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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기획2050)③문재인정부의 사람경제와 디지털 자본주의
2018-09-03 07:00:00 2018-09-03 07:00:00
아우성이다.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은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고 있다. 올해 상반기부터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등을 중심으로 고용지표가 악화되고 있다. 이들 업종은 최저임금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 고용이 급감했다. 시간당 임금이 법정 최저임금보다 높은 지식산업 등 고임금 노동에는 거의 영향이 없었다. 반면 아르바이트 학생을 시간대별로 고용하는 편의점 등에서는 수익 감소로 연결됐다. 편의점주들은 영업시간을 줄이는 방식 등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응했다. 최저임금에 민감한 다른 업종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원래 소득주도성장론은 최저임금을 인상할 경우 노동자의 소득이 올라가고 유효수요가 더 생겨나서 생산도 늘어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정작 최저임금 인상은 기존 고용주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고용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정책의도와 반대로,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을 줄이고 소득을 낮췄으며 유효수요 감소로 생산까지 줄어드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2017년 12월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저임금이 오르면 저임금 노동에서는 장기적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편의점주들은 초기 비용부담을 감수하고라도 무인자동화 시설을 갖춰갈 것이다.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동화 편의점이 한국 편의점의 미래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일자리 없는' 디지털 자동화를 앞당기고 있다. 왜 소득주도성장론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을까.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동일한 사실을 두고 당국은 수요측면에서, 고용주들은 공급측면에서 받아들였다.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을 유효수요 창출로 이해했지만, 자본가들과 보수언론들은 임금 상승을 통한 생산비용 증가로 봤다. 최저임금이 오르자 편의점주들이 고용을 줄이는 것으로 반응한 것은 시장이 단기적으로 후자의 손을 들어준 모습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이 가져온 혼돈과 한국경제의 미래
 
그렇다면 보수언론이 공급측면에서 설명하는 모습이 한국경제의 미래일까. 개별 고용주 입장에서는 소득주도성장론이 실패했을지 몰라도 한국경제 전체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경제를 단기로 볼 것이냐 장기로 볼 것이냐, 개별 기업과 국민경제 중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이냐에 따라 정책 방향이 달라진다. 소득주도성장론의 양면을 고려할 때 시장의 혼돈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의 해법은 비용절감이 아니라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데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이 유효수요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다른 정책수단을 찾아서라도 유효수요를 만들어내야 한다. 보수언론이 전가의 보도처럼 강조하는 공급경제학은 지금까지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 이래 소득 불평등만 심화시켰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인상에 찬성하는 노동계와 반대하는 중소 영세상인들이 대립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유효수요를 중시하는 케인스 경제학 대신 생산비용에 주목하는 공급경제학은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나타난 스태그플레이션의 해결방식으로 지지를 얻었다. 당시는 임금 상승률이 증가하면 실업이 줄고, 임금 상승률이 감소하면 실업은 늘어난다는 '필립스 곡선'이 경제학의 통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오일쇼크를 계기로 비용이 상승하자,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악화되는 이중고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를 계기로 경제학자들은 유효수요를 중시한 케인스 경제학 대신 비용요인을 강조하는 공급경제학을 더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경제의 해법은 규제완화와 조세감면 등을 통해 공급측의 비용요인을 낮추는 게 효과적이라는 통념이 형성됐다. 공급경제학의 득세와 함께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의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그 결과 미국은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라는 쌍둥이적자를 낳았다. 다른 한편 소득 불평등도 악화됐다.
 
1970년대 이후 케인스 경제학은 설득력을 잃어갔지만 여전히 자본주의의 현안은 유효수요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자본주의는 공급경제학이 대두된 이후 비용요인을 중시했음에도 1980년대는 재정적자를 통한 공공부채로, 1990년대는 가계부채로, 2000년대 이후에는 양적완화를 통해 유효수요를 만들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1980년대 이후 글로벌 경제는 빚잔치를 통해 버텨 왔다. 한편으로는 1970년대 이후 케인스 경제학의 순환구조가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거시경제학에서 말하는 '총수요=민간소비+민간투자+정부지출+순수출'이라는 순환구조는 사실상 1980년대 이후 지속가능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 디지털 혁명 등으로 총수요 부족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자동화 기술은 필요 노동력을 감소시키고, 고용저하에 따른 소득감소가 벌어진다. 그리고 이는 다시 총수요를 줄이고 경제침체로 이어지는 연쇄 과정을 거친다. 단순한 경기부양책으로는 유효수요 부족에 대한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게 불가능하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최저임금을 인상할 경우 노동자의 소득이 올라가고 유효수요가 더 생겨나서 생산도 늘어난다는 이론이다. 자료/기획재정부
 
디지털 자본주의에서 '사람경제'로의 전환
 
결국 대안은 '사람경제'다. 사람경제는 디지털 자본주의와 '사람중심 커먼스(Human Commons)'가 밀접한 상호작용을 통해 선순환하는 경제모델이다. 커먼스는 디지털 시대의 비물질적 가치 생산방식이다. 디지털 자본주의가 이윤과 한계비용 절감, 시장원리를 통해 사회 인프라와 자원을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분배한다면, 사람중심 커먼스는 물과 에너지 등 공유재를 관리하고 공공가치 창출하는 작업을 통해 수요를 신장시킨다. 사람경제는 케인스 경제학의 경제 주체인 국가와 시장, 가계에 커먼스 영역이 추가되는 것이다. 커먼스 영역이 확장되면 고장 난 케인스 경제학의 순환고리가 새로운 순환구조로 바뀐다. 커먼스 영역은 사회적경제와 협동조합, 소셜벤처, 사회혁신 등 기존 시장이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공공재 생산의 활로가 될 수 있다. 커먼스는 양육과 노인 돌봄, 교육, 간병 등 공익에 기여하는 모든 활동을 관리하고 기여에 따른 보상을 제공한다. 커먼스의 다양한 가치창출 활동을 소득으로 연계한다면 경제적 수요를 확대시킬 수 있다.
 
사람경제에서는 역량개발을 위한 투자가 확대된다. 디지털 경제시대에 적합한 역량개발은 기계가 대체하기 어려운 사회 능력과 창의력, 의사소통 능력 등이다. 암기 위주의 교육은 지양한다.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평생 역량개발을 위한 정책이 추진할 수 있다. 사람경제는 고용보험을 확대, 일반 근로자에게 학위와 자격증 취득을 위한 안식년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형 범용바우처 제도는 역량개발을 위한 투자정책으로 도입될 수 있다. 기본소득제는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는 한국 문화에 적합하지 않다. 교육투자를 병행하는 한국형 범용바우처 제도가 획기적인 커먼스 정책의 수단이 될 수 있다. 한국형 범용바우처 제도는 21세기 사회투자국가의 정책이다. 30~50대를 위한 대학원 재교육수단으로서 ‘석사 범용바우처’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 석사과정 지원자들에게 석사 범용바우처를 발행하여 교육비, 생활비, 교통비, 육아비 등을 2년간 지급한다.
 
단순한 경기부양책으로는 유효수요 부족에 대한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사람경제와 디지털 자본주의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할 선순환 경제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설명이 힘을 얻는다. 사진/뉴스토마토
 
데이터화 산업, 디지털 경제의 새로운 일자리 보고
 
사람경제에서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대표적 영역은 데이터화(Datafication) 산업이다. 디지털 경제의 경쟁력은 데이터의 축적·활용에 있다. 한국 사회를 주도한 정책담론은 산업화와 민주화, 세계화, 선진화였다. 다음 시대 담론은 데이터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토목이나 제조업이 아닌 데이터화를 통해 유효수요를 창출해야 한다. 데이터화 산업은 블루오션이다. 데이터화 시대의 기반은 한계비용 제로의 사회다. 이 사회에서 생산기반은 원자에서 비트로 전환된다. 이는 가치 생산의 주체가 물리적 제품에서 비물질적 데이터로 바뀐다는 의미다. 아이디어와 프로토타입 개발을 위한 초기 비용 외에 상품을 복제하는 데 들어가는 한계비용은 '0'에 근접한다. 3D 프린터와 재생에너지 발전기 등 신기술을 통해 제품과 에너지가 생산되고 자급자족이 가능해진다. 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의 필요 노동력이 급격히 감소하고 무상에 가까운 서비스와 상품의 공급은 수요를 압도한다. 데이터화 시대에는 새로운 가치 창출과 수요 신장을 위한 경제 체계가 필요하다.
 
한국경제는 향후 20년 동안 아날로그 데이터를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하는 뉴딜이 필수적이다. 이 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데이터화 시대를 맞을 수 있다. 한국이 비록 산업혁명에서는 서양이나 일본보다 뒤졌지만 데이터화 시대에서는 그들을 앞질러서 선도적 경제를 만들 수 있다. 디지털 사회혁신과 디지털 커먼스 투자, 데이터화 산업의 스타트업 발굴과 중소벤처 지원 등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교육과정에서도 코딩교육으로 새로운 교육혁명을 불러올 수 있다. 글로벌 소프트파워 기반도 데이터화 기반으로 가능하며 산업 한류혁명도 데이터화 기반으로 시작할 수 있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행정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동대학 한국행정연구소와 국가리더십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경희대에서는 세계화와 사회정책 등 글로벌 어젠다와 동아시아문명의 국정운영을 연구 중이다. 또 문재인정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공공정책분과 위원장으로 국가 미래전략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15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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