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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거리 갈등 “나가라”, “와라”에 흔들리는 석포제련소
대구경북 환경단체는 ‘퇴출’론 거세고 강원 태백시는 유치전 돌입
제련소 조업 정지 시 1200명 일자리 불안
2018-10-21 14:05:03 2018-10-23 14:28:13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경상북도 봉화군에 위치한 영풍 석포제련소 문제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낙동강 상류 유역에 소재했다는 이유로 석포제련소는 최근 5년 동안 강 오염의 주범으로 낙인찍히며 곤욕을 치르고 있다. 낙동강 오염 문제와 4대강 재자연화 문제, 대구 취수원 이전 문제 등을 복합적으로 다루려 하는 시민단체에 의해 영풍은 사실상 ‘사면초가’ 상태다. 지난 2월 수질 오염 물질 배출 사고까지 일어나면서 우리나라 아연 제품 생산 85%를 차지하고 있는 영풍은 환경단체의 주된 공격 대상이 되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영풍 제련소 공장 유치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강원도 태백시 이야기다. 장성광업소가 오는 2022년이면 문을 닫는 상황에서 인구가 4만명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태백시민들은 한때 일부 단체 반대로 좌절되었던 ‘영풍 귀금속 공장’ 유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지난 18일에는 태백시의 황지중고동문회, 농업단체 등이 석포제련소를 방문해 “태백 동점 산업공단 입주를 긍정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했다. 봉화군과 동점산단과의 거리는 차로 불과 10분 거리다. 도는 다르지만 봉화군과 태백시 모두 석포제련소를 중심으로 동일한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쪽에서는 ‘나가라’하고, 다른 쪽에서는 ‘오라’고 하는 매우 기이한 상태에 놓인 것이다.
 
지난 18일 경북 봉화군 영풍 석보제련소를 방문한 황지중고동문회, 농업단체 관계자들이 제련소측에 “태백 동점 산업공단 입주를 긍정적으로 검토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태백시 황지중고 동문회
 
국감 단골 메뉴 영풍 석포제련소
석포제련소는 지난 2014년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화 환경노동위위원회에서 공식 문제제기한 이래 거의 매년 안동댐 오염과 낙동강 상류 오염 건으로 국정감사에 불려다니고 있다. 올해에는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강인 영풍 사장을 증인으로 신청해 채택된 상태다. 강 의원은 보수 정치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과 함께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국장을 참고인으로 부르는 한편, 최열 환경재단 대표를 비롯한 환경운동가들도 국정감사 출석을 요청했다. 강 의원은 지난 18일 대구환경청 감사에서 “필요에 따라서는 영풍 석포제련소의 영업 허가 취소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강 의원이 석포제련소를 공략하며 환경 운동가들의 기조를 받아들이게 된 배경에 대해 “물산업 클러스터 유치, 대구 취수원 이전 문제 등을 공식 거론하면서 자신의 의제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 아니겠느냐”고 추정하고 있다. 한 환노위 위원은 “강 의원의 행동은 일반적인 보수정당 의원들과는 조금 다른 구석이 있다”면서 “영풍 석포제련소는 오는 23일 행정심판을 앞두고 있어 상당히 민감한 의제를 입법부가 건드리는 묘한 상태”라고 언급했다.
 
태백시, 영풍 귀금속 단지 유치 운동 나서
이런 와중에 경북 봉화군 석포면과 가까운 태백시 주민들은 영풍 귀금속 단지 유치 운동에 나서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18일 석포제련소에는 농협, 황지중고 동문회 등 여러 단체 관계자들이 현장을 방문했다. 이들 태백 주민들은 2020년이면 곧 문을 닫아야 하는 장성 광업소 상황을 우려하며 “사실상 지방소멸 국면에 접어든 태백시를 되살리는 방법은 영풍 귀금속 단지 유치 뿐”이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주철수 황지중고 동문회장은 “한때 영풍에서 동점동 귀금속 단지에 입주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나 소수 지역 주민과 일부 환경단체의 반발로 좌절된 상황”이라며 “태백은 제조업이 사라지면 사실상 명맥 유지가 어려운 축소 도시 국면의 지자체”라고 강조했다. 재향군인회, 태백시산악연맹 등 지역 단체 관계자들도 “4만명 이하로 인구가 떨어질 수 있는 태백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풍 귀금속 단지와 같은 제조업 시설 유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때 태백 지역은 ‘개도 1만원 지폐를 물고 다닌다’며 광공업 활성화의 큰 덕을 봤던 도시지만, 1990년대 들어 폐광 수가 점점 늘어나고 석탄 산업이 합리화되면서 그 명맥이 쇠퇴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때 12만명 수준의 에너지 산업 거점은 이제 시 타이틀이 무색해지고 있다.
 
조용환 한국농어촌빅텐트 대표는 “경상북도도 태백시처럼 지방소멸 국면에 놓여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석포제련소 조업정지 건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무작정 생태론으로 문제에 접근하기보다는 지역 일자리, 지방소멸 문제 등으로 복합적으로 방안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윤형 한국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도 “석포제련소가 환경오염 주범이라고 지목받는 부분에 대해서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지만, 지역의 제조업 중심을 갑자기 환경론으로 몰아붙이게 되면 남아날 지역 도시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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