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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세상읽기)6월22일 낮 12시30분 햇볕을 만끽하자
2019-06-21 06:00:00 2019-06-21 06:00:00
6월22일은 하지다. 하지는 흔히 '낮이 가장 긴 날'로 기억되지만 한자를 잘 보면 살짝 헷갈린다. 여름 하(夏)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냥 여름이다. 문제는 이를 지(至). 이 한자에는 '도래하다'라는 뜻과 함께 '극에 달하다'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인지 하지를 '여름이 극에 달한 날'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꽤 많다. 그런데 이날이 정말 그런가? 극에 달하기는커녕 제대로 시작도 안 한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여름방학이 시작하려면 아직 멀었다. 독일에서는 하지를 좀머안팡(Sommeranfang)이라고 한다. 여름(Sommer)이 시작(Anfang)된다는 뜻이다. 하지는 '여름이 시작되는 날'이다.
 
하지의 낮의 길이는 무려 14시간 35분이나 된다. 하지에 낮의 길이가 긴 이유를 과학자들은 태양의 남중고도(南中高度)가 가장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건 도대체 또 무슨 뜻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북반구에서는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점점 높이 오르고 정남쪽에서 정점에 달한 후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점점 내려간다. 북쪽을 등지고 서 있으면 왼쪽에서 뜬 해가 내 정면으로 옮겨오면서 동시에 위로 올라가고 다시 서서히 내려가면서 오른쪽으로 지게 된다. 이때 태양이 내 정면(남쪽)에 있을 때를 남중이라고 한다. 남쪽 한가운데라는 뜻이다. 이때 지평선에서 떨어져 올라가 있는 태양의 높이가 남중고도다. 그러니까 가장 높이 오른 태양이 수평선과 이루는 각도라고 할 수 있다.
 
남중고도는 1년 내내 변한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3월21일)과 추분(9월23일)에는 52도,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6월22일)에는 76도,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지(12월22일)에는 29도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태양의 남중고도는 29~76도이므로 우리나라에서는 태양이 내 머리 꼭대기 위로 올라오는 일은 결코 없다.
 
동지에는 수평선에서 뜬 태양이 겨우 29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수평선으로 내려가니 태양이 떠 있는 시간, 즉 낮이 짧을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하지에는 태양이 76도까지 떴다 내려가려니 낮이 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랜턴을 땅에 비스듬히 비추면, 즉 고도가 낮으면 넓은 면적을 밝히는 대신 살짝 어둡다. 하지만 랜턴을 땅에 수직으로 비추면, 즉 고도가 높으면 좁은 면적을 밝히는 대신 밝다. 태양의 남중고도가 높아져도 마찬가지다. 남중고도가 높아지면 당연히 뜨겁다.
 
그렇다면 몇 시에 남중고도가 가장 높을까? 상식적으로는 정오에 남중고도가 가장 높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표준시의 기준은 동경(일본의 수도 도쿄를 뜻하는 東京이 아니라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동쪽으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표시하는 東經) 135도를 기준으로 하는데, 서울의 위치는 동경 127도 30분에 있기 때문에 태양이 남중하는 시간은 약 30분 뒤인 12시30분 경이다. (다시 강조하건데 동경 135도는 東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일본 수도 도쿄는 東經 139도 84분에 위치한다.) 하지에는 낮의 길이가 14시간 35분이라고 앞에서 말했다. 이것만 알면 해가 뜨는 시간과 해가 지는 시간은 저절로 나온다. 
 
6월22일부터 9월22일까지 세 달 동안이 여름이다. 여름은 뭐하는 계절일까?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계절 이름을 함부로 지었을 리가 없다. 여름은 열매가 여무는 계절이다. 그 힘은 태양에서 온다. 태양은 에너지의 원천이다. 하지만 태양 에너지를 저장하려면 다른 재료가 필요하다. 물과 이산화탄소가 바로 그것. 봄 가뭄이 들다가도 여름이 시작하자마자 장마가 지는 것은 우리에게는 크나큰 복이다. 태양이 아무리 내리쬐어도 물이 없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니 말이다. 그러니 여름 장마를 탓해서는 안 된다. 
 
물은 애증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산화탄소는 요즘 미움만 받는다. 지구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서 기후위기가 왔기 때문이다.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0.03% 즉 300ppm에 불과했다. 그런데 올해는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411ppm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매년 2~3ppm씩 늘어나고 있다. 이산화탄소는 온실가스라는 이름으로 미움을 받는다. 그런데 온실은 좋은 거다. 당연히 온실가스도 좋은 거다. 온실가스 덕분에 지구에 생명이 살 수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배출한다는 것이다.
 
6월22일 낮 12시30분에는 바깥으로 나가자. 1년 중 가장 높은 곳에서 내리 쬐는 햇볕을 만끽하자. 이산화탄소 배출을 단 한 시간만이라도 참아보면서 말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penguin1004@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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