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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CEO이지만 개인 사무실 없어…직원과 비전 공유"
비행기 2대로 시작해 아시아 최대 LCC로…저비용항공사 아닌 '여행기술기업' 지향
"단순한 항공사가 아니라 빅데이터 기반의 기술회사로 발돋움시킬 것"
2018-12-19 07:00:00 2018-12-19 07:00:00
[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그룹 CEO는 지난 14일 자서전 <플라잉 하이(Flying High>의 한국어판 출간기념회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에어아시아의 성공은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고 새 가치와 사업모델을 만드는 '파괴적 경영', 자유롭고 토론을 중시하는 기업문화, 직원들의 활발한 의사소통 노력이 어우러진 결과라는 평가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것일까. 에어아시아그룹 본사의 한쪽 벽에는 이런 문구가 크게 적혔다. '최선을 다할 것, 그리고 겸손할 것(Work Hard, Stay Humble)'.
 
"모든 말레이시아 사람이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토니 페르난데스 CEO(사진)는 1964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태어났다. 10대 때부터 영국으로 조기 유학, 그곳에서 대학까지 마쳤다. 회계사로 사회생활을 시작, 2001년까지 워너뮤직 동남아시아 부사장을 지냈다. 워너뮤직 일에 흥미를 잃은 그는 그해 항공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적자였던 에어아시아를 단 1링깃(약 270.63원)에 인수했다. 부채는 약 120억원, 직원 수는 200여명, 항공기는 단 2대였다.
 
인수 이후 페르난데스 CEO가 가장 골몰한 것은 비용이었다. 부채를 낮추고 손익구조를 맞추려면 비용을 줄여야 했다. 그는 "사업 초기 6개월에 걸쳐 항공기를 개조해 비즈니스석을 다 없애고 그 자리에 일반석 20여석을 더 확충했다"며 "'비용이 왕이다'는 강령으로 직원들을 설득,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온갖 아이디어를 짜냈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에 초저가 항공사를 표방했다. 당시 말레이시아 전체 인구 중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사람은 10~15% 정도에 불과했다. 그는 에어아시아를 인수하며 "말레이시아의 모든 사람이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페르난데스 CEO는 "그때 말레이시아 서부 수방공항에서 동부 코타니카발루로 가는 항공권이 보통 400링깃이었는데 우리는 149.99링깃을 제시했다"며 "이런 사업모델 자체가 큰 파문을 일으켰고 나라가 들썩였다"고 밝혔다.
 
에어아시아는 수익은 물론 소비자 편익을 극대화하는 경영으로 호응을 얻었다. 동남아시아에서 2002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4년 조류인플루엔자가 유행하자 항공사들은 기내 감염을 막고자 운항을 줄였다. 반면 에어아시아는 공격적 마케팅을 진행, 어떤 일이 있어도 영업을 지속한다고 알렸다. 페르난데스 CEO는 "말하자면 우리는 로빈 후드 같은 역할이었다"며 "승객 편임을 강조하고 그들이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기 위해 무엇이든 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15일 태국 방콩에서 에어아시아 탑승객 5억명 돌파 축하 행사가 열렸다.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그룹 CEO(사진 왼쪽 세번째)가 5억번째 승객에 축하를 건네고 있다. 사진/뉴시스
 
임직원 모두 소통·토론…비밀 없애고 개방 지향하는 기업문화
 
단 2대의 비행기에서 출발한 에어아시아는 2018년 현재 9개 항공사를 계열사로 둔 그룹으로 성장했다. 직원 수는 200명에서 2만명까지 늘어났다. 글로벌 항공시장은 2000년대 이후 급성장했다. 에어아시아는 그에 따른 항공기업의 성장세를 잘 보여준다. 에어아시아는 단거리 노선 운항에서 탈피해 중장거리 노선도 공략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점은 회사 직원이 2만명을 넘었지만 아직까지 노동조합이 없다는 것이다. 노조를 탄압한 게 아니다. 임직원들이 자유롭게 소통·토론하다 보니 굳이 노조를 만들어 단체행동에 나설 동기를 가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페르난데스 CEO는 말레이시아 본사에는 자기 사무실도 없다. 대신 근무시간의 반 이상을 사내에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는 "한국 기업이 윗사람에 무게를 둔 데 반해 에어아시아그룹은 본인이 빛날 수 있는 문화"라며 "심지어 본사의 회의실은 모두 투명유리로 만들어 모든 것을 개방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임원들은 누구나 개방정책을 편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들의 방문은 항상 닫혔다"며 "사무실은 불만과 정치가 생기는 근원이고 의사소통의 장벽을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사옥을 만들면서 문을 모두 없앴다"고 강조했다.

또한 "많은 회사가 외부 브랜드 구축에 주력하지만 직원이 회사와 사명·전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면서 "직원도 이해 못 하는 회사의 비전을 외부인에게 이해시키려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이어 "직원들이 정말 회사의 비전을 이해한다면 그들은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고 보증서"라고 부연했다.
 
페르난데스 CEO의 이런 경영철학은 자연스레 갑질로 얼룩진 한국 기업문화에 일침을 가한다. 그는 "(땅콩회항과 물컵갑질 등)대한항공의 여러 일을 들어보니 굉장히 낯설고 놀랐다"면서 "에어아시아가 한국에 진출한다면 새로운 기업문화를 소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목숨을 걸고 말하건대, 저는 자식들에게 절대 일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고 그럴 생각조차 없다"며 "그들은 에어아시아에서 일한 어떠한 경험도 없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일이 있으므로 절대 여기서 일을 안 하리라는 확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에어아시아 항공기. 사진/에어아시아
 
기술과 빅데이터가 만든 새로운 문화…사업모델 무궁무진
 
현재 글로벌시장에서 항공사업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페르난데스 CEO 역시 새로운 사업모델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저는 어디 가서 에어아시아가 항공사가 아닌 여행기술(Travel Technology) 기업이라고 소개한다"는 그는 "미래에는 에어아시아를 '단순한' 항공사가 아니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기술회사로 발돋움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모바일 결제와 빅데이터, 온라인 여행서비스, 인터넷쇼핑 등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 중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에어아시아가 다른 사업을 이끄는 데이터 플랫폼이 되길 바란다"며 "튠 그룹(전자상거래와 호텔, 기내식, 화물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페르난데스 CEO가 최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관련 회사를 모두 에어아시아에 병합, 기업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정리하는 한편 튠 프로텍트는 대형 디지털보험 회사로 변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페르난데스 CEO의 지향점은 17년간 누적된 고객 정보 등을 바탕으로 한 라이프스타일 혁신이다. 그는 "데이터는 새 시대의 석유"라며 "데이터를 잘 활용하면 여러 연계사업을 할 수 있고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도 진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경영을 하면서 배운 내 경영철학이 있다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전에 없던 사업모델을 창조할 수 있도록 파괴적이어야 한다 ▲적합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14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그룹 CEO의 자서전 출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사진/에어아시아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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