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피플)"14년 전 사제지간, 이젠 어엿한 사업파트너 됐어요"
"학교 배움 많은 도움…'모두 같이 잘 사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사업 계기 돼"
"‘이건 안 돼’가 아니라 ‘이렇게 해볼까’라는 소통방식이 문제 극복 열쇠"
2019-05-21 06:00:00 2019-05-21 06:00:00
[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김정산 인턴기자] '못난이 농산물'로 친환경 애견간식을 만드는 로렌츠의 박민수 대표(27)는 중학교 시절 담임교사였던 권희중씨(48)와 3년째 사업을 키워가고 있다. 박 대표의 동창이자 권씨의 또 다른 제자인 박상호씨도 같이 직원으로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다. 이들은 판매하지 못하는 못난이 농산물을 주원료로 애견간식을 만들어 농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회적기업 형태로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뉴스토마토>는 스승의 날이었던 지난 15일 이들을 만나러 서대문구 사회적경제마을센터에 위치한 로렌츠 매장을 찾았다(편집자주).
 
15일 서울 서대문구 사회적경제마을센터에서 반려동물 간식업체 로렌츠의 (왼쪽부터) 박상호·권희중·박민수씨를 만났다. 사진/최영지기자.
 
“삼촌처럼 터놓고 항상 고민을 말했었는데, 같이 사업 파트너가 될 줄은 몰랐어요” 
 
제자인 박민수 대표와 스승인 권희중씨와의 인연은 2005년 성미산학교에서 시작됐다. 박 대표는 세 살 적부터 죽마고우인 박상호씨(27)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안학교로 진학하자 친한 친구를 따라 별 생각 없이 따라 입학했다. 그는 “권 선생님이 첫 담임 선생님이었는데 학생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다”며 “그야말로 혈기왕성한 시절을 보냈는데 수업이 듣기 싫으면 듣기 싫다고도 말했고 그럴 때 ‘뭐가 하고 싶어?’라고 물어봐주시기도 했다. 하루는 농구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농구 수업을 만들어 주셨다”고 말했다. 박 대표와 당시 학우들은 권씨를 선생님이 아닌 ‘심순’으로 불렀다. 권씨는 이에 웃으며 “성격이 안 좋아서 心자에 順자를 써서 심순이라고 별명을 짓고 불러달라고 했다. 대안학교에서는 별명을 부르는 문화가 있어 선생님보다는 별명으로 불렸다”고도 답했다.
 
“항상 긍정적 평정심 가지길 바라”
 
권씨에게도 박 대표와 상호씨는 성미산학교에서 처음 교사로 근무를 시작하며 만난 첫 제자들이다. 권씨는 “민수와 상호는 대안학교가 노는데 인줄 알고 들어온 것 같았고 말썽도 많이 부렸다(웃음)”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고 반항심도 있어 ‘뭐 좀 해라’고 말하면 ‘싫어요’라는 대답이 나와 사제간의 신뢰관계가 구축될 수 있을지 걱정됐다. 아이들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평정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컸다고도 밝혔다. 그는 “학교도 처음 생겼을 때라 교육과정들이 많이 실험적이었고 정규화되지 않아서 새로 생겼다가 바로 없어지는 커리큘럼도 많았다”면서 “사실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는 공교육을 받고 대학에 입학해 순탄한 과정을 밟은 친구들보다 일찍 사회에 나가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배운 것이 더 많을 것이며, 안락하지 못한 경험들이 오히려 이 친구들을 키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서 가르친 것이 있다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잘 사는게 중요하다’는 것이었고 이대로 살고 있는 것 같아 대견하다”고도 말했다. 권씨는 제자인 박 대표가 사업을 시작해 사람들을 잘 만나고 비즈니스하는 모습을 보며 깜짝 놀라기도 했다. 상호씨에 대해서도 “디자인에 감각이 있어 웹이나 시스템을 잘 구축한다”며 이 둘의 특징이 조화를 이뤄 좋은 파트너가 됐다”고 평했다. 박 대표도 “살면서 느낀 것인지 학교에서 배운 것인지를 뚜렷하게 구분짓기는 어렵지만 깊숙한 마음 속에선 학교에서의 배움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며 “지금의 사업을 하게 한 ‘모두 같이 잘 사는 방법’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퇴직한 선생님 찾아가 사업 계획 털어놔 
 
박 대표가 처음부터 애견간식 사업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유기농반찬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는 돈만 버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고 단순히 유기농반찬을 판매하는 일에 특별한 동기가 없어 회의감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그는 “소비자들이 '유기농 유기농' 할 때 단순히 친환경 때문이라기 보다 왜 (공장이) 친환경 농산물을 택하게 됐고, 왜 유기농을 고집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영 철학이 전달돼 공감을 얻으면 더 뜻 깊은 일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구체적이진 않았지만 청사진을 그려 지난 2016년 선생님께 무작정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어 “선생님과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나이 많은 동네 형처럼 술도 먹고 자주 연락을 했고, 상담을 하며 자연스럽게 같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권씨는 그쯤 학교를 퇴직한 상태였다. 권씨는 “강도높은 대안학교 업무를 11년 동안 하며 몸이 많이 안좋아져 휴식을 가지려고 학교를 그만뒀다”며 “퇴직 소문을 듣고 제자들이 찾아와서 같이 일을 해보자고 했고, 학교에서 일만 했지 사업은 아무것도 몰랐지만 쉬고 있던 차에 부담 없는 마음으로 임했는데 그게 벌써 4년째다(웃음)”라고 말했다.  
 
"선생님 공감만으로도 큰 힘 돼"
 
이들은 4년 전 처음으로 반찬 사업에 뛰어들었고, 브런치를 배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2년 동안은 실패를 겪었다. 스승이었던 권씨도 사업에는 초보였고, 이들 모두 '맨땅에 헤딩'하는 자세로 임했다. 권씨는 “처음부터 사업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으로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며 “반찬 사업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고 쉬면서 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월세도 비싸고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반려동물용품 사업으로 변경하고 다른 청년사업가들에게 마케팅과 경영을 배우고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와 상호씨는 “선생님도 사업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저희와 공감을 해주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됐다”며 “셋이 같은 처지였고, 지금 생각해보면 소통이 잘 됐다. 아이디어가 나오면 반대하기보다는 함께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이야기들이 잘 모아졌고, 문제가 생기면 함께 게임에서 퀘스트를 깨듯이 극복했다. ‘이건 안 돼’가 아니라 ‘이렇게 할까’라는 소통방식이 있었다”고도 말했다.
 
처음 시작했던 브런치 배달사업을 하며 반찬공장을 위탁운영하게 됐고, 반찬을 만드는 일로 확대됐다. 반찬공장을 운영하면서도 반찬을 직접 만들지 못하고 요리사를 고용해 반찬을 생산하니 “우리의 마음이 요리사 마음과 같지 않으면 뜻이 전달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친환경 식자재에 많은 관심을 더 갖게 됐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이 못난이농산물의 문제였다. 박 대표는 “농가와 농산물 직거래를 위해 찾았던 여주 버섯농장에서 먹을 수 있는데 버려지는 못난이농산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런 못난이농산물을 대량화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고 당시 반려동물 쇼핑몰을 런칭한 친구를 통해 반려동물 산업시장을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박 대표는 그렇게 친환경 음식을 선호하는 시대에 못난이 농산물을 이용해 친환경으로 반려동물 간식을 만드는 사업을 구상하게 된 것이다.
 
15일 서울 서대문구 사회적경제마을센터에서 만난 (왼쪽부터) 권희중··박민수·상호씨. 사진/김정산 인턴기자
 
"사람들 즐길 수 있는 간식도 만들겠다"
 
박 대표는 “고구마의 경우 맛과 영양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유통사 기준인 무게 등을 이유로 전체 수확량의 30%가 버려진다”며 “그래서 우리는 350g 이상 되는 고구마만 사용하고, 농산물 중에서도 고구마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못난이농산물은 전부 폐기되거나 판매를 위해 24가지 형태로 분류작업을 거쳐져 농약을 친 고구마들과 같이 판매된다. 박 대표는 올해 19톤의 못난이농산물을 사용해 반려동물 간식을 생각했다. 못난이농산물을 사용해 만드니 농가에도 수익이 생기고, 반려동물 주인들은 친환경 간식을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다. 고구마말고도 당근과 단호박을 사서 또다른 반려동물 간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의 사업은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640개 팀 중에 40개 팀에 선정됐고, 기획한 제품을 두레생협 등에 납품 중이다. 
 
권씨와 박 대표, 상호씨는 각각의 업무분담을 해 사업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권씨는 반려동물 산업에 대한 리서치를 맡는다. 또 육성사업과 같이 지원금을 요청하기 위한 사업설명서나 제안서를 분담한다. 주로 ‘우리가 왜 이 사업을 하는지’ ‘어떤 사회적 기여를 할 것인지’ 등을 사업의 목적과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박 대표는 상품 기획과 출고, 영업총괄을 담당한다. 상호씨는 상품 패키지 디자인와 웹페이지, 매장 디자인, 관리를 도맡는다. 4년 간의 경험이 녹아 든 반려동물들이 짜먹는 습식간식은 서대문구 가좌동 매장과 온라인에서 판매되고 있다. 박 대표는 “대기업이나 영세업체에서도 반려동물 간식에 뛰어들고 있어 레드오션이지만 제품 개발에만 집중했다”며 “우리 제품은 좋은 농산물과 철학이 있는 간식이며 첨가제 없이 멸균을 통해 상온유통이 가능하게 했다. 올해 반건조 큐브형태의 간식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부님들의 소원을 물었을 때 ‘빚 안지고 농사 짓는 게 소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부농은 생각도 할 수 없는 농업의 현실을 알게 됐다”며 “못난이 농산물을 소비해 친환경 농가가 지속가능하게 만들고 싶었고, 농민들이 겪는 불안정한 산업환경을 개선하고 싶다. 반려동물 간식 다음으로는 못난이 농산물로 사람들이 먹는 음식도 만들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자신과 사회에 질문하는 삶 살았으면" 
 
권씨는 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제자들을 돕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중학생 때 반항심인지는 모르겠는데 ‘왜’라는 질문을 많이 했는다. ‘착하게 살아라, 담배 피우지 말아라’라고 말하면 ‘왜요?’라고 되물었고, 사실 교사에게 이 질문은 힘들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이 친구들의 힘은 반항의 형태가 됐든 뭐가 됐든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힘에서 나온다.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고 사업을 하거나 다른 형태의 삶을 만들어 내는데 도움을 준 것 같다. 앞으로도 ‘왜?’라는 질문이 근원적으로 갖고 있는 순응적이고 도전적인 가치들을 잃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희미해지지 않고 자기자신과 사회에게 질문을 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최영지 기자·김정산 인턴기자 yj1130@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