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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말모이’ 유해진, 더는 보여 줄게 없다지만
일제 강점기 배경 조선어학회 사건 모티브 스토리
“일자무식 까막눈 글 배워 세상 보는 과정 호기심”
2019-01-07 00:00:00 2019-01-07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1999년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이 극장가를 강타했다. 독특한 형식과 구성 그리고 도발적인 제목에 현실 풍자 캐릭터와 스토리 균형이 절묘했다. 사실 이 영화가 흥행하면서 충무로에선 유독 눈에 띄던 한 사람을 주목했었다. 영화 속 양아치역으로 등장한 배우다. 당시 충무로에선 연출을 맡은 김상진 감독이 실제 양아치를 섭외했단 루머까지 돌았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유해진이다.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비주얼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영화에서 거친 배역을 도 맡아 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모습에선 인간미가 진하게 베어 나왔다. 딱히 언제부터라고 짚어 말할 수는 없다. 사실 그게 언제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걸 조금만 짚어 생각해 보면 이렇게 읽을 수 있다. ‘유해진의 인간미는 그래서 공감을 할 수 있다라고. 공감은 그런 것이다. 무언가 딱 짚어서 말하는 것이 아닌. 흡사 유해진의 연기처럼. 그래서 영화 말모이속 유해진을 보면 인간미와 공감 그리고 나도 모르는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맺히고 만다.
 
배우 유해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2018년의 마지막을 며칠 앞두고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유해진을 만났다. 중절모와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이젠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고, 여러 예능프로그램에서도 공개됐던 점이다. 다소 험상 굳은 인상과 달리 유해진은 정말 낯을 많이 가린다. 부끄러움도 많이 탄다.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만나왔지만 자신의 곁을 잘 내어 주지 않는 듯 그는 언제나 거리감을 유지한다. 그건 작품을 통해서도 연기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배역에 흠뻑 빠지기 보단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그 인물을 바라보는 점이다.
 
하하하. 제가 그런가요(웃음) 뭐 생긴 게 그렇게 활달하고 유쾌한 성격은 아니에요. 그래서 그렇게 느껴지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이런 성격이 작품이나 배역을 연기하는 데 뭐 도움도 되는 것 같아요. 조금은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도 있어요. 이번 말모이속 제가 연기한 판수도 다른 지점을 본 건 없어요. 그저 일자무식의 까막눈이 글을 깨우치며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되는 과정이 흥미롭고 재미있어 보였죠.”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실화가 모티브인 말모이. 암울했던 시기의 얘기에 어떤 사명감이라기 보단 우선 흥미와 재미를 느꼈단다. 물론 좋은 시나리오와 좋은 얘기가 배우로서의 본능을 자극한 것이 첫 번째란다. 그렇게 보면 한 발 떨어져서 보는 시각보단 자신을 추켜 세우는 주변의 말에 손사래를 치는 그의 태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배우 유해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아이고 뭐 배우가 연기 하는 데 무슨 사명감(웃음). 그렇다고 사명감이 전혀 없이 이번 영화를 했다고 해도 좀 그렇잖아요 하하하. 좋은 시나리오였죠. 좋은 얘기이고. ‘택시운전사시나리오를 쓴 엄유나 감독이 절 생각하며 말모이판수를 만들었다고 하니 기분 좋죠. 내용도 너무 교육적이지만 의미는 충분히 있다고 봤죠. 그리고 택시운전사작가 출신인 엄유나 감독이나 최영완 촬영 감독이 타짜’ ‘전우치를 함께 해서 선택의 고민을 줄일 수도 있었죠.”
 
엄 감독은 판수를 배우 유해진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공개한 바 있다. 그 점은 유해진도 고마워했다. 하지만 배우들은 매 작품마다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를 당연히 갖고 있다. 이전 작품과 달리 말모이판수는 기존 유해진의 이미지가 알게 모르게 덧칠해져 있을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유해진으로선 판수를 연기하면서 더욱 부담감을 느꼈을 법도 하다. 물론 유해진은 아니다라며 손사래다.
 
아휴 뭐 제가 더 보여 줄게 있나요(웃음). 제가 무슨 카멜레온도 아니고 하하하. 이번에도 별다른 건 없었어요. 그저 전체 스토리에 거북스럽지 않게 녹아 들어야겠단 생각뿐이었죠. 사실 전 굉장히 식상한 배우잖아요(웃음). 다들 제가 어떻게 연기하실지 알고 계시잖아요. 하하하.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것보단 전체의 스토리가 더 재미있단 걸 도드라져 보이게 만들 연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배우 유해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렇게 전체에 녹아 들어간 유해진의 판수는 일제 강점기 그 시절이라면 당연히 있었을 법한 평범한 인물이다. 어디에서나 봤을 법한 그런 평범한 아버지다. 유해진은 자신을 모델로 만들었단 판수를 만들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하기 보단 기억을 되새김질 했단다. 어릴 적 자신이 분명히 봐왔던 이름 모를 아저씨들을 떠올렸다고. 그는 그런 분들 있지 않나라며 무릎을 탁 쳤다.
 
그런 분들 진짜 많았잖아요(웃음). 저희 고모님댁이 아우내 장터 근처였어요. 시장에 가면 되게 많이 봤어요. 연필심에 침 묻혀서 꾹꾹 눌러 쓰는 데 정말 글씨 못쓰시는 하하하. 그런 분도 있으셨어요. 고모님댁 이웃에 어떤 아저씨가 계셨는데,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욕을 입에 달고 사세요. 침도 아무데다 퉤퉤 뱉고. 근데 그게 뭐랄까 무섭다기 보단 되게 궁금했죠. 왜 그러지? 근데 묘하게 판수이미지가 떠오르더라고요. , 영화에서 판수가 막 욕하고 그러진 않아요. 하하하.”
 
맡은 배역마다 인간미 넘치는 공감을 만들어 내는 유해진의 능력은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상대 배역과의 케미를 통해 더욱 강력해진다. 매 작품마다 유해진은 그걸 증명해 냈다. 아니 상대역이 유해진의 그런 점을 항상 뒷받침해 줬다. 유해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스스로 좋은 상대 배우를 많이 만나왔다고 말한다. 배우로선 참 괜찮은 복이다.
 
배우 유해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너무 좋은 배우들과 항상 함께 해왔죠. 계상이하고는 소수의견이후 두 번째인데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정말 대단한 친구에요. 가수를 하다가 배우로 전향했잖아요. 만약에 내가 그랬다면 계상이 만큼 할 수 있을까? 정말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은 배우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잖아요.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만 해도 힘들어요. 이번 말모이에서도 전 감정을 드러내지만 계상이는 숨기는 역이었잖아요. ‘소수의견때보다 거 감정이 깊어졌어요.”
 
말모이를 보면 가장 눈에 띄는 배우가 있다. 바로 유해진의 딸로 나오는 아역 배우 박예나이다. 이번 영화를 통해 데뷔한 박예나는 현장에서 모두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단다. 영화를 본 관객들도 박예나의 귀여움은 절대 잊지 못할 정도로 깜찍한 연기를 선보인다. 박예나에 대한 언급에 유해진은 금새 아빠 미소를 지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너무 예쁘죠. 요 녀석이 정말 대단해요. 현장에선 우리끼리 예나를 보고 할머니라고 했어요 하하하. 또래 녀석들하고는 정말 많이 달라요. 대단해요. 리허설도 안 해요. 하하하. ‘우리 한 번만 맞춰보자 응그러며 부탁을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도 안 해요. 하하하. 아이고 진짜 생각만 해도 귀여줘 죽을 거 같아요. 그런데도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해요. 아들도 나온 ()현도도 그렇게 착해요. 두 녀석 모두 정말 배우로서 대성할 거 같아요.”
 
배우 유해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말모이를 완성한 유해진의 다음 작품은 전투. 덥수룩하게 자랐지만 묘한 느낌의 수염이 인상적이다. 그는 쑥스러운 듯 수염이 이상하게 이렇게만 난다고 웃는다. ‘말모이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지켜야 하는 사람들의 얘기였다면, ‘전투역시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나라를 지키려 노력한 사람들의 또 다른 얘기다. 물론 이번에는 제목처럼 스케일이 좀 다르다.
 
원신연 감독 작품이에요. 아시잖아요. 액션이 정말 대단해요. 교과서에도 나온 봉오동 전투가 배경인데 정말 기대하셔도 될 만한 영화에요. 거의 마지막 부분을 찍고 있는데 느낌이 좋아요. ‘말모이에 대한 평가도 좋고 전투도 느낌이 좋고. 2018년 마지막부터 내년까지는 두 작품으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듯 하네요(웃음)”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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