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2050)22-더나은 삶과 건강, 국정 패러다임 전환요구
복지국가 기능 상실한 한국, 경제발전과 비례하지 않는 저복지 상태
건강인지율 OECD '꼴찌'…물질적 풍요에도 마음의 상처 깊어져
입력 : 2019-06-10 07:00:00 수정 : 2019-06-10 07:00:0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삶의 질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Better Life Index'를 흔히 '삶의 질'이라고 번역한다. 하지만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엔 부족하다. '더나은 삶'이라고 번역해야 하겠지만, 과감하게 문법을 파괴해서라도 그냥 '더나은 삶'이라고 하기로 했다. 더나은 삶11개 분야에서 객관적 요소와 주관적 요소의 불일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건 건강분야다. 건강분야는 기대수명과 자기진단 건강인지율 지표로 구성되는데, 2018년 기준 한국인 기대수명은 OECD 11위지만 건강인지율은 꼴찌다.
 
한국인 기대수명 OECD 11위…건강인지율 '꼴찌'
 
기대수명은 현재 수준의 사망률이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신생아의 평균 수명으로 정의된다. 주관적 건강인지율은 자신의 건강을 '좋음'이나 '매우 좋음'으로 평가한 사람들의 비율이다. 일반적으로 기대수명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관련 있으나 일정 수준의 국민소득 이상에선 기대수명과 관계가 약해진다. 한국에선 최근 10년 동안 건강영역을 구성하는 두 지수가 상반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2018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4세로, OECD 평균보다 1.6세 높다. 그러나 건강인지율은 감소세로, 지난 10년간 11% 낮아졌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긴 편이지만 스스로 건강상태가 좋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32.5%로 OECD 평균인 68.2%보다 35.7% 낮다. 뉴질랜드와 캐나다, 미국, 호주는 주관적 건강인지율이 가장 높은 국가들인데, 이들의 건강인지율은 평균 85% 이상이었다.

연도별, 성별 추이도 눈여겨 볼만하다. 2015년 기준 주관적 건강인지율은 남자 37.3%, 여자 27.9%로, 평균 32.5%였다. 이는 OECD 최하위다. 자신의 건강을 '보통'으로 평가한 사람은 남자 48.1%, 여자 51.7%로 평균 49.9%였다. 건강인지율은 조사를 시작한 2008년 이후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OECD 가운데 일본인의 기대수명이 84.1세로 가장 높았고, 라트비아는 74.7세로 꼴찌였다. OECD 회원국의 기대수명은 매년 증가세인데, 한국은 특히 증가폭이 더 크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을 성별로 보면 여성은 85.7세, 남성은 79.7세다.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사는 이유는 질병이나 사고로 사망하는 남성 비율이 여성보다 높아서다. 남성은 여성보다 간질환 확률이 4~5배 높으며, 교통사고 사망자 중 남성의 비율은 71.2%나 된다.
 
한국인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복지취약·업무과다
 
기대수명과 건강인지율이 큰 차이를 보이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다. 이는 사회문화적 요소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OECD는 측정방법 등의 차이로 인해 건강인지율을 국가끼리 비교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건강을 평가하는 건 주관적이며 여기엔 문화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 예로 노인들은 자신의 건강을 낮게 평가하기 때문에 노인 인구비율이 높은 나라에선 건강인지율이 낮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주관적 건강인지율은 OECD 더나은 삶 지수 가운데 주거와 소득, 고용, 삶의 만족도 등과 연관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건강인지율이 꼴찌인 한국은 실제 주거 기본시설 등 주거의 질도 취약하다. 근로시간은 가장 길지만 여가는 부족해 일과 삶의 균형도 깨졌다. 낮은 고용률과 복지수준 등도 건강상태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주관적 건강인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더나은 삶 지수' 가운데 주거와 소득, 고용, 삶의 만족도 등과 연관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건강인지율이 꼴찌인 한국은 근로시간은 가장 길지만 여가가 부족해 일과 삶의 균형도 깨졌고 건강상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문제를 더 넓은 의미에서 국가론의 관점에서 조명할 수도 있다. 복지국가는 일반적으로 시장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개인과 가구에 적극 개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국가는 시장경제에 대해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게임의 규칙을 설정하고, 독과점을 규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국가는 가정경제에 대해선 노동시장 정책과 사회복지 제도를 통해 개입, 원활한 노동력 재생산을 보장한다. 그러나 산업화시기 한국의 자본주의는 전도된 역할을 했다. 시장경제에 대해선 중화학·수출대기업 중심의 산업육성과 직접적 지원, 관치금융이 일반화됐다. 반면 가정경제엔 저임금 노동력 양산과 고등교육을 통한 경쟁력 높은 산업역군 양성이라는 병행전략을 채택, 기업과 가족에게 복지역할을 부담케 했다.
 
그 결과 한국의 복지수준과 경제수준 사이엔 선형적 관계를 발견하기 힘든 저복지 상태가 유지됐다. 오히려 국가 복지의 발전은 경제성장에 반하는 것으로 이해, 복지를 지속적으로 억제했다. 정치·경제적 필요에 따라 권위주의적 발전국가가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도구주의적으로 활용, '압축성장과 압착복지' 상태가 됐다.
 
압착복지와 복지국가의 붕괴…사회안전망 실종
 
압착복지 체제에선 복지국가 역할을 대신하던 대체물들이 붕괴됐다. 시장영역에서 양호한 고용률과 고용안정성이 외환위기를 전후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구조조정과 4차 산업혁명의 여파로 고용불안정이 고조되고 '괜찮은 일자리'가 줄어들며 청년실업과 빈곤문제는 심화됐다. 가족영역에서 강한 연대가 실종, 핵가족 중심으로 재편됐고 경제적 고통이 가중될 때 가족주의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아동학대와 가족동반자살, 청년과 베이비부머 부모의 동반빈곤화가 대표적이다. 교육영역에선 교육으로 인한 사회이동 기능이 저하되고 계층 고착화가 강화됐다. 비효율적이고 계층화된 교육 투자, 높은 교육열의 역기능이 순기능을 상회하기 시작했다. 주택영역에서 전세는 집값의 지속적 인상을 통한 투자이득을 전제로 한 기형적 주거형태인데, 앞으로 한국에선 월세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가영역에선 낮은 조세부담률과 높은 면세한도가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나은 삶 지수' 가운데 건강분야는 기대수명과 자기진단 건강인지율 지표로 구성되는데, 2018년 기준 한국인 기대수명은 OECD 11위지만 건강인지율은 꼴찌다. 사진/뉴시스
 
압축복지의 후유증은 재생산 위기, 사회이동성 저하, 저출산과 높은 자살률, 사회갈등 심화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건강인지율은 이런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조절양식의 취약성과 부조응성 결과는 사회와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위협한다.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해체된 공동체주의가 복지국가의 시민권과 연대주의로 치환되지 못한 채, 시장경제가 야기하는 다양한 사회적 위험을 개인과 가족의 몫으로 떠넘겼다. 그 결과 높은 노인빈곤률, 높은 자살률, 초저출산, 빈곤의 대물림 등의 문제가 야기되고 있으며, 이는 다시 저성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현재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 문제 등은 선진국 복지국가에서도 공통적으로 경험했지만, 우리나라는 심각성과 체감도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사회이동성이 저하되고 청년의 계층상승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세대내 계층 상향이동의 가능성이 낮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계층이동의 가능성을 낮게 보는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도 심각하다. 생애주기별 불안정성의 연쇄고리가 초저출산과 노인 자살의 주요원인이 되고 있다. 사회복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게층 간 재분배와 더불어 사회적 위험에 대한 생애주기와 세대간 분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근로활동 여부에 따른 소득 등락의 폭이 매우 큰데, 이는 사회복지의 계층간,생애주기간 분산 기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길어진 노후 기간을 낮은 소득으로 버텨야 한다는 불안감이 중장년 이후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자녀에 대한 과잉투자, 공무원과 공기업 선호에서 나타나듯이 혁신과 모험의 회피, 기득권에 대한 양보 기피, 극도의 이기주의 그리고 높은 자살률 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일자리, 소득, 주택 등 청년의 불안정성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임금과 소득격차 심화로 사회갈등도 증가하고 있다. 2017년 OECD 기준 한국의 임금근로자 상위 10%의 임금은 하위 10%보다 4.51배 많다. 임금격차가 최상위권이다. 임금근로자 상·하위 10%의 임금격차 확대는 하위층의 실질 임금인상이 상대적으로 정체된 데서 나타난다. 1990년 이후 한국의 실질임금과 실질 노동생산성의 격차는 확대됐다.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한 초고소득자와 고소득자의 점유현상이 심하고, 종합소득의 경우 상위 1%가 전체 종합소득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또 초고소득자와 고소득자의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한 실효세율이 낮은 상황이다.
 
5월23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포용국가 아동정책 현장 발표회'에서 참석한 아이들과 소통의 시간을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산과 소득불평등, 임금격차 그리고 혁신성의 정체 등으로 한국의 사회적 갈등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사회통합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75% 이상의 국민들이 계층갈등을 '심각' 또는 '매우 심각'으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문화갈등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도 상승세다. 그러나 '빈곤층에 대한 정부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동의가 2009년 4.1점에서 2016년 3.2점으로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더나은 삶 지수에서 건강분야, 특히 건강인지율은 개인에게 가장 민감하고 치명적 지수라고 할 수 있다. 건강에 대한 주관적 인식은 주거와 소득, 고용, 교육 등에 관한 내용이 동시에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만족도가 행복과 같이 주관적인 요소 중에서 긍정적 측면을 고려한 것이라면, 건강인지율은 부정적 측면에서 삶의 상태에 관한 민감도를 나타낸다. 동물도 생명에 대한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국의 높은 노인빈곤률과 자살률, 저출산과 고령화 등은 인간의 생존에 치명적 영역이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내는 신호다. OECD회원국 중에서 한국은 이 분야에서 부동의 1위이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산업화의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OECD 회원국 중에서 한국인은 가장 심각하게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는 국민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국의 미래정책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 지 더나은 삶의 건강 지수는 여실히 보여준다. 그 방향은 경제성장이나 1인당 국민소득 향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건강을 포함한 '더나은 삶'에 있다. 대한민국 국가정책에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고 시급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로, '미래, 문명, 평화'와 국정아젠다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행정학을 전공했고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장으로 국내 26개 국책연구소의 국정 정책담론을 기획·평가하고 있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국가비전2040을 수립하는데도 참여 중이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30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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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호

최병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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