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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어느 복학생의 친문(Moon) 선언
2019-02-25 08:00:00 2019-02-25 08:00:00
작년 9월, 행복했던 1년간의 휴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 친구들은 너도나도 취직, 시험 준비에 열중했고 그 틈에서 나도 다시 바쁘게 살기 시작했다. 복학한 학기는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서 모자란 이수학점을 쉬운 P/F 특강강의로 채웠다. 중간고사기간이 다가오자 역시나 공부 이외의 모든 것이 흥미로웠고, 오랜만에 특강에 집중을 하게 됐다. 강의 주제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였다. 항상 겸손한 자세를 갖추라는 속담이다. 그런데 강사님은 이 속담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셨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익지 않은 벼는 고개를 숙여서는 안 된다. 더욱 고개를 빳빳이 들고 햇빛을 받으려 발버둥 쳐야한다. 그래야 익은 벼가 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아직 익지 않은 벼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것은 겸손이지만, 겸손할 능력이 없는 우리가 고개를 숙이는 것은 '노력하지 않는 게으름뱅이' 혹은 '해보지도 않고 수그러드는 삶의 포기자'로 불릴 뿐이다. 아직 익지 않은 우리들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더 많은 양분을 얻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야한다. 다소 뻔뻔하더라도 내 기회를 만들기 위해 보유한 능력 이상의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도 주위 사람들처럼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내 기회를 만들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강사님의 말씀이 굉장한 명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약간의 의문점이 생겼다. 우리는 왜 남들보다 좋은 햇빛을 받기 위해 발버둥 쳐야하는가? 우리가 고개를 숙이면 왜 게으름뱅이가 되어버리는가? 사람들은 '해(Sun)'를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스스로 빛을 내뿜으며 우리에게 삶의 활력을 넣어주고, 하루를 열심히 살면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모두가 해에게 압박받고 있다. 해가 떠있을 때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준비하지 않으면 한심한 인간이 된다는 압박 말이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쓰레기라 칭하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게으르다며 손가락질 받기도 한다. 또한 해는 모두에게 동등한 빛을 주지 않는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내가 먼저 먹겠다며 기를 쓰는 벼는 햇빛을 얻을 수 있지만 욕심이 없는 벼는 햇빛이 만든 동료들의 그림자 아래에서 서서히 죽어간다. 해는 겉으론 온 세상을 밝혀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것처럼 굴지만 사실은 그 희망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 치도록 강요한다.
 
그래서 나는 '달(Moon)'이 좋다. 달은 대놓고 어둠의 편이다. 언제나 하늘에 있으면서도 어두워지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도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달이 매일 각기 다른 크기로 지배하는 밤의 어둠속에서는 어떤 것도 한낮처럼 분명하게 볼 수 없으며 그렇기에 확고한 판단과 행동을 주저하게 된다. 눈으로 확실하게 보이는 것이 없으니 마음으로 보기 시작하고, 몸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으니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달의 세상은 완전한 어둠도 완전한 밝음도 아니기에 내가 보는 주위의 모든 것으로부터, 다른 사람이 보는 나의 모든 행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자신만의 세계에 집중하게 된다. 남세스럽다며 무의식속에 잠재워둔 것들이 ‘자신의 생각’이라는 프레임 안에 떠올라 멋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태양은 스스로 완전하게 타오른다. 반면 달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없기에 태양이 만드는 빛과 그림자에 따라 빛의 모양이 하루하루 흔들린다. 사람들은 힘들 때 완전한 태양이 아니라 불완전한 달에게 기댄다. 태양과 있으면 자신의 불완전함이 치부가 되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당당히 고개를 들이밀며 완전해지겠다고 다짐하지만 점점 익어갈수록 완전해질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고개를 숙인다. 완전한 태양과 감히 눈을 마주칠 수 없다. 하지만 달은 우리처럼 불완전하며, 스스로도 완벽한 모습에 집착하지 않는다. 제 모습을 갖추면 갖춘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그냥 그날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불완전함이 치부가 되지 않기에, 사람들은 달의 불완전함 앞에 자신의 허물, 죄까지 모두 털어놓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그 곳에서 불완전하지만 밝을 수 있음에 희망을 얻는다.
 
휴학을 결심했을 때부터 복학한 이후까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휴학 때 뭐했어?"라고 물어봤다. 나는 '그냥' 휴학을 결심했고, 솔직하게 "한 게 없어"라고 대답했다.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사실이다. 3학년 1학기 기말고사기간, 정신없이 공부하다 지쳐 기숙사 테라스로 나갔다. 너무 어두워 눈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서일까,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지금까지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동안 쉴 틈 없이 달려온 내가 보였다. 해가 떠있을 때는 물론이고 해가 떠있지 않은 때에도 불을 켜놓고 낮같은 밤을 보냈다. 방금 전까지도 그랬다. 여태껏 봐야할 것들만 봤는데, 어둠속에서는 아직 차오르지 않은 찌그러진 달까지, 굳이 보지 않아도 될 것들이 보였다. 갑자기 용기가 생겨 휴학을 질러버렸다. 휴학기간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밤 같은 낮을 보냈다.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보고 봐야할 것을 보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8년간 믿고 달려온 내 꿈이 단 1년, 혹은 더 짧은 시간 안에 바뀌었다.
 
바뀐 꿈은 전보다 훨씬 어둡다. 가끔은 너무 어두워서 두려움에 떨 때가 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어디선가 용기가 샘솟고 막연한 확신이 든다. 불완전함 속에서 이따금 불쑥 찾아오는 작디작은 완전함은 매우 큰 밝음이 된다. 해가 뜨면 바로 사라져버리지만 밤이 찾아오면 다시 그 밝음을 되찾는다. 어둠만 있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같은 달을 볼 수 있다. 양지에 있던 사람도 음지에 있던 사람도 어둡기만 한다면 모두가 같은 달을 볼 수 있다. 나는 복학 이후 다시 해에 적응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낮과 같은 밤을 보내지 않는다. 낮에는 낮, 밤에는 밤. 그렇게 해와 달의 조화 안에서 살고 있다.
 
김수연 바람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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