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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기생충’ 이선균 “이래서 봉테일이구나 알았죠”
송강호-봉준호 감독, 전화 받고 나간 자리…“너무 하고 싶었다”
“모든 장면 콘티 그대로 촬영…‘봉테일’이라 불린 이유 알았다”
2019-06-12 00:00:00 2019-06-12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 기생충에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가사 도우미를 연기한 배우 이정은은 이선균에 대해 가장 비위가 상하는 캐릭터를 국내에서 가장 현실감 넘치는 연기한 배우란 다소 특이한 찬사를 보냈다. ‘기생충에서 실제로 이선균이 연기한 박사장은 그랬다. 재벌은 아니다. 하지만 재벌에 버금가는 부를 손에 쥔 인물이다. 거대한 저택에 살고 있다. ‘자수성가인지 아니면 상속 받은 재산인지는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박사장은 이 영화에서 강력한 모멘텀을 제공하는 인물이다. 박사장이 언급한 냄새기생충이 그려낸 세계관의 양극화를 현실감 넘치게 설명하는 핵심 코드이다. 봉준호 감독과 첫 번째 작업에서 무려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을 자신의 필모그래피로 남기게 된 이선균이다. 그는 특유의 호탕하면서도 넉살 좋은 너털 웃음을 섞어가면서 기생충과 함께 했던 시간을 전했다.
 
배우 이선균. 사진/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이 개봉하고 며칠 뒤에 만난 이선균이다. 흥행에 탄력을 받은 시기이기에 배우들 모두 들뜬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선균 역시 기분 좋은 밝음을 전했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배우 인생에서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경험을 한 뒤였기에 그런 밝음이 나올 법도 했다. 물론 이선균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모두가 그랬지만 특히나 이선균은 작품 속과 현실의 경계가 아주 뚜렷한 배우 중 한 명이다.
 
결과가 너무 좋아서 사실 믿겨지지도 않고 제 일 같지도 않아요. 현실감이 거의 없죠. 그냥 영화 보는 느낌이에요(웃음). 이런 느낌 자체가 처음이기에 이렇다 저렇다 뭐라고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 지금 우선 가장 기분 좋은 것은 제가 출연한 영화 가운데 가장 성적이 좋을 것 같단 점이에요. 하하하. 더불어 기분 좋은 건 제가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해 본 경험을 갖게 됐단 것이죠.”
 
이선균의 평소 연기 스타일을 미뤄 짐작하면 봉준호 감독의 작품 스타일과는 사실 매치가 되는 지점이 거의 없어 보인다. 단적인 예로 이선균의 지르는 방식의 연기와 봉 감독의 세밀한 묘사가 기본 베이스인 작품 스타일은 교집합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봉 감독은 기생충의 박사장 캐릭터에 이선균을 낙점했다. 첫 만남은 송강호의 전화 한 통이었다고.
 
배우 이선균. 사진/CJ엔터테인먼트
 
강호 형님이 전화가 와서 봉준호 감독과 한 번 같이 만나자고 하셨죠. 뭐 촉이 오잖아요(웃음). 자리에 나가자 마자 감독님이 얘기를 시작하셨어요. 두 가족 얘기이다.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이 나온다. 날 부자 가족의 아버지 역할로 캐스팅하고 싶다. 그런데 나한테 고3짜리 딸이 있다. 어랏? 내 나이에? 그런데 감독님도 선균씨가 너무 어려 보이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라고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덥석 물었죠. ‘시켜주시면 뭐든지 하겠다라고. 하하하.”
 
배우로서 감독의 이런 반응은 캐스팅에 대한 기대감을 어느 정도 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물론 100% 확신은 없었다. 배우라면 누구라도 함께 하고 싶은 감독 1순위가 봉준호 아니던가. 결과적으로 이선균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합류하게 됐다. 기대감을 안고 현장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그리던 봉준호 감독과는 상당히 많이 달랐단다.
 
처음에는 정말 긴장을 많이 했었죠. 봉테일이라고 부르잖아요. 저렇게 디테일하게 연기를 시키시는 데 얼마나 예민하실까. 진짜 걱정을 많이 했는데. 현장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은 전혀 반대에요. 우선 화를 안내세요(웃음). 진짜 그냥 화가 날 법한 상황에서도 화를 안내요. 그리고 이번 현장은 제가 있던 현장에서 처음으로 제가 최고 선배가 아니었어요. 강호 선배도 있고 정은 누나도 있고. 그러니 제가 뭘 안 해도 되더라고요. 연기적인 면에서도 정말 설렁설렁하게 만드셨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았죠. 감독님의 고도로 계산된 현장 시스템에 제가 들어가서 조종당한 것을. 이래서 봉테일이구나를 알게 됐어요.”
 
배우 이선균. 사진/CJ엔터테인먼트
 
이선균이 연기한 박사장기생충전체로 보면 스토리 동력 자체의 변환을 주는 변속기 같은 역할을 한다. 별다른 감정 표현을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의 대사와 표정으로 모든 것이 변화를 맞이한다. 그가 언급한 냄새가 바로 완벽한 변속의 포인트이다. 이 변속의 포인트를 갖고 박사장은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그려내야 했다.
 
박사장 자체가 사건 중심이 아니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었죠. 말씀하신 그대로에요. 결과적으로 이중적인 모습을 선보여야 했는데 그게 이미 콘티에 완벽하게 그려져 있었어요. 감독님이 쓰신 시나리오이지만 이미 완벽하게 그리고 계셨어요. 진짜 세밀한 지점까지 콘티에 있었으니까요. 뭐랄까 가는 길을 완벽하게 구성해 놓은 패키지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죠. 연기의 템포와 리듬까지 조율해 주셨어요.”
 
논란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15세 관람가란 점을 두고 보자면 박사장과 그의 아내 연교’(조여정)의 러브신은 수위가 상당히 높았다. 이 장면을 두고 봉준호 감독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듯한이라고 이선균에게 디렉션(연기 지도)을 줬다고 한다. 이 장면에 대한 언급에서 이선균도 민망한 웃음과 함께 장면에 숨은 자신이 해석한 속뜻을 전했다.
 
배우 이선균.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 장면이 야하다고 생각은 안했어요. 오히려 되게 천박해 보였죠. 그러지 않으셨어요?(웃음). 그 장면도 진짜 콘티 그대로 찍은 거에요. 가족들이 모두 보다가 깜짝 놀라실 수도 있는데 섹슈얼함이 부각된 장면이 아니라고 봤죠. 박사장 부부가 아주 젠틀하고 인텔리한 척 하지만 사실은 천박함을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창문 너머에 아들이 잠자고 있는데 그 소파에서? 진짜 천박스럽잖아요. 하하하.”
 
이선균은 기생충에서 자신의 딸로 나온 배우 정지소와의 특별한 인연도 공개했다. 사실 몰랐었단다. 촬영 당시 대학생으로 20세인 정지소는 7년 전 이선균과 함께 촬영을 경험한 바 있었다고. 물론 이선균 본인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었단다. 촬영을 앞두고 정지소의 어머니가 딸과의 인연을 전해서 너무도 놀랐었단다.
 
“7년 전에 저랑 알고 봤더니 광고를 찍었는데 그 광고에서도 제 딸로 나왔었어요. 전혀 몰랐죠. 그 광고는 저도 기억이 나는 데 얼굴이 전혀 다르니깐. 그때랑 너무도 다른 큰 애가 와서 네가?’라고 놀랐죠. 감독님도 모르셨어요. 하하하. 현장에서 저한테 아빠 아빠하고 부르는 데 진짜 이상했죠(웃음). 영화에서 등장한 둘째 아들이 실제로 제 둘째 아들과 동갑이기도 하고. 진짜 세월 빠르더라고요. 하하하.”
 
배우 이선균.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속 기택(송강호)의 아내로 나온 충숙역의 장혜진과는 학교 동기였다. 기택의 딸로 나온 기정 역의 박소담도 같은 학교 후배였다. 자신의 집 가사 도우미로 출연한 배우 이정은은 데뷔 전부터 대학로 배우 중 가장 좋아하던 자신만의 스타였다고. 여기에 충무로 최고의 스타이자 선배인 송강호, 그리고 후배 가운데 가장 핫스타로 주목 받는 최우식, 최고의 파트너로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운 조여정, 무엇보다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은 잊지 못할 기억이다.
 
글쎄요. 앞으로 이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까요(웃음). 함께 한 동료 배우들을 보면 내가 이들과 함께 했단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정말 대단한 배우들이잖아요. 그리고 봉준호 감독님과 함께 작업해 봤으니 뭐 소원풀이 했죠. 하하하. 다음 작품도 무조건 또 같이 하고 싶죠. 그런데 불러 주실까 모르겠어요. 하하하. ‘기생충처럼 감독님 곁에서 기생하고 싶을 정도에요. 하하하.”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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