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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감염·퇴치"…전쟁·메르스 방불케 한 삼성의 노조와해전략
검찰, 경영지원실 작성 '노사전략' 문건 공개
2019-03-12 17:02:25 2019-03-12 17:02:25
[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그들에게 직원들의 노조설립기도는 사고였고, 집단행동은 감염이자 퇴치의 대상이었다. 삼성그룹이 직원들의 노조설립을 차단하기 위해 십수년에 걸쳐 전 계열사 및 관계사와 협력사 차원의 비상상황대응체계를 마련해 가동해 온 노조와해전략 시스템이 공개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재판장 유영근)12일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위반 등으로 기소된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 및 협력사 임원 등 32명에 대한 검찰의 서증조사를 진행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는 시기별로 삼성그룹의 인사·경영전략을 총괄해온 본사 경영지원실과 그룹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 등이 작성한 그룹 노사전략관련 문건들이다.
 
'전쟁팀' 가동해 전시·평시 '모의훈련' 및 '우군화' 작업 총력
 
검찰이 공개한 문건에 드러난 삼성의 노조와해전략에 사용된 용어들은 흡사 전쟁 발발이나 감염병 발생에 대한 국가비상사태의 대응 조치를 방불케 한다. 2006대형 노사문제(노조설립기도)’1건 발생한 데 이어 20073건이 발생하자 그룹은 중대노사문제가 급증했다2008년 문건에 기재했다. 이중 한 건은 SDI와 전자, 정밀유리 등 3개 계열사 부진인력’ 51명이 희망퇴직에 반발해 20074월 사조직인 삼성 역사를 만드는 모임을 조직한 것으로, 그룹은 모임을 해체시키고 해당 직원들을 퇴직 및 안정화(더이상 노조설립을 기도하지 않고 회사 방침에 따르도록 하는 조치)’ 시켰다.
 
또 향후 협력사 비정규직을 통한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동계의 우회침투및 부진인력의 노조 개별가입에 대응하기 위해 점검시스템을 강화하고, 반 삼성투쟁을 전개해온 김모씨가 200712월 특별사면 되자 노동계 지원 하에 노조설립을 기도할 것에 대비해 그룹 법무실과 인사지원팀, 전자·SDI 등 대응 TF를 구성해 적극 대응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이런 대응을 통해 2009년에는 중대 노사사고가 감소했다고 평가했지만, SDI 부산사업장 사원 17명이 민주노총 금속노조울산지부에 가입해 회사가 징계 등 원칙적 대응을 통해 문제인력의 추가가입 차단 및 탈퇴 조치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비롯한 삼성 관련 노조원들이 지난해 7월 청와대 분수대 인근에서 '삼성 노조 와해 의혹' 관련 총파업 결의대회를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법적으로 복수노조가 허용된 2010년부터는 대응태세를 강화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장모 전무는 복수노조 시대의 노사 전략문건에서 자칫 도미노처럼 붕괴될 수도 있다. 그룹 산하 관계사, 협력사 등 어느 한 곳이라도 노조 설립 시 파급. 연쇄효과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진다고 우려했다. 장 전무는 복수노조 시대에 협력사는 노사관리의 취약지대로, 노동계가 노사관리력이 미약한 협력사를 통해 우회적 침투를 시도할 수 있고, 협력사 노사문제는 바로 그룹관계사 노사문제로 비화될 수 있기에 협력사 관리를 강화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그룹 노사전략에서도 흔들림 없는 비노조 경영을 견지하고, 더 이상 복수노조 유예는 불가하기에 총력 노사안정체제로 전환한다는 기조 하에 2001년부터 발생한 노사사고집계 결과, 411건 중 노조설립은 32건이었고, 원인은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불안으로, 회사 불만세력이 노조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단계별 대응방안도 마련했다. 노조설립 단계에는 문제인력 동향 파악·주동자 면담 및 설득·외부세력(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연계차단·설립 신고 저지·개별탈퇴 유도 등을, 노조설립 이후에는 교섭 회피 및 거부·집회시위에 원칙적 대응·추가 확산 저지 총력 등을 제시했다.
 
우군화 된 '엔젤' 동료직원 '회유' 활용
 
직원들도 이분화했다. 사내 건전인력을 확보하고, 노조설립 징후를 보이는 문제인력은 우군화를 추진했다. 우군화된 인력은 엔젤로 불리며 다른 직원들에 대한 회유를 담당했다. 노조설립 가능성이 있는 직원들은 관심인력으로 분류해 심성관리 노력 강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초기대응 미흡으로 조기 안정화(노조설립 차단)’를 이루지 못할 경우 행동감염이 발생해 세력 확산 가능성이 높다며 인사·경영 부서 외에도 홍보·법무부문을 비상대책팀에 투입해 신속한 대응을 요구했다. 노조설립 이후엔 고사를 목표로 하고, 고사 실패 시엔 장기대응체제를 가동해 온건화를 실천 지침으로 삼기도 했다.
 
전략 총괄 실행은 2011년 조직한 비상상황실(War-room·전쟁팀)’이 맡았다. 노동부 간부 출신 및 경총 협상전문가 출신과 각 계열사 노사담당 직원 등 총 26명이 근무했다. 이중엔 이날 재판의 피고인이 다수 포함된다. 노조 징후포착이나 설립 등 위기상황별 시나리오를 완비하고, 반복적 모의훈련을 통해 대응능력을 평가·진단하며 대응태세를 준비했다. ‘평시엔 현장점검 및 컨설팅 등 수시진단을 했다. 계열사별 대응도 있었다. SMD의 경우 문제인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개개인에 대한 백과사전을 제작하고, 개인취향과 자산·주량·사내 지인 등을 꼼꼼히 파악해 활용중이라며 우수사례로 꼽혔다.
 
삼성 "위법 채집 증거"…재판부 "판결 선고 시 판단"
 
재판부는 이날 검찰의 서증조사를 마친 후 차기 공판에서 변호인의 반대의견을 청취할 계획이다. 서증조사에 앞서 변호인은 재판부에 실명화 된 증거 공개를 만류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부득이하게 증거는 다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검찰의 서증에 대해 변호인이 반대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충분히 드리겠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 측은 해당 문건이 검찰의 이명박 전 대통령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관련 압수수색 중 하드디스크에서 발견된 것으로, “별건에 의한 증거수집의 위법성을 주장하고 있다. 재판부는 최종 판단은 판결 선고 시 하겠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또한 신속한 심리 진행을 위해 매주 화요일 재판을 정례화 했다. 이어 418일부터는 목요일을 포함해 주2회 개정할 방침이다.
 
경기 수원 삼성전자서비스 본사. 사진/뉴시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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