 해석을 한 거지. 너무 자연스러워서 사실 변화를 감지하지 못할 정도였다니깐(웃음)”
 
이준익 감독.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묘하게도 그의 영화에는 박정민 김고은이 그려낸 인간미가 항상 넘친다. 그건 이준익 감독 영화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관객들에게 인식돼 있다. 언제나 그는 이야기 속에서 사람을 그리고 사람 안에서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변산’ 조금 더 멀어진 느낌이다. 이번에도 사람 안에서 이야기를 끄집어 냈고, 그 이야기 속에서 사람의 삶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하지만 조금 결이 다른 느낌이 강했다.
 
“그렇게 느꼈다면 난 완전 성공한거지(웃음). 아주 기분이 좋다. 감독들은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전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싶은 갈망이랄까. ‘동주’나 ‘사도’를 좋아했던 관객들에게 ‘변산’은 관람의 기대치를 저버릴 수 있는 가능성도 분명 있죠. 하지만 내가 ‘사도’ ‘동주’나 ‘박열’처럼 또 영화를 찍는다면 매너리즘 아닐까. 획일화되게 찍으면 그건 무슨 공산주의 아닌가? 난 모든 관객을 만족 시킬 수는 없어요. 난 가식을 만들어 낼 자신도 없고. 내가 아는 것만 만들 수 있어요. 그래서 SF 장르는 절대로 안돼. 하하하.”
 
마지막으로 궁금했던 지점이다. 이준익은 항상 옛 것에 집착해 오는 느낌이었다. 촌스럽고 투박한 것이라고 표현해도 그것은 언제나 주류가 아닌 비주류 주변의 이야기였다. 이번 역시 제목부터가 ‘변산’이다. 산맥의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산, 그것이 한자어 변산의 뜻이다. 그는 ‘변산’을 촌스러움의 미학’이라고 전했다. 그에게 촌스러움은 무엇이고 주류는 무엇일까.
 
이준익 감독.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촌스러움? 그걸 영어로 ‘레트로’라고 말하면 어떤 느낌이에요? 멋지잖아. 되게 웃긴 거야. 난 그걸 깨보고 싶어. 왜? 내가 변두리 출신이거든. 난 주류가 아니야. 이 영화계에서도. 그래서 주류가 뭔지를 몰라요. 세련된 것 멋진 것? 몰라요. 나 같은 기성세대에겐 금의환향 콤플렉스 같은 게 있어요. 그런 관습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 나고. 투박하게 말해도 그 안에 진심이 있는 그런 정서. 난 그게 촌스러움이라고 생각해요.”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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