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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기획2050)⑥미래기술과 산업·고용·불평등의 위험과 해결방안
정부가 선제적 투자로 유효수요 만드는 '미래가치형 뉴딜정책' 필요
'데이터화'를 국가전략으로 추진, 세종시를 '아시아 데이터 수도'로
2018-10-15 07:00:00 2018-10-15 07:00:00
문재인정부 들어 고용지표가 악화되자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올 하반기에는 고용지표가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 전망이다. 시민들이 정부에 얼마나 더 인내할 수 있을까. 보수언론은 소득주도성장과 주 52시간 근무제 등 정부의 정책변화가 고용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미국과 일본 경제는 지난 30년 동안 보기 드문 호황이다. 이들과 동조화 경향을 가진 한국 경제만 유독 나빠지는 것은 정부 정책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고용지표가 나빠진다는 것을 미래연구들은 예상하지 못했을까. 가까운 미래에 고용이 악화된다면 그 이후 또는 먼 미래에도 위기가 계속될까. 고용문제 등 위기에 대한 해답으로 미국 국가정보위원회의 '글로벌 트렌트 2035' 보고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 개념을 내놨다. 2016년에 만든 이 보고서는 가까운 미래인 2020년까지는 일자리 위기가 깊어질 것으로 봤지만, 먼 미래인 2035년에는 기계와 인간의 결합영역에서 고용이 늘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때 중요해지는 게 회복탄력성이다. 단기적으로 위기가 올 수 있지만 개인과 공동체, 국가가 위기에 대한 심리적·신체적 근력을 키워 고난을 대처해야 한다는 권고다.
 
9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고용-산업 위기지역 간담회에서 지역별 일자리 창출방안 등에 대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래성찰 위한 골든타임 15개월 남아…회복탄력성 중요
 
지금 한국 경제에 가장 필요한 개념은 회복탄력성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집권당은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야당은 정부의 실정을 비판함으로써 다음 선거에서 집권 기회를 노린다. 선거를 전후해서는 고용 상황을 둘러싼 정쟁도 격화된다. 2020년 4월 총선까지 한국에는 큰 선거가 없다. 정쟁에서 벗어나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미래로부터 올 충격에 대비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2019년 말까지다. 그러는 동안 집권당은 고용지표를 올리려고 급조된 일자리를 만드는 유혹을 떨쳐야 한다. 야당도 지나치게 정부만 비판하지 말고 고용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을 유권자에게 제시, 대안 정당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앞으로 30년 이내에는 지금껏 한국 사회가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내년 말까지는 여야를 떠나 한국의 미래를 위한 성찰의 기회가 돼야 한다.

미래연구자들 사이에서는 15년 내외의 미래에는 일자리 위기가 해소되고 오히려 취업자 부족이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역설적 전망이 많다. 저출산 고령화 이후 일본에서 문제가 된 것은 고용이 아니라 구직자를 찾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조만간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면 고용보다 구인난이 더 큰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고용문제는 전형적인 회복탄력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는 향후 10년 정도는 일자리 관련 문제가 심각해지고 국가적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앞으로 10년 동안의 고용문제는 균형재정의 관점이 아니라 변화하는 인구구조와 미래형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투자적 관점으로 접근할 때만이 헤쳐나갈 수 있다. 예방적인 거버넌스의 관점에서 인구통계학적 변화를 고려, 향후 10년 동안 미래형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선제적 투자가 필요하다. 지금 정부에서 추진하는 일자리 정책보다 훨씬 전향적인 투자가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유효수요를 만드는 '미래가치형 뉴딜정책'이 지금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다. 그 방향이 무엇인지를 보기 위해서는 향후 한국의 인구통계학적 변화와 미래형 일자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전망과 대응부터 필요하다.
 
한국사회 기반 흔드는 인구감소…사회 불안과 갈등 촉발
 
인구감소와 이민문제는 한국 사회의 가장 근본적 변화다. 하지만 현세대가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인구감소에 따라 나타날 사회 불안과 내재된 갈등들이다. 한국은 2020년을 정점으로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관측된다. 많은 전문가들은 고령인구와 여성인력을 활용해도 생산인구 감소를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에서는 저출산과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 생산인구가 2016년에 3763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65년에는 2062만명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인구 변화에 주목한다면 현재 한국이 겪는 고용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인구감소를 고려한다면 향후 10년간의 고용 분야는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 다소 재정적자를 감수해서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2050년을 내다보고 미래형 뉴딜정책을 추진한다면 어느 분야를 어떻게 해야 할까. 2015년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이 한국에 소개돼 유행을 타자 줄어들 고용을 대체할 새 일자리가 이 분야에서 생길 것이라는 예상들이 나온다.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에는 정책의 방향성은 찾을 수 없다. '제3의 길'에서 '그 세번째 길'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듯 4차 산업혁명도 네번째 혁명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제3의 길의 핵심 개념이 사회투자였듯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는 '데이터화'가 있다. 봉건시대에는 토지 소유 여부가 부를 결정했고, 자본의 시대에서는 돈이 경제의 동력이듯 4차 산업혁명은 데이터가 자산으로 부상 중이다. 포브스지는 2015년 산업의 중심이 '원자에서 비트(from Atom to bit)'로 이동하고 있다고 했다. 데이터가 화폐나 부동산, 지식재산권에 견줄만한 자산이 돼 데이터 경제생태계가 급속히 성장 중이라는 설명이다.
 
데이터 경제는 한국 사회에 무한한 잠재력과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무엇보다 데이터화는 한국인들이 비교우위를 가장 잘 발휘하는 영역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지난 50년간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 세계화로 국정을 운영했지만, 앞으로 국정의 중심 담론은 데이터화다.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 중화학·전자공업이 성공한 배경에는 그 산업에 적합한 노동인력을 적절하게 배출했기 때문이다. 근면하고 적절한 수준에서 훈련된, 학교 교육 통해 노동규율이 조직화된 노동인구가 한국 경제의 성장기를 뒷받침했다. 지금 한국의 제도권 교육이 배출하는 인력들에게 가장 적합한 곳은 데이터화 분야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대학 혹은 대학원을 졸업했고 세계 어느 곳보다 정보화와 온라인 환경에 친숙하다.

데이터 경제로의 진화…한국 인재들의 활약과 미래
 
데이터화 초기 단계는 아날로그 자료들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것인데, 일정한 지적 수준과 데이터화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세계 24개국의 연구자와 데이터화 실무인력이 결합해 진행 중인 '비교아젠다 프로젝트(Comparative Agendas Project)'에서는 한국의 대학원생들이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통령 연설문을 데이터로 구축하는 사업, 의회 법률안을 데이터화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근면성이 요구되는 일정한 노동강도와 중간 난이도 이상의 코딩을 위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는 한국 학생들은 글로벌 프로젝트에서도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이면서 한국센터로 지정된 경희대 글로벌아젠다센터는 이 분야에서 다른 어떤 해외 연구소보다 탁월한 성과를 낸다. 데이터화는 수많은 고급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고용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이 분야는 정치학이나 행정학 등 특정 사회과학 분야만이 아니라 철학과 심리학, 신학, 미학 등 다양한 인문학 분야에서 데이터 과학과 융합한 연구개발이 한창이다. 2016년 영국 에든버러 주정부는 향후 20년 이후 에든버러를 '유럽의 데이터 수도'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10년간 정부자금 2500억원과 민간펀드 2500억원을 에든버러 미래연구원에 집중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영국은 데이터가 미래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8월14일 경희대 글로벌아젠다센터에서 임채원 교수와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의 숀 베반(Shaun Bevan) 교수가 2018년 비교아젠다연구에 대한 워크샵을 하고 있다. 사진/경희대
 
한국에서는 데이터화 국가전략으로 세종시를 '아시아 데이터 수도'로 만드는 정책으로 추진할 수 있다. 현재는 세종시를 중심으로 26개 국책연구기관은 '증거기반형 정책(Evidenced-based Policymaking)'을 연구개발하기 위해 데이터센터를 종합적으로 네트워킹하는 일을 진행 중이다. 이는 정책을 경험이나 직관이 아닌 객관적이고 과학적 증거에 기반해 예견적 거버넌스의 기초를 만드는 작업이다. 데이터화에 주목하는 다른 국가들은 이미 증거기반형 정책을 수립해서 미래산업 육성을 시작했다. 미국은 2017년에 국립데이터서비스청(National Secure Data Service)의 신설이 제안된 후 기구가 만들어졌다. 영국에서는 2017년에 정부혁신 전략보고서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서비스 제공과 정부 운영 방식을 효율적으로 혁신하는 내용을 논의했다. 무엇보다 의사결정에서 데이터를 활용하는 등 데이터 사이언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은 올해 데이터 추동 사회로의 진입을 선언, 세계의 '데이터 패권주의'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8월31일 문재인 대통령이 경기도 성남시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데이터 경제활성화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데이터 경제의 패권주의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한국은 세종시를 아시아 데이터 수도로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마침 대통령 공약으로 세종시에 '국가정책대학원' 신설이 제안됐다. 국가정책대학원은 기존 대학원과 달리 세종시를 아시아 데이터 수도로 만드는 허브 기능을 할 수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26개 국책연구기관의 데이터센터를 묶고, 공공데이터를 구글과 아마존, IBM 등 글로벌 기업들과 연계하는 것이다. 데이터화는 향후 30년을 내다 보는 국가전략이다. 한국 청년에게 가장 최적화된 연구와 산업도 바로 데이터 경제 분야이다. 여기에 앞으로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렸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행정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동대학 한국행정연구소와 국가리더십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경희대에서는 세계화와 사회정책 등 글로벌 어젠다와 동아시아문명의 국정운영을 연구 중이다. 또 문재인정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공공정책분과 위원장으로 국가 미래전략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15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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