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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밤마실’ 갑시다, 어쨌든 삶은 계속될 테니①
서로의 차이가 소리 풍성함으로…‘언니네’와 ‘못’의 잔향 섞인 나이트오프
2018-12-21 18:00:00 2018-12-21 18: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인디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저 잠시 음악 좀 틀어도 될까요?”
 
지난 13일 오후 CJ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CJ 아지트’ 스튜디오 한 켠. 인터뷰가 중반을 향해갈 무렵, 기타리스트 이능룡이 한 가지 깜짝 제안을 해왔다. 
 
“이 곳, 생각보다 제 목소리가 너무 정확하게 들리네요. 항상 드럼 소리를 듣던 곳이라 이렇게 조용했던 적이 없었거든요. 낯설어서 그런지 말이 잘 안 나오네요.”
 
옆에서 듣고 있던 이이언이 거들었다. “여기서 늘 드럼 녹음을 했거든요. 제대로 (녹음)할 수 있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스튜디오에요. 한 곡 들으면서 할까요?”
 
거대한 콘솔과 양 날개에 설치된 ‘암피온’ 스피커. 간단한 조작을 거치니 정교하고 날카로운 사운드가 ‘두둥’거리며 홀의 바닥까지 진동시켰다. 소리의 공명을 느끼던 찰나, 둘이 함께 한 밴드 ‘나이트오프(Nightoff)’의 첫 녹음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능룡)이 스튜디오는 저희가 첫 녹음을 시작한 곳이에요. 음향 장비 말고도 여기 계신 엔지니어분들도 모두 뛰어나신 분들이에요. 도움을 많이 받았죠.”
 
“(이언)그렇네요, 첫 녹음이 이뤄진 곳. 올해 3월부터 여기서 시작했어요. 드럼 파트만 6곡을 몰아서 한 번에 진행했었고, 그때부터 다른 세션 녹음도 차차 진행됐었죠.”
 
밴드 못의 이이언(왼쪽)과 밴드 언니네이발관의 이능룡. 이 둘은 올해 밴드 '나이트오프'로 활동을 했다. 밴드명은 일을 쉬는 밤이란 뜻. 한국말로 '밤마실'에 가깝다. 사진/PRM
 
곡의 얼개는 대략 첫 녹음을 뜨려는 시점쯤 완성됐다. 작업에 돌입한지 약 9~10개월 만. ‘언니네이발관(이능룡)’과 ‘못(이이언)’으로 각각 활동할 무렵, 최장 9년이나 걸리던 작업기간을 생각하면 본인들도 의아한 일이다. 
 
단축된 작업기간을 곰곰이 생각하던 둘은 ‘나이트오프’ 자체를 비결로 들었다.
 
“(이언)처음 만났을 때 둘 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처럼 하지 말자고 목표를 정했어요. 너무 애쓰면서 (음악)하지 말자, 하는 생각이었어요.”
 
“(능룡)내 몫을 덜어서 이언 형에게 주고, 또 반대로 형은 형의 몫을 제게 주고. 상대방 작업이 영 아니다 싶으면 그때부터 미궁에 빠지기 마련인데,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서로 포용이 가능했기에 시간이 많이 단축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12년 술자리에서 만난 둘은 프로젝트 유닛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냈다. 당시 각자의 밴드 활동이 있었기에 구체적인 그림으로까지 이어지진 못했지만, 둘에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언)패션디자이너 지일근씨의 도움으로 만나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를 처음 꺼냈어요. 서로 ‘재밌겠는데? 해보자!’란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물론 서로 밴드 활동 때문에 계속해서 미뤄지긴 했지만. 서로 항상 각자 앨범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꾸준히 얘기는 나눴어요.”
 
“(능룡)그러다 못 앨범이 나오고 언니네이발관은 활동을 중단하고, 시기가 맞물려 시작이 됐죠.”
 
밴드 못의 이이언(왼쪽)과 밴드 언니네이발관의 이능룡이 함께 한 밴드 '나이트오프'. 사진/PRM
 
인디씬에서 시작해 성장한 두 뮤지션은 각각 ‘못’과 ‘언니네이발관’으로 한국 대중음악에 한 획을 그어왔다. 
 
이언이 주축이 되는 ‘못’은 1집 ‘비선형’으로 2004년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 2007년 2집 '이상한 계절'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앨범상 등을 수상하면서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언니네이발관’ 역시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로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의 최우수 모던록 음반상 등 3관왕을 달성했다. 서정적이고 어떻게 보면 청승맞기까지 한 앨범 사운드 중심엔 늘 반짝이는 이능룡의 기타가 자리하고 있었다.
 
두 밴드는 음악의 가사나 사운드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공통성을 획득한다. 장조보다 단조가 많이 활용되는 음울한 사운드, 세상의 좌절과 절망을 오롯이 마주하는 가사들이 그렇다. 하지만 상대적인 척도를 들어 더 꼼꼼하게 비교를 하다 보면 차이점도 적지 않다.
 
“(이언)글쎄요. 못이 블랙이었다면 언니네이발관은 흑갈색 정도가 아닐까. ’언니네’도 진지한 밴드지만 못만큼 심각하진 않았으니까. 저로서는 항상 진지하고 심각한 것만 해왔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조금 캐주얼한 느낌의 음악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능룡)못으로 했던 작업을 보면 정교하고 건축적이잖아요. 반면 ‘언니네’는 감정적 ‘진함’이 주된 음악적 가치였죠.”
 
밴드 못의 이이언(왼쪽)과 밴드 언니네이발관의 이능룡이 함께 한 밴드 '나이트오프'. 사진/PRM
 
지난달 30일 나이트오프란 이름으로 나온 새 EP ‘마지막 밤’은 그런 차이와 공통의 적절한 융합이자 교배다. 지난 6월 ‘리뷰’와 ‘오늘의 날씨는 실패다’를 시작으로 꾸준히 낸 싱글과 신곡 2곡을 엮었다. ‘언니네’와 ‘못’의 뒤범벅된 잔향, 음악적 진중함이 오롯이 느껴지는 결과물이다.
 
“(능룡)처음 ‘나이트오프’를 할 땐 내가 끼어들 자리가 없을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또 막상 시작하고 나니 놀랐어요. 서로 대단한 유연성이 있었던 것 같아요. 비유를 들자면 물렁물렁한 물체를 주물주물 해서 맞춰갔던 작업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언)처음엔 능룡이가 적당히 산뜻한 기운을 가져다 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못’에 써도 될 것 같은 곡을 들고 오더라고요. 마지막 곡 ‘해프닝’ 스케치는 능룡이가 했는데, 그동안 ‘언니네’에서 시도하지 못한 게 많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서로의 차이가 보이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걸 좋은 방향으로 가져 가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런 차이가 우리 음악의 풍성함을 만들 것 같았거든요. 혼자 했으면 절대 나오지 않았을 색깔이에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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