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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산’ 박정민, 그를 키워낸 불안의 원인
‘그것만이 내 세상’ 때 겪은 극한 스트레스…“후회가 이유”
‘변산’으로 힐링 기대 그래도 불안…“학수를 이해하는 계기”
2018-07-05 11:09:47 2018-07-05 11:09:47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오해를 할 만 했다. 먼저 배우 박정민을 인터뷰하기에 앞서 일부 관계자와 동료 기자들의 전언을 들었다. 좋게 표현하면 ‘거침이 없다’는 평이 많았다.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그와 직접적으로 만날 기회가 단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궁금하기는 했다. 영화 ‘동주’에서 일반인들에겐 생소했던 실존 인물 ‘송몽규’를 연기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송몽규’를 연기하기 위해 실제로 중국까지 다녀올 정도로 열정과 노력이 대단했던 박정민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이준익 감독은 ‘동주’를 만들면서 박정민을 색다르게 본 듯 했다. 박정민에 대해 ‘양아치성’ 그리고 ‘싸가지 없음’을 장점으로 꼽았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 감독의 말은 ‘싸가지는 밥맛 없는 싸가지 없음이 있고, 싸가지는 없는데 되게 맛있는 싸가지가 있다’ 정도. 여기서 박정민은 완벽하게 후자란 것. 이 말에 박정민은 박장대소했다. 그렇게 박정민과 이준익 감독은 영화 ‘변산’을 통해 다시 한 번 만났다.
 
배우 박정민.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2일 오전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박정민은 전 날 ‘변산’ 관련 행사에 참석한 이후 잠을 설쳤단다. 너무 화가 나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그는 많이 피곤해 보인 모습이었다. 언제나 후회를 한다고. 어제 그랬던 일도 마찬가지다. ‘지우고 싶은 흑역사와 화해를 하는’ 영화를 촬영하고 나서 묻는 첫 질문은 그래서 ‘흑역사’였다.
 
“하하하. 바로 어제도 흑역사에요. 아휴, 내가 대체 왜 그랬는지. 어제 행사를 하고 또 후회가 된 거에요. 뭐 자세한 상황과 사건에 대한 후회라기 보단 제가 좀 그래요. 걱정이 많고 불안함이 많아요. 그래서 뭐든지 후회를 하나 봐요. 정말 피곤한 스타일이죠. 이러면 절대 안 되는데. 하하하. 촬영 당시가 떠올라 ‘왜 그때 저렇게 밖에 못했지?’란 후회가 와서 간단히 와인 한 잔에 취기가 올라 SNS라이브 방송을 켰는데. 어후 지우고 싶네요. 어제를(웃음)”
 
올해 초 흥행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을 통해 그는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자폐성 장애 ‘오진태’를 연기하며 대중과 평단의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실제에 가까운 피아노 연주와 꼼꼼한 자폐 성향 관찰로 이뤄낸 캐릭터까지. 상대역 이병헌의 존재감도 압권이었지만 박정민의 연기가 이 영화의 흥행을 이끌어 냈던 원동력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그는 거의 모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불안’을 호소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불안해요. ‘변산’이 실패할 것 같은 불안이 아니에요. 뭐랄까. 이건 설명이 안되요. 제가 그렇게 살아왔고 그 살아온 시간의 관성 때문인 거 같아요. 매사에 제가 저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버티는 스타일이에요. 타인에겐 관대하고 나 자신에겐 엄격하라? 이런 말이 있잖아요. 전 나 자신을 좀 무시한다고 해야 할까? 글쎄요. 뭔가 좀 스스로를 달래 주려고 찍은 게 ‘변산’이었는데. 또 촬영 끝나고 개봉 앞두니 이러네요. 하하하.”
 
배우 박정민.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분명히 그는 어떤 영화를 찍던 과정에 대한 고민을 최소화 시킨단다. 작품 선택에 대한 고민과 결정은 길어봤자 5분 내외라고. ‘그것만이 내 세상’을 찍고 지치고 힘들었던 순간에 이준익 감독을 만나 얘기를 전해 듣고 시나리오를 받았다. 고민 없이 그 자리에서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쉴려고 힐링을 위해 선택한 영화였지만 막상 촬영 때는 또 안그랬다.
 
“이게 배우들이 겪는 실수의 반복인데. 뭐랄까요. 뻔히 어떨 것이란 걸 알아요. 그런데도 그 걸 또 하고 있어요. 하하하 무슨 말이냐면 ‘동주’ 이준익 감독님하고 작업하면서 정말 고생고생을 다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시나리오 받고 얘기를 좀 들어보니 ‘재미있겠다’ 별 준비 없어도 될 듯 했어요. ‘그것만이 내 세상’ 때 정말 스트레스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변산’을 찍으니 또 스트레스에요. 하하하. 우선 감독님이 별 말을 안하세요. 현장에서. ‘내가 잘하는 건지’ ‘뭐가 틀린 건 없는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하하하. 배우한테 거의 전적으로 다 맡겨 주시는 타입이세요.”
 
글을 쓰는 배우로도 유명한 박정민이다. 그의 말처럼 ‘변산’에서 그가 아무것도 준비 없이 촬영에 돌입한 것은 아니다. 극중 래퍼인 역할을 위해 실제 활동 중인 유명 래퍼들과 만나 강습도 받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10곡의 랩 곡 가운데 단 한 곡만 빼고 모두 박정민이 실제로 가사를 썼다. 그가 힐링을 위해 선택한 영화였지만 고생을 하고 심혈을 기울었단 것도 충분히 납득이 되는 대목이었다.
 
배우 박정민.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하하하. 뭐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놀라 간 현장은 아니었구요(웃음) 우선 ‘변산’에선 랩이 가장 관건이었죠. 사실 시나리오에는 랩이 없었어요. 그냥 일종의 가이드 정도만 설정이 된 것이었죠. 주인공 ‘학수’가 래퍼이니 이 지점에서 랩을 스토리의 전달 도구로 사용한다 정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랩 가운데 ‘쇼미더머니’ 출전해서 2차 예선에 등장하는 한 곡만 빼고는 전부 제가 다 썼어요. 어차피 제가 연기한 ‘학수’의 얘기이고 그의 마음을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 감독님도 처음 제가 가사를 써보겠단 제안에 흔쾌히 오케이 해주셨어요.”
 
‘변산’에서 랩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의 역할이다. 하지만 분량이 엄청나다. 랩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국내 상업영화 자체가 전무했다. 캐릭터 조차 없었다. 전체의 톤 앤 매너를 결정하는 연출의 방향은 분명히 이준익 감독의 몫이다. 하지만 그것을 조율하고 그려내는 몫은 분명히 주인공 ‘학수’이고 그것을 연기하는 박정민의 몫이었다.
 
“외국 영화 가운데는 교본이 될 좋은 영화들이 많죠. 실제 래퍼의 삶을 그린 ‘8마일’ 같은 영화도 있고. 근데 일부러 더 안 봤어요. 무의식적으로라도 제가 그걸 쫓아서 할까 봐서 안 봤어요. 그리고 사실 ‘변산’은 세련된 맛이 나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도 동의하신 부분이고. ‘변산’은 무조건 촌스럽게, 아주 촌스럽게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만약 제가 교본이 될 만한 영화를 보고 그 촌스러움을 안 받아 들이면 감독님 탓을 할 것 같아서 처음부터 나만의 래퍼이자 ‘변산’으로 가자고 마음 먹었죠.”
 
배우 박정민.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그것 만이 네 세상’에선 피아노 연주를 하는 연기로 화제를 모았다. 이번에는 랩이다. 단순하게 빠르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역시 랩에는 거의 문외한 이었단다. 더욱이 이준익 감독이 랩은 박정민에게 거의 전담을 시켰단다. 부담감이 엄청났다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면을 위해 촬영 3개월 전부터 연습에 몰입했다.
 
“처음에 호기롭게 ‘뭐 하면 되겠지’란 생각으로 달려들었죠. 와, 피아노 연습은 비교가 안되더라구요. 피아노 치는 건 기술적으로 잘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가 있어요. 그런데 랩은 오롯이 제가 말을 해야 하잖아요. 진짜 정말 어렵더라구요. 최소한 프로처럼은 안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모습은 보여주자는 것에 방점을 찍고 연습했죠. 감정 전달과 발성 그리고 딕션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아우 창피해 또. 하하하.”
 
차기작은 ‘타짜3’다. 1편과 2편이 기록적인 흥행을 한 시리즈 영화다. 1편의 조승우 2편의 최승현에 이어 3편의 주인공을 연기한다. 상대역은 ‘연기 괴물’ 류승범이다. 그동안 박정민이 출연해 왔던 작품의 색깔과는 확연히 다른 작품이다. 그는 기대감에 소름이 돋을 정도라며 밝게 웃었다.
 
배우 박정민.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아마도 제가 데뷔 이후 가장 대중적인 코드의 상업 영화가 ‘타짜3’일 것 같아요. 전 기본적으로 작품 제안이 들어오면 길어도 5분 이상이 안 걸려요. 그런데 ‘타짜3’는 주변에 제가 의견을 묻고 다녔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하하하. 꼭 해라는 분들도 많았는데 하지 말라는 의견도 많았어요. 그러면 반대하는 분들을 제가 설득을 하고 있더라구요. 마음 속으로 너무 하고 싶은 데 제가 용기가 없었는지 뭘 자꾸 제 선택에 확신을 얻고 싶었나 봐요. ‘타짜3’요? ‘변산’보다 더 떨려요. 하하하. 우선은 ‘변산’이 잘 됐으면 하지만 이제 제 손을 떠났으니 전 내일부터 ‘타짜3’에 집중하겠습니다. 하하하.”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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