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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이야기)‘희망고문’이 부른 죽음
2018-07-04 08:00:00 2018-07-04 09:37:51
지난 6월27일, 쌍용자동차 해고자 한 명이 목숨을 끊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의 무더기 구조조정에 맞선 77일간의 파업 이후 서른 번째 죽음이다. 이번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해고자 김씨는 2009년 8월5일, 파업 중이던 도장 공장 옥상에서 경찰 방패와 곤봉, 군홧발에 잔인하게 짓이겨졌다. 경찰이 쌍용자동차 파업을 얼마나 잔인하게 진압했는지는 유투브 등에서 쉽게 검색되는 당시의 영상을 찾아보면 알 수 있다. 경찰은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노동자들을 화풀이하듯이 두들겨 팼다. 그렇게 죽을 정도로 맞은 뒤에 그는 ‘공동정범’이 되어 수감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는 그런 사실을 9년 만에 처음으로 증언했다.
 
하지만 퇴직금마저 가압류당한 상황이었고, 쌍용차 출신이라는 딱지가 붙어서 어디고 취직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낮에는 건설노동자를 전전했고, 밤이면 트럭운전을 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의 인터뷰 기사가 언론에 나오자 악성댓글들이 달렸다. “귀족노조 노동자 말고는 하기 싫었나 보지?” 정도는 약과였다. 입에 차마 담지 못할 험한 악성댓글이 9년을 이 악물고 견딘 그를 흔들어놓았을까? 그의 죽음 뒤에도 악성댓글들은 멈출 줄 모르는 상황이다. 파업 노동자에게는 딱지가 붙어서 다른 회사에도 취직할 수 없는 공공연한 블랙리스트를 모르기 때문일까?
 
파업 이후 매년 죽음들이 이어졌다. 2009년 6명, 2010년 5명, 2011년 8명, 2012년 4명, 2013년 1명. 2014년 2명, 2015년 2명…그러던 죽음의 행렬이 2016년에 뚝 끊겼다. 그 해 회사와 노조가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전원복직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약속을 어겼고, 김 씨는 120명의 대기자 중에 한 명으로 남았다. 다시 희망이 끊기자 2017년 해고자의 아내가 죽음을 선택했고, 이번에는 김 씨가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방사능 피폭을 당한 것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쉽게 넘어버린다는 조사결과가 입증되고 말았다.
 
회사는 파업 뒤에 47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가 이후 재판과 협상 과정을 거치면서 이를 거두었다. 2014년 11월이 되어서야 퇴직금과 집에 대한 가압류가 풀렸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경찰이 나섰다. 진압과정에서 진압헬기와 장비들이 파손되었으므로 14억7000만원의 손배가압류를 청구했다. 항소심에서 금액이 11억3000만원으로 깎이기는 했지만 매일 이자가 붙어서 17억원을 넘겼는데 이 소송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지난 9년 동안 애써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 그런 그들에게 ‘노동존중사회’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의 출범은 새로운 희망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정부의 공식 입장은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라는 것이다. 명백한 회사의 부정회계 조작도, 부당해고에 대한 항소심의 판단도 손바닥 뒤집으면서 회사 편을 들어준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라는 건 수십 억 손해배상 폭탄을 앉아서 당하라는 말로 들렸다. 그리고 국회는 19대에 이어서 손배가압류를 없애기 위한 ‘노란봉투법’을 발의만 해놓고 상임위 심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최근 경찰은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에 대한 손배가압류 재판에서조차 법원의 조정을 거부한 채 끝까지 밀고 가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자신들의 과잉 폭력진압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없는 이런 태도가 복직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던 그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간 것일까. 그가 세상을 떠나던 날, 아내에게 “그동안 못난 남편 만나 고생만 시키고 마지막에도 빚만 남기고 가는구나. 사는 게 힘들겠지만 부디 행복해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대한문에는 5년 전처럼 서른 명 얼굴 없는 이들의 분향소가 다시 차려졌다. 손배가압류의 고통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희망을 끈을 놓고 다른 선택을 할까 두렵다. 언제까지 희망고문을 계속할 것인가.
 
박래군 뉴스토마토 편집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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