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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상엽, 그가 ‘동네사람들’에서 그려낸 ‘악’의 얼굴
2018-11-19 06:00:00 2018-11-19 06: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우선 인터뷰 당시 첫 인사말을 이랬다. “아마 인터뷰 기사는 아주 뒤에 나갈 것 같다라고. 본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 동네사람들속 배우 이상엽은 대중적으로 유명세를 느낄만한 위치는 아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어디선가 봤음직한 그런 인지도 정도를 안고 가고 있다. 그래서 였을까. 그렇게 영화가 고팠단다. 단순하게 유명해지고 싶어서라기보단 연기에 대한 갈증 정도로 보면 될 듯 하다. 본인도 전자의 이유도 분명히 어느 정도는 있지만 후자가 너무도 강렬했다고 웃는다. 그는 동네사람들에서 악역을 연기했다. 수더분하다 못해 서글퍼 보이는 처진 눈매가 인상적인 그의 얼굴에서 악의 기운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더욱 욕심을 냈단다. 기본적으로 배우라면 악역에 대한 갈망은 누구라도 안고 있다. 이상엽은 동네사람들지성역을 손에 꽉 잡았다. 연기 인생 가운데 가장 제대로 잡은 배역처럼 보인다.
 
이상엽. 사진/씨엔코이엔에스
 
동네사람들은 지난 7일 개봉했다. 개봉 며칠을 앞두고 이상엽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우선 그는 이 영화에서 키 포인트이자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배역을 연기했다. 영화 개봉 전 그와의 인터뷰 기사가 나갈 경우 자칫 흥행에 반감될 작용이 우려됐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로 드라마에서 실장님혹은 부잣집 도련님을 도 맡아 해 오던 그였다.
 
하하하. 사실 악역은 몇 작품 했었어요.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도 악역이었고 시그널에서도 악역이었어요. 사실 악역에 대한 갈망보단 연기 자체에 대한 갈증이 더 심했었기에 동네사람들제안 왔을 때 고민 안하고 선택했어요. 최근 예능 프로그램도 출연하면서 저 자신의 힐링을 위해 노력했는데 감독님이 예능 속 제 모습에서 색다른 면을 봐주신 것 같더라고요. 너무 영화가 하고 싶었는데 이런 귀한 기회를 놓칠 수 없었죠.”
 
그가 연기한 지성은 단순한 악역이라고 하기엔 감정적으로 상당히 복잡한 인물이다. 그렇다고 공감이 되는 지점은 없다. 분명히 악이다. 다만 길들여 진 악이란 표현이 더 맞다. 또한 지성을 보고 있으면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가 약자를 대하는 방식이 그랬다. 그 방식은 앞선 길들여진이란 코드에 방점이 찍히게 된다. 이상엽은 지성을 설명하면서 불편함을 첫 번째로 꼽았다.
 
이상엽. 사진/씨엔코이엔에스
 
감독님하고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영화를 위해 자세하게 설명 드릴 수 없지만 관객 분들이 불편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너무도 순진한 사람이지만 어떤 순간에 내제된 스위치가 켜지면서 그 악이 튀어나오는 인물이 지성이라고 생각했죠. 단 선을 그었던 것은 악은 악이어야 한단 거에요. 어떤 이유를 부여하고 싶진 안았어요. 그래서 굉장히 복잡한 인물이었으면 좋겠단 생각도 더했죠. 관객 분들이 그래서 그랬구나란 공감을 하시면 안됐거든요.”
 
그가 첫 번째로 꼽은 불편함과 함께 두 번째인 복잡함은 더욱 어려웠다. 극중 지성은 어린 시절부터 학대를 받아온 인물이다. 사실상 피해자인 셈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지성의 표정을 그려내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단다. 상대방이 지성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관객 역시 그러길 바랐다.
 
잘생긴 학교 선생님이잖아요. 인기 많은 여고의 미술 선생님(웃음). 하지만 눈빛은 뭔가 음습하고 속을 알 수 없는. 그 속에는 어린 시절부터 당해 온 학대로 인해 비뚤어진 인성이 자리하고 있고. 이걸 어떻게 한 사람 안에 포함시킬까 고민을 많이 해봤죠. 나쁜 짓을 할 때 더 악랄하게 하고 표정도 무섭게 하면 그게 안 보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반대로 순수한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상대를 쳐다보기도 하고 광기의 분노도 적당히 선을 지켰어요. 제 속에 어떤 버튼 하나를 만들어 봤었죠. 그걸 수시로 켜고 끄고를 반복했어요.”
 
이상엽. 사진/씨엔코이엔에스
 
배우들은 악역을 연기하면서 어떤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대리 만족일 수도 있다. 평소에 절대 할 수 없는 행위를 연기를 통해 느끼고 풀어내니 스트레스도 풀린다고. 물론 그 기운을 끌고 가다 보면 배역에 매몰돼 감정적으로 상당히 힘든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상엽은 철저하게 후자 쪽이란다. ‘동네사람들이전에도 맡았던 악역으로 인해 상당히 고생을 많이 했었다고.
 
제가 아직 내공이 너무 부족하죠. 심하게(웃음). 아직도 지성의 기운이 남아서 절 괴롭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전 우선 악역을 맡으면 인터넷에서 범죄자의 사진을 다운 받아서 그걸 계속 봐요. 그러면서 배역을 만들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 정신세계에 적신호가 오는 걸 실제로 느꼈어요. 너무 힘들더라고요. 이번에는 당신이 잠든 사이의 악역을 연기한 이후 곧바로 연기를 해서 더 힘들었어요. 그래서 예능을 최근 출연하면서 절 환기시키고 힐링시키려 노력 중이에요.”
 
이번 동네사람들을 찍으면서 악역 지성을 연기하는 동안 한 번도 편한 적은 없었단다. 아쉬운 점도 정말 많았단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다시 보면 후회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는 데 이번에도 그랬다고. 그렇게 찍고 싶던 영화였고 그래서 소중한 기회를 잡았지만 막상 촬영이 끝나고 나면 그렇게 후회가 되는 게 또 연기라며 아쉬워한다. 그 모습에서 영락 없는 배우로서의 기질이 뿜어져 나왔다.
 
이상엽. 사진/씨엔코이엔에스
 
“‘동네사람들보면 학생에게 음료수를 건네 받고 손에 묻은 물을 닦는 장면이 나와요. 그걸 찍는 데 21번이나 테이크가 갔어요(웃음). 진짜 별거 아닌데 감독님이 계속 다시를 외치시더라고요. 나중에는 저도 짜증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그 모습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나온거에요. (웃음). 나중에 깨달은 게 아마도 감독님이 절 실제로 짜증나게 하려고 그러셨던 것 같아요. 지금도 아쉬운 게 그 장면이 기억에 너무 남아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는 동네사람들을 보면서 몇 가지 팁을 공개하기도 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지성의 공간을 유심히 봐달란다.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지성의 감정 그리고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소름 끼치는 순간을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자신의 핸드폰 속 사진 한 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공개한 사진은 괴기스런 느낌의 이상엽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영화에서 지성의 집 비밀의 공간을 막고 있던 큰 액자를 보셨을 거에요. 그 액자가 사실 이 사진이에요. 이게 여러 장의 제 모습을 모자이크 형식으로 꾸며서 제 얼굴을 만든 거에요. 이걸 보는 데 너무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이걸 보고 있으니 지성이 느끼고 또 어떤 생각을 할지 더 감이 잘 오기도 했어요. 현장에서도 스태프 분들 모두 이 사진 되게 싫어하셨어요. 하하하. 괴기스럽다고(웃음)”
 
그는 마동석과 함께 한 동네사람들그리고 희대의 악역으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소중함을 분명히 알고 있는 듯 했다. 다시 없을 기회이며 또 언제 올지 모를 기회이기에 꼭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단다. 물론 그가 시시때때로 객석에 앉아 동료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의 시사회를 보며 느꼈던 갈망과 갈증은 언제까지라도 끌고 갈 생각이란다. 자신을 유지시켜 줄 동력으로.
 
이상엽. 사진/씨엔코이앤에스
 
동석이형과의 작업을 통해 정말 많은 걸 느꼈어요. 형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와 동료를 배려하는 지점 그리고 배역을 바라보는 자세 등. 여기에 동네사람들지성을 통해 제가 모르고 지나쳤을 배우적 감정과 생각도 다시 한 번 하게 됐고요. 앞으로도 마찬가지에요. 이상엽이란 이름이 보이지 않는 그저 작품 속 배역으로만 기억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유명? 많이 알려지면 좋겠죠. 하지만 제겐 연기가 최우선이에요. 그게 첫 번째 입니다.”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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