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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놓쳐버린 인생의 순간들…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2019-01-04 18:21:14 2019-01-04 18:21:14
[뉴스토마토 정초원 기자] "그의 인생이 방향을 비튼 그 순간/놓쳐버린 이야기/할 말이 없어/막혀있어/난 찾아야만 해 앨빈/여기에 혼자 서있는 이유/난 찾아야만 해"(토마스)
 
서로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관계라고 해서 그들이 언제까지나 같은 보폭으로 인생길을 걷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더 큰 세상을 꿈꾸며 대도시로 떠난 '토마스'와 고향에 남게 된 '앨빈'의 이야기,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가 그렇듯이. 이 작품은 성공한 소설가 토마스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친구 앨빈을 기리는 송덕문을 작성하면서 시작된다.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수천장의 원고를 집필해온 토마스지만, 친구의 인생을 정리하는 짧은 송덕문을 쓰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이처럼 막막한 토마스를 도와주기 위해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죽은 앨빈이다. 
 
사진/오디컴퍼니
 
토마스와 앨빈은 시간 여행을 하듯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송덕문에 들어갈 에피소드를 찾아 나선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두 사람이 마을과 학교를 누비며 추억을 공유하는 장면들이 아기자기하게 연출된다. 하지만 같은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인생길이 크게 갈리고, 달라진 삶의 속도 탓에 둘의 관계도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토마스가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야만 하는 어른의 길을 택했다면, 앨빈은 작은 책방을 돌보며 느리게 걷는 길을 택한다. 시간이 갈수록 두 사람의 거리는 필연적으로 벌어지기만 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앨빈이 남긴 삶의 발자취마다 토마스의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이 숨은 보물처럼 포진해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난다. 한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큰 목표와 성취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지나간 추억이 그런 일을 해낸다. 토마스는 떠난 친구의 송덕문을 쓰는 과정에서 그동안 시선을 두지 않았던 과거의 스토리 속에 어떤 소중한 것들이 숨어 있었는지 뒤늦게 깨우친다. 
 
"흘러간 틈새에/놓친 순간 속에/커다란 비밀이 있는 게 아냐/네 몫이야/내 삶의 이야긴 다 네 것/둘러 봐 톰 네꺼야"(앨빈)
 
사진/오디컴퍼니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두 친구의 우정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창작'을 소재로 삼은 극이기도 하다. 극중 토마스가 작가로서의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한 작품 '나비'는 동명의 넘버를 통해 무대에서 공연되는데, 동화적인 스토리와 아름다운 가삿말이 특징인 곡이다. 짧은 가사 안에서도 기승전결을 갖춘 데다 곱씹기 좋은 표현들이 많아 초연 당시부터 뮤지컬팬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은 넘버다.
 
아울러 작품 특유의 동화적인 요소는 무대와 연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무대는 관객들의 착시효과를 노린 듯 독특한 서재 형태로 꾸며져 있는데, 두 배우가 스토리를 찾기 위해 수백권의 책과 종이 사이를 헤집는 모습과 썩 어울리는 공간이다. 바닥에 널린 종이를 뭉쳐 눈싸움을 하거나, 하얀 종잇조각이 눈처럼 떨어지는 장면은 극의 백미다. 100분이라는 긴 시간을 긴 호흡으로 이끌어 간 강필석(토마스 역)과 정동화(앨빈 역)의 에너지 또한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강필석과 정동화는 유년 시절과 성인 시절을 오가며 큰 무대를 꽉 채우는데, 관객들이 극이 지루할 틈을 느끼지 못한 것은 단연 두 사람의 연기 호흡 덕이다.
 
사진/오디컴퍼니
 
한편, 2006년 캐나다에서 처음 공연된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브라이언 힐과 넬 바트램이 각각 극본과 음악을 맡았다. 2009년 3월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이후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에서 작품상, 극본상, 작곡상, 작사상 등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한국에서는 2010년 7월 일반 관객들에 첫 선을 보였으며, 이번 공연이 다섯 번째 시즌이다. 
 
이번 시즌에는 토마스 역에 강필석, 송원근, 조성윤이 캐스팅됐으며, 앨빈 역에 정동화, 이창용, 정원영이 낙점됐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다음달 17일까지 백암아트홀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정초원 기자 chowon61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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