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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그 이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위한 제언
2018-08-06 08:00:00 2018-08-06 08:00:00
지난 7월30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기관투자자의 수탁자책임 원칙’ 이른바 스튜어드십코드(Stewardship Code) 도입을 결정했다. 코드 도입의 근본 취지는 능동적인 주주권 행사와 사회책임투자(SRI) 확대를 통해,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고 투자위험을 최소화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해를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주주권 행사는 특정 기업·산업의 부적절한 행위가 미래세대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기업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이를 방지하기 위한 활동으로서, 비록 기금운용위원회의 의결을 거친다는 단서를 달긴 했으나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활동까지 허용하고 있다. 사회책임투자는 재무적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비재무적 요인 즉,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투자의사결정에 반영하고, 적극적 주주관여를 통해 장기적 가치 상승을 추구하는 투자다. ESG 성과평가를 주기적으로 하고, 기업의 투자 제한이나 배제 등의 사안을 검토 또는 결정하며, 공단의 책임투자 활동을 모니터링함으로써 책임투자의 확대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두고 그 안에 ‘주주권행사분과’와 ‘사회책임투자분과’를 둔다고 한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운영규정’에 따르면, 주주권행사분과는 연금 가입자 단체가 추천한 9명 내외의 위원으로, 사회책임투자분과는 5명 내외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의 임기는 2년이다. 분과별로 독자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특정한 경우에는 전체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위원회는 일단 비상설로 운영된다. 결국 스튜어드십코드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 여부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얼마나 제 역할을 제대로 하는가에 달려 있다.
 
필자는 위원회가 제 기능을 원활히 하고 스튜어드십코드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다음과 같은 고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사회적 책임이나 지속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분명한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해 연금가입자들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원칙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 위원 추천은 국민연금 가입자 단체가 각각 하지만, 일단 위원이 되면 추천한 가입자 단체의 입장이 아니라 연금가입자 전체의 입장에서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원회가 가입자 단체 사이의 이념 대립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위원회 활동은 상시적이어야 한다. 특히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초기에는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많다. 때문에 위원회 상설화는 법 개정 사항이라 당장은 어렵다 해도, 위원회 활동은 상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하여 위원 중 일부를 상시적으로 근무하게 하고, 책임투자팀을 보강하여 위원회 업무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현재 규정으로는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재정과장과 기금운용본부장이 간사 역할을 하게 되어 있으나 업무의 지속성과 전문성이 축적되도록 지원 인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역할과 책임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위원회 운영규정에 보면 위원회는 기금이 보유한 상장주식에 대한 주주권 및 의결권행사와 책임투자 등에 관한 사항을 검토하거나 결정하고 그 결과를 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하게 되어 있다. 특정 사안에 대한 검토와 결정이 동시에 가능하게 되어 있어,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위원회가 검토하여 의견을 기금운용위원회에 제시하는 자문기구로서 역할을 하고, 또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결정하고 집행하는 집행기구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또, 원칙적으로 국민연금 기금운용 정책 결정의 최종 책임은 기금운용위원회에 있기 때문에, 만약 특정 사안에 대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최종 결정을 내린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도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국민연금은 2009년 ‘유엔책임투자원칙(UNPRI, UN 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에 가입하였고, 사회책임투자의 확대를 대외적으로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거의 1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7조 원 내외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이에 비하여 일본공적연금(GPIF)은 2014년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이후 당시 70억달러에 불과했던 사회책임투자 규모가 2016년에는 4740억달러, 2017년에는 1조1300억달러로 비약적 성장을 보이고 있다.
 
ESG로 인한 위험과 기회를 고려하는 책임투자는 일반적으로 자본시장에서 약탈적 자본을 대체하기 때문에 ESG 성과가 좋은 기업에게는 자본조달 비용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도 기업의 경영권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아니라 투자 대상 기업에게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을 통해 기업 가치를 올리라는 책임 있는 주인으로서 충고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은 착한 기업에게는 좋은 자본 조달 기회를 줄 것이고, 악덕 기업에게는 아픈 매질로 다가올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을 말아먹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지만 투명하고 올바른 기업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우려를 없애고 착한 기업이 더 성장하게 도와주는 일이 곧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해야 할 일 아닌가 생각한다.
 
아무쪼록 어렵게 내린 결정이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튼튼하게 하고 국민연금의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지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karlcs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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