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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갑질'에 맞서라는 160분짜리 응원가…뮤지컬 '마틸다'
10대 초반 배우들의 에너지…과감한 노랫말에 '눈길'
로알드 달 동명소설을 뮤지컬로…비영어권 최초 공연
2019-01-18 00:00:00 2019-01-18 00:17:01
[뉴스토마토 정초원 기자] "불공평하고 또 부당할 때/한숨 쉬며 견디는 건 답이 아냐/꾹꾹 참고 또 참으면 보나 마나 또 그럴걸" 
 
뮤지컬 '마틸다'의 대표 넘버 '노티(Naughty)'가 공연장에 울려 퍼지면, 그 발칙하면서도 시원스러운 노랫말에 어린이 관객부터 성인 관객까지 흐뭇한 미소를 감출 수가 없어진다. 옳고 그름을 유난히 따지는 천재 소녀, 마틸다의 힘이다.
 
사진/신시컴퍼니
 
뮤지컬 '마틸다'는 부모와 학교로부터 부당한 일을 숱하게 겪으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한 소녀의 이야기다. 세계적인 아동문학가 로알드 달(Roald Dahl)의 동명 소설을 뮤지컬로 재탄생시켰다. 아동문학 대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만큼 무대 세트부터 동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알파벳 문양의 나무 블록 수백 개가 무대를 뒤덮듯 장식한 광경은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시각적 만족감을 선사한다. 무대 천장에 매달린 그네를 역동적으로 활용한다거나, 감옥을 연상시키는 교문을 위아래로 타고 넘는 모습 등은 이 작품의 개성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다만 '착한 아이'를 표방하는 동화를 상상하고 공연장에 들어선다면 그 기대는 보기좋게 빗나갈 듯하다. 마틸다가 동화 속 주인공인 '라푼젤'과 '신데렐라', '성냥팔이 소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노래하는 모습은 '모범생'보다 '반항아'에 가깝다. 가만히 앉아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리라 기대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과감히 실행에 옮기는 것이 이 소녀가 사는 법칙이다. 
 
사진/신시컴퍼니
 
극이 진행되는 내내 마틸다는 녹록지 않은 주변 환경에 끊임없이 노출된다. 남자아이가 태어나길 바랐던 아빠는 그녀를 '머슴애'라고 부르기 일쑤고, 살사댄스에 빠진 엄마는 책 읽는 것을 못마땅해하며 '텔레비전이나 보라'고 꾸짖는다. 학교는 트런치불 교장의 괴롭힘 탓에 전쟁터나 다름없다. 이런 환경에서도 서슴없이 할 말은 하고 마는 마틸다의 에너지를 보고 있노라면, 이 작품은 험한 세상에 상처받은 모든 관객을 위한 160분짜리 응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스스로를 긍정해주는 사람 하나 없는 환경에 노출된 마틸다가 자신과 주변인들을 지켜내는 과정은 어른들에게 용기를, 아이들에게 해방감을 선사하는 현실적 판타지다. 
 
사진/신시컴퍼니
 
한국판 '마틸다'는 신시컴퍼니가 창단 30주년을 기념해 국내에 들여온 작품으로, 비영어권 국가에서 공연되는 최초의 프로덕션이다. 한국 정서에 맞춰 번역한 재치 넘치는 대사와 가사가 극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특히 작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넘버 '리볼팅 칠드런(Revolting children)'은 이 극의 과감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노래에서 아역배우들은 자신들을 '틀려 먹은 세상의 뒤틀려 먹은 애들'이라고 칭하는가 하면, 스스로의 과격한 군무를 '미친 몸짓'으로 표현한다. 비속어가 포함된 가사도 다수 등장한다. 아역배우들은 '갑질은 꺼져' 등의 노랫말을 서슴지 않고 외치며, '선을 지키며 살라'라는 세상의 논리를 거부해버린다. 
 
공연에서 가장 큰 환호가 터져 나온 넘버가 바로 이 곡이었다는 점은 그래서 큰 의미를 가진다. 아이들이 승리를 거머쥐는 이 '과격 동화'의 결말에 적잖은 어른들이 공감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마틸다'의 개성은 모든 행동과 언어의 주체가 아이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유일하게 아이들 편에서 행동하는 캐릭터 '허니 선생님'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결국 위기 극복의 키를 쥐고 행동하는 것은 마틸다를 위시한 어린이들이다.
 
사진/신시컴퍼니
 
어린이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인 만큼, 극을 끌고 나가는 저력은 아역배우들에게서 나온다. 8개월 동안 진행된 오디션 과정을 뚫고 합격한 아역배우는 총 46명. 무려 1800여명의 지원자 가운데 선발된 최정예 멤버다. 특히 타이틀롤인 마틸다를 맡은 황예영, 안소명, 이지나, 설가은 등 4명의 배우는 정의로우면서도 똑부러지는 마틸다 역을 집중력 높게 소화하고 있다. 모든 아역배우가 작품 특유의 개성 넘치는 가사와 군무를 제대로 소화한 덕에 최근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앙상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은 아역 배우와 성인 배우가 섞여 공연하고 있지만, 해외에서 진행된 초기 공연에서는 상당한 기간 동안 성인 배우들만으로 앙상블을 구성했다고 한다. 불과 10~12살의 어린 배우들과 함께 이 정도로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사진/신시컴퍼니
 
한편, 이번 작품에서 마틸다의 따뜻한 조력자 허니 선생님은 방진의와 신예 박혜미가 맡았으며, 교장 미스 트런치불 역에는 김우형과 최재림, 미세스 웜우드 역에는 최정원과 강웅곤, 미스터 웜우드 역에는 현순철과 문성혁이 캐스팅됐다. 
 
뮤지컬 '마틸다'는 다음달 10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정초원 기자 chowon61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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