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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기획2050)23-국가비전2050 만들기, ‘더나은 삶 10위’
국민 공감과 합의 이끌어낼 국가비전2050 고민해야 할 시점
경제정책과 사회정책 균형 추구하는 '포용국가' 미래비전 모색해야
2019-06-24 00:00:00 2019-06-24 00:00:00
정부가 8월 말 ‘국가비전2045’를 제시할 예정이다. 1945년 해방 이후 100년이 되는 2045년에 달성 가능한 국가비전을 제시하겠다는 목표다. 중국은 ‘두 개의 100년’이라는 국가비전을 내놓은 바 있다. 1921년 중국 공산당 창당 이후 100년이 지난 2021년엔 인민복지를 완성하는 ‘소강(小康) 사회’, 1949년 신중국 이후 100년인 2049년엔 세계 초일류국가라는 ‘대동(大同) 사회’를 이루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한국의 ‘국가비전2045’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국가비전을 위한 개념 설계와 소망성

국가비전이 지지를 받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단순한 개념 설계를 바탕으로 ‘개념적 모델(Conceptual Model)’을 제시하는 게 핵심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온 것으로, 과학적 인과관계를 중심으로 증명가능한 가설검증이 우선된다. 그러나 미래는 미지의 영역이고 개인이나 국가의 목적의식적 노력에 따라 변화가 가능한 바람직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그래서 미래연구에서는 무엇보다 소망성(Desirability)이 개입할 여지가 넓다. 개인들은 각자가 소망하는 미래를 가질 수 있고, 극단적으로 5000만명 인구 각자가 하나씩 국가미래를 제시하는 5000만개의 국가비전이 있을 수 있다. 이런 특성에 따라 미래비전은 공감과 합의를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고, 다수가 합의할 수 있는 개념 설계가 전제돼야 한다.

개념 설계는 30년 정도의 한 세대를 앞서서 기획돼야 한다. 동시에 현재의 사회과학적 문제의식이 잘 녹아들어야 현세대가 공감갈 수 있게 합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방식은 인간이 가진 미래예측의 한계 때문이다. 현재까지 국민의 기억에 남아 있는 국가비전은 참여정부의 ‘비전2030’이다. 이것 이후 역대 정부가 내놓은 국가비전은 국민의 기억 속에서 오래 자리를 잡지 못했다. 참여정부의 비전2030이 여전히 국민의 머릿속에 남은 건 탄탄한 개념 설계에 기초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8년 6월 성장과 복지를 균형있게 추진하고, ‘생애주기별(Life Cycle) 맞춤형 복지’를 추진하는 내용의 '국가비전2030'을 발표했다. 사진/뉴시스
 
비전2030의 핵심적 개념 설계는 ‘생애주기별(Life Cycle) 맞춤형 복지’다. 생애주기를 20대, 30대, 4050세대, 60대 등 4단계로 나누고 인간에 필수적 복지를 맞춤형으로 제공하겠다는 기본 개념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비전과 전략, 실천수단을 설계했다. 그랬기 때문에 비전2030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세울 수 있다.

비전2030이 제시한 국가비전 구호는 ‘함께 가는 대한민국’이었다. 구체적 목표로는 ‘혁신적이고 활력있는 경제, 안전하고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안전하고 품격있는 국가’였다. 국가비전 목표가 경제와 사회, 정부를 망라하고 있지만 내용이 산만하게 흩어지지 않은 건 그 바탕에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라는 밑그림이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어서다. 전략은 더 망라적인데,  성장동력 확충과 인적자원 고도화, 사회복지 선진화, 사회적자본 확충, 능동적 세계화 등으로 구성됐다. 미래비전 설계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이 모든 분야별 정책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백화점식 설계다. 모든 걸 담아내는 미래비전은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담아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런 오류를 막아주는 게 개념 설계다.

30년 후를 고민하는 당대의 문제의식 필요

제대로 된 미래비전을 만들기 위한 개념 설계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미래가 아닌 당대에 가장 선진적이고 설득력 있는 개념에서 그 내용을 찾아낼 때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비전2030의 개념 설계인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는 당시 사회정책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불러왔던 ‘사회투자국가론’과 ‘신사회 위험(New Social Risk)’이라는 이론이 중추였다. 영국의 피터 테일러-구비(Peter Taylor-Gooby) 등은 기존의 복지국가가 간과하던, 새로 등장하는 사회적 위험을 신사회 위험으로 제시하고, 이것에 대한 해답으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거론했다.

30년 이후를 내다보는 국가비전2050이 성공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핵심적 개념을 찾아내고 그것을 기초로 국가비전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시대의 개념 설계에서 핵심적 화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나은 삶(Better Life)’이다. 이 개념은 교과서적 이론을 넘어서 글로벌사회에서 합의를 얻었고, 2011년부터는 OECD ‘더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로 제시되고 있다.

더나은 삶에 대한 비전은 2000년대 이래 세계사적 흐름을 관통하고 있다. 시작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과거 30년 동안 세상을 지배한 신자유주의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게 증명됐다. 그해 9월 열린 국제연합(UN) 총회에선 의장이었던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1인당 국민소득이라는 경제적 수치를 넘어설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창했다. 유엔총회에서 합의에 따라 경제학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아마르티아 센 등은 1년 동안 연구한 끝에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이익을 동시에 고려하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통해 2011년 OECD는 더나은 삶 지수를 개발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기존의 성장일변도에서 벗어나자는 대안 모델이 바로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과거 30년 동안 세상을 지배한 신자유주의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게 증명됐다.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이익을 동시에 고려하는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고 인식, 대안 모델인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이 강조됐다. 사진/플리커

더나은 삶은 2000년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가 힘을 모아 신자유주의에 대안을 찾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만큼 세계적 합의에 기초한 개념 설계여야 국가비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한 국가의 국가비전도 어느 천재가 제안하는 이론이 아니라 당대에 공론이 모여 만들어질 수 있다.

더나은 삶을 국가비전의 핵심 개념으로 삼고 나면 더나은 삶을 만들기 위한 11개 분야를 구성요소로 해서 창의적 모델로 국가비전 제시가 가능하다. OECD도 더나은 삶 지수를 주거와 소득, 일자리, 교육, 공동체, 환경, 시민참여, 건강, 삶의 만족도, 안전 그리고 일과 삶의 조화라는 11개 하위 목표로 구성했다. 여기엔 그 국가의 철학과 미래의 소망성이 개입하게 된다. 철학과 소망성이 어떠냐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국가비전이 가능하다.

국가비전의 세 가지 길과 정치세력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국가비전은 현실 정치세력과 긴밀히 연동됐다. 우선 ‘포용국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변화를 수용하려는 사람들의 길이다. 시장주의자들은 지난 30년 동안 한국사회에 익숙한 발전국가 모델을 지지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고전적 복지국가주의자의 길로써 전통적 노동조합과 공공분야의 확대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포용국가의 길은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 정책 우선순위와 관점을 경제정책에서 사회정책으로 옮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현재 OECD 회원국 가운데 더나은 삶 지수에서 29위 정도를 하는데, 국가비전으로 ‘더나은 삶 10위’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할 수 있다. 포용국가론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한국은 경제성장을 위해 사회정책 등 다른 분야를 희생했다. 그 결과 한국의 소득수준은 급격히 개선됐지만 환경과 공동체, 건강, 삶의 만족도, 일과 삶의 조화 등은 피폐해졌다.

이들의 주장에서 눈여겨볼 것은 과거 경제성장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미래비전으로 그들이 어떤 인식을 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들은 글로벌 저성장 흐름에서 한국이 계속 경제성장만 우선해선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진단한다. 경제성장이 중요한 만큼 환경과 공동체, 건강, 삶의 만족도, 일과 삶의 조화 등도 균형적으로 성숙해야 비로소 새로운 경제성장의 모멘텀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또 그간 경제우위로 왜곡된 분배정의를 바로 잡는 것도 시급하다고 본다.

시장주의자의 길은 지난 30년 동안 한국 사회의 주류 담론이었고 지금도 보수 정치세력과 언론에서 매일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주요 메시지는 경제위기론이다. 한국경제의 성장성 둔화와 국제경쟁력 약화가 단골 메뉴다. 그들에게 경제성장은 정치와 직결됐다. 성장성 둔화를 막기 위해선 사회정책과 환경정책, 공동체정책 등이 다소 희생되는 것도 감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들의 맹점은 그간 한국사회를 지탱해 온 주류 담론이 미래에도 그대로 유효하겠느냐 하는 것이다. 더나은 삶 지수 11개 분야의 불균형을 방치하고 경제성장 일변도의 미래설계가 지속가능한 한국사회를 담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들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현재 소득 3만달러 시대의 경제방식을 유지해도 소득 5만달러, 8만달러 시대가 열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비전을 고민하는 시장주의자의 길에 던져진 과제다.

고전적 복지국가주의자의 길은 한국에서도 노동자 블록을 더 강화하고 중간계층의 계급적 지지를 확보하여 사민주의 복지국가로 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이 모델로 삼는 서구 복지국가는 1970년대까지 노동자와 중간계급의 계급연합으로 지배블록을 형성하고 사민주의의 길을 열어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사회에선 비정규직 노조와 청년 알바노조 등이 등장했고, 노동조건이 다양화되면서 새로운 진보의 미래비전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됐다.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이 6월17일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 소득격차 현황과 개선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한민국 국가비전에 관한 세 가지 선택지에서 현재 가장 설득력 있는 담론은 포용국가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지난 30년간 국가비전으로 작동했던 시장주의자의 길, 발전국가 모델에 대한 대안 담론이다. 또 이 국가비전은 이론적 촘촘함과 국제적 연대에 기초했다. 이 비전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담론의 흐름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포용국가론은 미래 30년 뒤의 국가비전으로써 국민적 공감을 얻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췄다.

국가비전2050이 국민적 공감과 설득력을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탄탄한 개념 설계와 개념적 모형이다. 현재까지 국민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개념 설계는 ‘더나은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개념적 모형은 포용국가의 길을 통해 더나은 삶 지수 11개 분야에 대한 개선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소득 위주의 왜곡된 경제성장에서 벗어나 환경과 공동체, 건강, 삶의 만족도, 일과 삶의 조화 등과 균형을 찾는 것이 핵심이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로, '미래, 문명, 평화'와 국정아젠다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행정학을 전공했고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장으로 국내 26개 국책연구소의 국정 정책담론을 기획·평가하고 있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국가비전2040을 수립하는데도 참여 중이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30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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