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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민노총 '끝장싸움' 돌입…교섭대표노조 주도권 경쟁 본격화
무주공산 포스코에 '깃발' 꽂을 노조는 누구?…새노조, 검찰 고소로 선명성 부각
2018-10-23 17:59:13 2018-10-23 17:59:17
[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포스코와 민주노총 노조 간 갈등은 검찰이 진상을 가리게 됐다. 검찰 조사를 통해 포스코의 부당노동행위가 드러날 경우, 새로 출범한 최정우 회장 리더십도 타격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포스코의 교섭대표노조를 정하기 위한 양대 노총 간 기싸움도 본격화됐다. 
 
민주노총 포스코지회(새노조)는 23일 서울중앙지검에 최 회장 등 27명의 현직 임원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소했다. 직원들의 새노조 가입을 막기 위해 포스코가 전사적으로 나섰다는 게 새노조 주장이다. 노조 가입과 활동으로 불이익을 줄 경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81조에 따라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는다. 새노조는 이날 포스코의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입증할 자료가 담긴 문건을 다량으로 공개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포스코지회가 2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새노조에 따르면 포스코는 지난달 노조 설립의 윤곽이 드러나자 노사문화그룹의 산하 조직을 보완했다. 포항과 광양제철소의 인원 43명을 부공장장 또는 부리더로 발령을 내고, 현장 노무관리 업무를 맡겼다. 이들은 보안이 강한 텔레그램을 통해 노조와 관련한 업무지시를 받았다고 새노조는 주장했다. 새노조가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이들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면서 새노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켰다. 
 
포스코 노무관리 조직의 오프라인 활동은 과거 무노조 경영방침을 고수했던 삼성, 신세계 등과 유사한 양상을 띈다. 이들은 직원의 성향을 'O(우호그룹)', '△(불만/가입의사)', 'X(가입 의심/확인)'로 분류했다. 포스코는 노조에 관심을 갖거나 가입을 고심하는 직원을 밀착 관리해 일일 동향을 파악하도록 지시했다. 새노조가 입수한 문건은 지난달 14일 열린 '주임단 비상대책회의' 이후 작성됐다. 노무관리조직의 업무를 세분화해 지시하는 내용이다.
 
포스코는 "전체적인 상황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됐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직책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체계적으로 직원 노무케어를 하느냐다"라고 문건을 통해 주문했다. 이어 "주임단위 직원의 성향을 아래(O/△/X)와 같이 파악해 달라"고 지시했다. 토론 주제를 보면 포스코의 노조 대응 방안을 엿볼 수 있다. '성향별 직원 케어방안'에는 관심직원의 일일 동향을 파악하고, 불만직원 설득 방안을 지시하는 내용도 담겼다. 노조 가입 의심자를 대상으로 면담을 한 내용도 문건에 담겼다. 해당 문건에는 "3명 모두 강성이 아닌 것으로 주임 면담 결과 확인됐고, 집중관리해 타 작업자에게 전파되지 않도록 차단하여, 주임·파트장이 밀착 대응해 탈퇴를 권유하도록 진행"이라고 보고됐다. 
 
포스코지회가 지난달 입수한 포스코의 주임단 비상대책회의 문건. 사진/민주노총 포스코지회
 
포스코의 노무관리조직이 직원 간담회에서 특정 노조를 노골적으로 비방한 정황도 나왔다. 일종의 여론전으로 새노조 가입을 망설이도록 부정적 여론을 확산하는 방식이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후반부장 A씨는 지난달 14일 석식 간담회에서 "영국 철강사는 노조 활동 중 고로를 세워 망했다"며 "민주노총 산하에 가입하면 직원은 싫어도 파업에 동참해 고로를 세워야(멈춰야) 하고, 그럼 포스코가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또 기업노조 가입을 노골적으로 독려했다. "민주노총에 가입하면 조합비를 내야 한다. 지금 노조(기업노조)를 더 발달시켜 서로 좋게 가는 방향도 있다"는 게 그의 언급이다. 
 
포스코의 관리자가 노조를 탈퇴하라고 압박한 정황도 나왔다. 광양제철소 서모 파트장은 지난달 14일 직원과의 전화통화에서 "원서(노조 가입신청서)를 냈으면 '분위기에 휩쓸려 했다' 이러면 넘어가준다"며 "혹시나 그런 사람이 있을까봐 면담을 한다"고 말했다. 이에 직원이 "가입을 했으면 불이익을 받는 거냐"고 묻자, 서모 파트장은 "당연하지. 처음 (노조활동)하는 사람은 그만큼 고되서 총알받이"라고 답했다. 
 
이 같은 활동은 온라인에서도 이어졌다. 주로 포스코 직원의 익명게시판(포스코 투데이)과 직원이 참여하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새노조 비방글과 기업노조 가입 권유 글이 올라왔다. 포항제철소의 문모 부리더는 직원에게 기업노조 가입을 권유하는 단체메시지를 보냈다. 해당 메시지에는 "본인이 먼저 가시고 동료들께도 한노(한노총)로 가야 한다. 설득해 주십시오"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 같은 조직적 활동은 향후 임단협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새노조는 지난 19일 포스코에 임단협 교섭을 요청했다. 포스코는 노조법에 따라 교섭 요청을 고시했다. 기업노조인 포스코노조 비상대책위원회(한국노총 소속·이하 비대위)는 24일 회사에 교섭 요청을 넣을 계획이다. 현재 새노조와 비대위는 조합원 수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두 노조는 조합원 수가 각각 1000여명 안팎으로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와 두 노조는 이르면 다음주부터 교섭대표노조를 정하기 위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는다. 조합원 1명이라도 더 늘리기 위한 두 노조의 치열한 '물밑 경쟁'이 예상된다. 
 
현재 포스코에는 매년 임단협을 하는 교섭대표노조가 없는 무주공산 상태다. 현 기업노조는 최근까지 조합원 9명을 유지하면서 간신히 명맥만 유지했다. 과거 포항제철노조는 1988년 설립,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포항제철노조는 1990년 대기업연대회의에 가입, 다른 대기업 노조와 공동전선을 펼치려다 국정원 등 사정당국의 전방위적인 탄압을 받았다. 포스코는 과거 국영기업으로 제철보국(製鐵報國·철을 만들어 나라에 보답한다) 이념이 강했다. 노조 활동이 활발해지면,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정서도 일반적이었다. 과거 정부가 사정당국을 동원해 노조 활동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한 이유다. 노조 간부를 강제로 전보하고, 병역특례 등이 취소되면서 2달 만에 조합원 1만6000명이 탈퇴했다. 노조 간부가 금품을 수수한 사건도 조합원 탈퇴에 영향을 미쳤다. 
 
새노조가 지난달 17일 공식 출범하면서 포스코의 무노조 경영 방침은 기로에 섰다. 새노조는 강성 성향의 민주노총 노조라는 선명성을 내세우고 있다. 이를 토대로 조합원 수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이날 최 회장 등을 검찰에 고소한 것도 회사를 최대한 압박하고 조합원 가입 경쟁에서 한 발 앞서기 위한 정략적 차원이라는 분석이다. 상대적으로 온건 성향인 비대위는 한국노총 소속으로, 기존 노조를 이어 받아 세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가 민노총을 배제하고 한노총을 파트너로 택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비대위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한편 포스코는 새노조가 제기한 부당노동행위와 관련한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회사는 특정 노조를 선호하지 않는다"며 "합법적인 노조 활동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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