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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가 큰 손 키덜트족…장난감에 지갑이 활짝
피규어·프라모델 등 불티…유통업계 아동용 완구 줄이고 어른들 모시기 총력
2018-10-19 15:51:00 2018-10-19 15:51:00
[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직장인 양수열씨는 얼마 전 아이언맨 피규어를 샀다. 아이언맨을 정교하게 묘사한 이 피규어의 가격은 무려 300만원. 양 씨는 영화 속 피규어를 종류별로 수집하는 데 벌써 수천만원을 썼다. "피규어 모임이 있는데 이 정도는 명함도 못 내민다. 나보다 더 한 거금을 쓰는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양 씨는 말했다.
 
아이와 어른을 합친 의미의 '키덜트(Kid+Adult)'산업이 유통업체들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장난감에 빠진 키덜트족은 아이들 같은 감성과 취향을 갖고 있는 어른이라는 의미인데, 자신의 취미생활을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마니아층이다. 유통업체들은 이들이 가진 구매력에 주목한다. 소비심리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통업체들에게 키덜트족은 새로운 돌파구가 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키덜트족 관련 시장 규모는 2014년 5000억원대에서 해마다 20%씩 성장해 지난해 1조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는 시장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키덜트족들은 장난감에 매료돼 있다. 산업이 커지면서 피규어, 레고 같은 전통적 장난감 외에 캐릭터 생활소품, 드론 등 상품군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롯데마트 잠실점 내 키덜트 마니아존. 사진/롯데마트
 
키덜트는 몇 년 전만 해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만은 않았다. 돈과 시간이 많은 한가하고 유치한 어른들의 취미로 보는가 하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피터팬 신드롬' 같은 퇴행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최근에는 부정적 측면보다는 개인의 취향으로 존중하며 긍정적인 면이 보다 부각되고 있다. 바쁘고 여유 없는 삶 속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과거에 즐겼던 장난감을 찾는 이들을 하나의 문화집단으로 바라본다. 이 같은 현상은 1인가구 증가에서도 비롯됐다. 소비가 본인에게 집중되는 1인가구는 자신의 취미 생활이나 관심있는 물건에 대해 과감하게 투자하는 경향이 강하다.
 
최근 유통업계의 화두로 등장한 '욜로(YOLO)'도 키덜트족 증가와 무관치 않다. 현재를 중시하고 자기 지향적인 삶을 추구하는 욜로족의 경우 유희적인 소비에 주저하지 않으며 욜로족의 증가는 곧 키덜트족 증가로 이어지는 추세다.
 
특히 전체 완구류 시장이 부침을 겪고 있지만 키덜트 카테고리만큼은 성장세라는 점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실제 출산률 감소와 온라인 매장의 공세, 스마트폰 확대로 아동완구 시장은 성장이 둔화됐다. 설상가상 3~4년만해도 없어서 못 구하던 '터닝메카드'나 '파워레인저 닌자포스', '레고 닌자고' 등 장난감 히트작마저 사라졌다.
 
그러나 키덜트 카테고리의 성장세는 돋보인다. 조립완구 레고는 키덜트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보다 국내에서 올리는 매출이 많다. 건담 프라모델 등을 내놓는 반다이는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전문 매장 등을 거점으로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핫토이와 반다이 등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된 장난감만 지난해 9500억원어치가 넘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유통업계도 어른용 완구류 카테고리를 대폭 늘리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롯데마트다. 롯데마트는 2007년 세계 최대 장난감 매장 토이저러스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국내에서 42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마트업계 3위지만 토이저러스는 완구유통 1위를 굳건히 하면서 효자역할을 해왔다. 
 
롯데마트의 토이저러스는 올 들어 9월까지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8% 신장했다. 특히 토이저러스 본사가 경영난을 겪으며 지난해 미국에서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매각작업을 진행했던 점을 감안하면 국내에서의 성장세는 더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이는 롯데마트가 아동완구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키털트' 대상 카테고리를 강화한 결과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토이저러스를 키덜트족을 겨냥한 '취미중심의 독점 제안매장'으로 콘셉트를 바꿨다. 유아 완구 카테고리를 전략적으로 축소하는 대신 성인들을 겨냥한 피규어나 프라모델, 게임, 드론 등 키덜트 카테고리를 확장했다. 지난해 4월 서울 토이저러스 양평점에 키덜트존을 마련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말에는 롯데몰 은평점 토이저러스 매장 내에 대형 유통업계 최초로 아케이드 게임장인 '놀랜드(NOLAND)'를 오픈했다. 
 
용산 아이파크몰은 지난달 아이파크몰 리빙파크 토이앤하비 500여평 매장에 18개의 브랜드가 들어선 국내 최대 키덜트 편집숍을 오픈했다. '키덜트 종주국' 일본의 대표 키덜트 브랜드들을 대거 들여온 것이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국내 충성고객층이 두터운 '타마시이네이션즈'와 '애니메이트', '닌텐도', '굿스마일 컴퍼니' 등이다. 또 한류 스타를 비롯한 아이돌과 유명인 캐릭터 상품을 취급하는 '위드드라마', 독일 완구 전문 브랜드 '플레이모빌', 드론 전문숍 '헬셀', 이웃집 토토로로 유명한 '도토리숲' 팝업 매장 등이 마련됐다.
 
아이파크몰 관계자는 "용산 아이파크몰은 매니아들에게 '한국의 아키하바라'라고 불릴 정도"라며 "국내에 유일하게 입점한 일본 키덜프 편집숍이 대거 들어왔다"고 말했다. 또 "1인 가구 증가와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키덜트 시장의 전망은 앞으로도 밝다"고 덧붙였다.
 
이마트는 가전에 키덜트를 접목하며 호응을 얻고 있다. 아마트의 체험형 가전매장 일렉트로마트는 대형·소형 가전을 비롯해 애플, 카메라, 블루투스 스피커, 드론, 피규어, RC카, 3D프린터, 서적 등 남성 키덜트족이 열광할 만한 요소를 총 집결한 '남자들의 놀이터'를 표방한 매장이다.
 
특히 이마트가 직접 만들어낸 '일렉트로맨'이라는 익살스러운 캐릭터를 매장 곳곳에 배치해 젊고 역동적인 매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최근엔 일렉트로맨을 활용한 뮤직비디오에 이어 영화까지 제작하며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키덜트족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고가의 상품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 성향 때문에 유통업계에서도 중요한 고객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은 히트상품이 사라지고 침체기지만 어른들이 찾는 고가의 장난감은 소비가 꾸준히 늘며 전체 완구시장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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