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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소방관은 영웅이자, 전사
2019-04-23 06:00:00 2019-04-23 06:00:00
누구나 한 번 쯤은 프랑스 파리를 가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매년 관광객이 가장 많은 도시순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파리를 사랑하는 이유야 한 둘이 아니겠지만, 무엇보다 멋진 유적들이 많기 때문이다. 노트르담(Notre-Dame) 성당, 몽마르트르의 사크레 쾨르(Sacre-coeur),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자연사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등 이루 셀 수도 없다.
 
이 가운데 노트르담이 단연 으뜸이다. 매년 1500만 명 이상이 이곳을 찾고 있으니 말이다. 노트르담은 1163년 모리스 드 쉴리(Maurice de Sully) 주교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헌정하려고 짓기 시작해 무려 200년 걸려 완성됐다. 이곳은 성지로 유명하지만 수많은 예술작품을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는 명배우 앤소니 퀸이 꼽추 콰지모도로 분장해 열연함으로써 우리 뇌리 속에 깊이 남아 있다. 노트르담은 프랑스인들에게는 역사적이면서 상징적 건물이자 정신적 유산의 심장부다.
 
이러한 노트르담이 지난 15일 밤 불길에 휩싸여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저녁 6시50분쯤 시작된 불길은 7시간 만에 간신히 잡혔다. 노트르담의 첨탑이 무너지고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지만 귀중한 성모상이나 유물들의 손실은 없었다고 한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위기에는 언제나 영웅이 탄생하듯 이번 노트르담 화재에서도 영웅담이 펼쳐졌다. 그 주인공은 소방관들이었다. 노트르담을 구하려 600여 명의 소방관이 거센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지칠 줄 모르고 사투를 벌였다.
 
프랑스의 기자이자 작가인 필리프 라브로(Philippe Labro)는 소방관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이들은 영웅이고, 전사이고, 소방관이었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무거운 장비들과 함께 이 용감한 소방관들은 불구덩이 속으로 주저없이 들어갔다. 이 남녀소방관들은 그들의 목숨을 바쳐 파리 노트르담을 구했다. 사람들은 공적인 업무라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역사의 기병대였다. 만약 종루가 무너지면 탑도 무너지기 때문이다.” 라브로는 “어떻게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 그들은 영웅이고, 우리는 그들에게 경의와 존경을 표시해야 한다”고 거듭해서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지난 18일 정오 노트르담을 위기에서 구한 소방대원 중 250명을 엘리제궁으로 초대해 노고를 치하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모든 위험을 무릅쓴 여러분께 감사드린다…프랑스와 전 세계가 여러분을 지켜봤고, 여러분은 귀감이 되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여러분들은 우리가 본받아야할 완벽한 모델이다. 노트르담 화재를 진압한 600명의 소방관은 그날 밤의 헌신과 용기를 기억하도록 명예훈장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가브리엘 플뤼스(Gabriel Plus) 파리 소방대원단 대변인은 “이는 국가가 강조한 응집력을 보여준 것으로 가슴을 훈훈하게 했다”고 화답했다.
 
한국도 지난 4일 대형 화재로 국토 일부가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다. 강원도 고성, 속초 등 5개 시군에서 발생한 산불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강원도민은 물론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다. 화재 규모가 워낙 방대해 진화하는데 14시간이나 걸렸다. 전국 16개 시도에서 소방관 2600여 명과 소방차 820대가 강원도로 달려오는 행렬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이들은 걷잡을 수 없는 바람 속에서 무서운 불길과 맞서 싸우면서 사투를 벌였다. 장비는 낡고 부족했지만 국민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화마와 대항했다.
 
이를 본 춘천의 한 시민은 소방관들을 ‘대한민국의 영웅들’이라고 지칭하며 편지와 닭갈비를 보내 감사인사를 전했다. 초등학생들도 산불을 진화한 소방대원들에게 “아저씨들은 저희 영웅”이라는 편지글로 감사 인사를 전해 소방관들의 자부심을 북돋아줬다. 한 언론은 “강원도 산불진화의 숨은 영웅은 일당 10만원을 받는 비정규직 소방관이었다”며 그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형화재로 위기에 직면한 국가를 구한 소방대원들을 영웅으로 생각하며 감사를 전하려는 국민들의 훈훈한 미담이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도 화제다. 극한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중요성을 국민들이 새삼 느끼게 되어 불행 중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다만 이번 화재진압에서 우리와 프랑스는 분명 다른 점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노트르담 화재 진압 후 소방대원들의 처우 개선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거기는 우리와 달리 소방대원들의 근무 환경이 덜 열악한 것은 아닌가.
 
우리에게서는 옥의 티가 보인다. 우리는 뭔가 수훈을 세우면 그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게 물질적 보상이다. 미담이 가슴 뭉클한 미담 자체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강원도 산불 진화로 수훈을 세우고 나니 소방대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재조명되고, 국민들은 그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고 청와대에 청원한다. 수훈을 세워야만 보상을 해 주는 나라. 왠지 모르게 씁쓸하다.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3만달러의 경제선진국이다. 그에 걸맞게 평상시 소외받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의 처우개선을 하라. 이게 진짜 선진국이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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