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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가정폭력 가해자도 무료 대리? 법률구조공단의 '이상한 법률구조'
이혼소송 진행 중 가해자 뒤바뀌어…소송구조 대상 검증 시스템 '구멍'
2019-01-14 06:00:00 2019-01-14 06:00:00
[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국민 세금으로 예산을 지원받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이 가정파괴 책임이 있는 가정폭력 ‘가해자’들의 이혼 소송을 무료로 대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공단 내부로부터 제기됐다.    
 
13일 공단 내 사건을 수임해 법률구조를 진행하는 복수의 공익법무관들은 "원고 측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인 정황들이 법정에서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고 폭로했다. 공단 내부에서 소송구조 대상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해자로 고소당한 남편 '무혐의'
 
공단에서 근무 중인 A법무관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고소한 B씨는 같은 해 8월 공단 구조지원을 받아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오히려 남편이 가정폭력 피해자라고 읍소했다. 그는 “중병을 앓아 경제적 능력이 없게 되자 아내가 나를 내쫓으려고 이혼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며 “오히려 폭언에 시달린 사람은 나”라고 주장했다. 공단이 B씨를 법률구조 대상으로 결정한 주요 근거는 남편을 폭행혐의로 고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조사를 마친 경찰은 증거 등이 불충분하다고 판단해 무혐의 처분했다.
 
공단에 소속 된 C법무관 비슷한 사건을 겪었다. 3살짜리 아이가 있는 D씨는 지난해 10월 아내로부터 이혼소송을 당했다. '잦은 부부싸움과 부부싸움 시 폭언, 물건을 던지는 등 가정폭력행위' 등이 사유였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었다. 아내는 결혼 전에 사귀던 연인과 결혼 후에도 관계를 유지했는데, 이를 D씨에게 들키자 이혼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유령단체' 확인서 제출해도 '구조 대상'
 
공단이 D씨 아내의 이혼소송 대리를 결정한 것은 D씨 아내가 제출한 ‘피해자사실 상담확인서’가 근거였다. 하지만 D씨 아내에게 확인서를 발부해 준 사설단체는 인터넷 홈페이지조차 없는 정체불명의 단체였다. D씨 아내는 하나밖에 없는 아이의 친권자 및 양육자로 남편을 지정해달라고 까지 법원에 요청했다. 
 
공단은 가정폭력 사건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 이혼소송 및 위자료·양육비청구소송 등도 무료 대리하고 있다. 소송구조 대상은 중위소득 125%인 도시영세민으로, 가정폭력 피해자 구비서류 요건인 사건사고사실확인원, 가정폭력피해상담사실확인원 중 한 가지만 충족돼도 상담을 통해 접수 및 구조결정이 이뤄진다.  
 
"정작 도움 필요한 피해자들 기회 빼앗겨"
 
A법무관은 “소송을 맡다 보니 피고 측에서도 ‘나도 가정폭력 피해자다, 쌍방 다툼이었다’는 주장이 많아, 법률구조공단이 피해자라고 판단한 원고가 법정에선 가해자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며 “무죄추정의 원칙을 별론으로 하더라도 일방 주장만 가지고 먼저 공단을 찾아 무료 법률 대리를 선점하는 것으로, 정말 도움이 필요한 피해자들의 기회를 빼앗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단의 구조사업 시스템 전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법무관도 “공단 특성상 빠른 소송구조를 위해서는 피해자 심사 요건 완화가 필요한 건 맞다”면서도 “공단이 사법기관도 아닌데 피해자라고 단정하고 무료로 구조하면 ‘법을 몰라 보호받지 못하는 국민들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한다는 설립취지가 무색해진다”고 설명했다. 
 
변호사들도 공단의 구조사업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로 활동한 서혜진 변호사는 “의뢰단계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고, 수사나 재판으로 결정돼야 할 일”이라면서도 “구조대상이 적절하게 선정됐는지에 대한 문제는 이혼소송뿐 아니라 공단 내 전체 소송구조지원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구조사업 시스템 전면 재검토 필요"
 
전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인 이율 변호사는 “공단의 무분별한 구조를 역으로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공단은 이미 비대화된 조직이고, 이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건을 수임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취약계층이라는 조건 이외엔 구조대상 여부를 제대로 거르지 못하고 있다”며 “공단 구조사업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단 구조사업의 시스템상 문제는 전에도 지적된 바 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 2017년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공단은 농협으로부터 1~2년마다 13억원씩의 출연금을 받아 왔으며 이를 통해 받은 출연금의 누계는 2015년까지 198억원에 달했다. 그 대가로 구조공단이 농협 회원들에게 무료로 소송구조를 한 실적은 2015년까지 구조인원 11만 2580명, 구조금액 1조 3696억원(2015년 10월말 기준)이다. 여기에는 민사 뿐만 아니라 형사사건도 포함됐다(뉴스토마토 2017년 12월14일자 <서민 구한다는 법률구조공단, 출연금 받고 '있는 자'들 대리> 기사 참조). 
 
대한변협 이사인 김진우 변호사는 “공단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을 조력하고자 설립됐다고 표방하지만, 예전에 특정 조합 및 단체들과 협약을 체결하면서 이들의 전담로펌 역할을 했다는 사례도 있었다”며 “정작 정보가 없는 약자들은 쌍방대리 금지 원칙 때문에 오히려 공단을 이용하지 못하고 소송구조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공단 "소수 결점으로 피해구조 지연 안돼"
 
공단 측은 그러나 이에 반박했다. 공단 관계자는 “가정폭력 피해에 대해 진단서나 고소장으로 상세하게 피해 사실을 파악하며, 승소를 위해 진술서와 증거도 다 받아 모순된 진술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면서 “불기소의 경우 혐의가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피해자가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소송을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고, 소송 진행 중에 거짓 진술이 드러나면 구조를 중단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그런 적은 없었다”며 “구조 결정에서부터 가해자로 의심되는 인물을 걸러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소수의 인물 때문에 더 많은 피해자들의 구조 지원을 지연시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진/픽사베이
 
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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