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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황정민, 그를 힘들게 했던 ‘공작’의 도전
“액션처럼 대사 해달라” 감독 주문…”너무 힘들었다”
김정일 전 위원장 만나는 장면…”오줌 쌀 뻔 했었다”
2018-08-08 06:00:00 2018-08-08 06: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믿을 수가 없었단다. 자신이 연기해야 할 인물이 겪어온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있었단 사실에 그는 좀처럼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단다. 영화를 본 관객들도 분명 그럴 것이다. 간첩 혹은 스파이라고 하면 우리의 고정 관념은 딱 이렇다.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남한으로 내려 온 비밀스런 남자’가 바로 간첩이고 스파이다. 영화 ‘공작’은 이런 개념을 완전히 파괴한다. 대한민국에서 북한으로 넘어간 스파이다. 그리고 이 얘기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다. 북한을 제 집 드나들 듯 했던 남자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두 번이나 독대를 했던 남자다. 암호명 ‘흑금성’으로 불렸던 박모씨에 대한 얘기다. 황정민은 영화 ‘공작’에서 박씨를 모델로 한 ‘흑금성’ 박석영을 연기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얘기와 황정민이 만났던 실존 인물 박씨에 대한 얘기가 궁금하다.
 
배우 황정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지난 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황정민은 먼저 가벼운 농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난 5월 폐막한 칸 영화제에 ‘공작’은 초청된 바 있다. 당시 심야에 상영된 이 영화는 국내 외 기자단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사실 현장에선 꽤 많은 관람객들이 관람 도중 ‘졸음’을 이기지 못했다며 웃었다. 심야 시간 상영과 별다른 액션이 없는 서사 구조의 영화란 점이 문제였다.
 
“우선 국내 기자 분들에게 되게 고마워요. 칸에선 많은 분들이 사실 졸았잖아요. 하하하. 그 심야 시간에 이런 얘기를 보시려니(웃음). 근데 며칠 전 있었던 국내 언론시사회 버전을 보니 느낌이 조금 달라졌어요. 윤 감독이 그때 칸 분위기를 보고 조금 수정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한 4분 정도 편집을 했다는 데 이야기는 좀 더 타이트하고 긴장감이 생긴 것 같아요. 배우가 감독에게 그런 얘기 못하는 데 기자 분들이 해주셔서 더 좋게 바뀐 것 같아요(웃음).”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의 첫 번째는 사실 말의 액션이다. 황정민이 직접 붙인 ‘구강 액션’이란 호칭이 그래서 생겼다. 동적인 일반적의 액션 장면이 하나도 없다. 엄청난 대사량을 통해 긴장감을 구현해야 했다.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황정민도 사실 이런 서사 구조의 영화는 처음이었다. 누구라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처음에는 별 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여겼다고.
 
배우 황정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되게 궁금한 얘기였어요. 그래서 시작했고. 처음에 어려울 것이란 생각은 안 했어요. 대사가 많지만 외워서 하면 되겠지 했죠. 그런데 윤 감독이 ‘대사를 액션처럼 해달라’고 주문을 하는 거에요. 말을 어떻게 액션처럼 하지? 이해가 안됐죠. 와 하면서 정말 힘들었어요(웃음) 근데 그게 나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배우들이 촬영장에서 연기하기 힘들다는 소리는 잘 안 해요. 괜히 짜치게 보이니깐. 근데 이번에는 ‘너도 힘드냐, 나도 힘들다’ 다 이런 식이었어요.”
 
‘공작’이 황정민 같은 베테랑을 이렇게 괴롭힌 이유는 분명했다. 우선 스파이 영화란 점이다. 남을 속이고 또 속내를 들키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관람을 하면서 영화 속 캐릭터들이 상대방에게 자신의 진심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달이 돼야 했다. 결국 관객이 이 모든 상황에 이입되고 동화되게 만들어야 했다.
 
“정확하게 그 지점이에요. 쉽게 말하면 제 자신이 드러나면 안 되는 것이죠. 관객들은 제가 주인공이고 저를 통해 전체의 얘기를 이해해야 하지만 제 자신이 잘 보이면 안 되는 거에요. 쉽게 말해 이런 거에요. 둘이 마주 보고 앉아서 일차원적인 얘기를 주고 받아요. 하지만 책상 밑에선 양날의 칼이 서로 불꽃을 튀기며 부딪치고 있는 거에요. 휴~ 진짜 힘들었요(웃음). 1인 2역이란 설정을 나름대로 정하고 출발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영화를 보면 사투리도 섰다가 표준어도 쓰고 그러는 데. 뭐랄까 선을 안 넘으려 노력했어요. 넘으려고 하면 그건 정말 쉬워요. 그런 포인트도 너무 많았고. 그런데 그럴 때마다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어요.”
 
배우 황정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윤 감독은 현장에서 별다른 디렉션(연기 코치)을 주지 않는 연출자로 유명하다. 천하의 황정민도 ‘공작’ 속 캐릭터로 인해 머리를 싸맬 정도로 고민을 많이 하는 데 감독은 반대로 그에게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긴 모양새였다. 황정민이란 이름 석자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본인은 죽을 맛이었단다. 물론 그는 이런 과정이 감독 역시 이 영화에 대한 도전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일면 수긍했다.
 
“하하하. 고민고민하고 연기를 하고 오케이 사인이 나요. 그러면 전 ‘어때요? 감독님’ 이렇게 물어보면 감독님은 ‘잘 모르겠어요’ 이러세요(웃음) 아이고 참. 하하하. 그게 뭐랄까요. 확신이나 정답이 없는 영화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모든 게 새로운 영화였어요. 윤 감독도 정말 힘들었을 거에요. 국내에서 ‘공작’처럼 서사를 풀어간 영화가 없었잖아요. 모두가 감독을 도와보자. 뭐 이런 분위기였죠(웃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영화 속 ‘흑금성’과 실제 ‘흑금성’의 만남이었다. 이 영화는 실화가 바탕이다. 때문에 실제 인물이 존재한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복역 후 출소한 ‘흑금성’ 박모씨를 황정민은 실제로 만났다. 연기를 오래 해온 황정민이기에 또 연예계 생활을 오래해 왔기에 사람 감별하는 법은 스스로 ‘무당 수준’이라고 자신해 왔다고. 하지만 박씨는 전혀 달랐단다.
 
배우 황정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저희가 연기를 오래해서 사람 눈을 보면 대충 감이 와요. 그런데 이 분은 무슨 벽 같았어요. 아무래도 자신을 감춰야 하는 그 세계에서 오래 있으셨으니 이런 느낌인가 했었죠. 속내를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뭐 뒷 얘기이긴 한데(웃음) 사실 박 선생님이 영화를 되게 우습게 아셨던 것 같아요. ‘뭐 그냥 찍으면 되지’ 이런 느낌이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영화를 실제로 보시고 정말 잘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그리고 말씀이 얼마나 빠르신지(웃음).”
 
영화 속에서 거의 모든 장면에서 그는 이성민과 함께 한다. 그는 기존 자신의 출연작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이성민과 대사 및 감정을 주고 받았다. 상대의 대사에 뒤를 받치거나 혹은 톤을 죽여 상대의 감정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극중 이성민과 황정민이 부딪치는 장면에선 그의 존재감이 화면 속 어떤 아우라 속으로 숨어 드는 느낌이었다.
 
“정말 그 지점도 고민이 많았었는데 그렇게 봐주셨다니 성공이네요(웃음). 성민 형과 저는 영화 속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입장이 다른 역할이잖아요. 나는 상대에게 잘 보여야 하는 입장이고 상대는 날 떠봐야 하는 입장이고. 미묘하게 신경전을 벌여야 했어요. 형과 서로 아주 세밀하게 조율을 했는데 나중에는 ‘그냥 서로 믿자’란 생각으로 쭉 갔죠. 나와 지훈이 성민형 그리고 기주봉 선배가 나오는 장면에선 서로의 리액션까지 계산을 했어요. 정말 공부가 많이 된 작업이었죠.”
 
배우 황정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공작’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장면일 것이다. 리명운 처장을 연기한 이성민도 이 장면에선 알 수 없는 위압감에 고충이 심했다는 경험을 토로한 바 있다. 황정민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시쳇말로 ‘오줌을 지릴 뻔 했다’고 웃었다. 영화 촬영이지만 실제 김 전 위원장을 만나는 착각을 잠시 했었다고.
 
“그 공간이 정말 엄청났어요. 그 안에 들어가니 내가 무슨 개미가 된 느낌이었죠. 그리고 ‘장군님 들어오십니다’ 이 대사가 딱 들리는 데 진짜 ‘오줌 쌀 뻔’ 했어요. ‘연기를 하는 나도 이런데 진짜 흑금성은 어떻게 만났지’ 이 생각이 번뜩 들더라고요. 대사도 잘 안 나왔어요. 나중에 성민이 형도 ‘여기 왜 이러냐’ 이러면서 당황하더라고요.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 분장을 한 기주봉 선배가 너무 똑같아서 하하하.”
 
그는 이 영화를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됐단다. 배우로서 지금까지 자신이 깨지 못했던 이른바 ‘관성’을 느끼게 됐단다. 그 점은 베테랑 황정민 그리고 충무로 최고 흥행 배우 황정민에겐 다시 없을 수확이자 소득일 것이다.
 
배우 황정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동안 제가 해왔던 작업 방식, 관성이랄까? 작품이나 캐릭터를 접하고 해석하던 패턴을 ‘공작’에선 깨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이 작품 끝나고 초심으로 돌아가보자는 생각으로 셰익스피어 연극도 참여했고요. ‘공작’은 제 바닥이 어딘지를 보게 된 다시 없이 고마운 작품이에요.”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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